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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을 막는 방법

나를 지켜주는 것

by crux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종류의 행복과 불행을 교차로 만납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언제나 행복한 일만 생긴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기치 못하게 불행이 찾아오더라도, 가급적 영리하게 비켜가거나 혹은 너끈히 이겨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방편을 취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건강한 자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의지할 수 있을 만한 대상도 찾고, 보험에도 가입하고 안전장비도 구입하는 등 실로 부지런히 준비를 해둡니다. 그런데 막상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고난은 예상보다 훨씬 갑작스럽게 다가오고, 지독하며, 떨쳐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의 외할머니는 독실한 종교인이십니다. 매일 기도를 하시고 교회 간행물을 읽으시며,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십니다. 원래부터 종교를 가지셨던 건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었다면 저의 큰외삼촌이 되었을, 큰아들을 사고로 잃고 나서부터 외할머니는 종교에 빠져드셨다고 합니다. 어디선가 외할머니가 큰아들 사주를 봤는데, 아이 명이 짧으니 개명을 하라고 하여 이름도 바꿨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무색하게, 큰외삼촌은 네 살 생일을 맞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끔 외할머니께서 어린 제 아들을 들여다보며 큰외삼촌 말씀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큰외삼촌은 똑똑하고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미용 일을 하시던 외할머니께서 가정부에게 큰아들을 맡기고 가게에 나갔는데, 가정부가 목욕을 시키기 위해 아이를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억지로 들어가게 했답니다. 그 일로 큰외삼촌은 너무 놀라 경기를 일으켰고, 결국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며 앓기를 반복하더니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만삭의 임신부였던 외할머니는 생때같은 큰아들을 삽시간에 잃어버렸고, 그 후로 매일 울다가 저의 어머니를 낳았다고 하셨습니다. 종교생활을 시작하시고, 어머니를 키우시고, 이윽고 작은 외삼촌을 낳으면서 다행히 외할머니는 다소 안정을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잘 크고 있는 줄 알았던 작은 외삼촌이 십대 청소년이 되어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유 없이 열이 오르고 정신을 못 차리면서 헛소리를 해댔습니다. 외할머니는 어렵게 얻은 아들을 또 잃을 수 없어 백방으로 낫게 할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효과가 없자, 마침내 용하다는 무당을 집에 불러 굿판을 벌이셨다고 합니다. 울긋불긋한 천이 여기저기 걸리고 고사상이 차려져 있는 한 가운데, 작은 외삼촌을 앉혀두고 무당이 칼춤을 추던 장면을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기억한다고 하십니다. 굿 덕분이었는지, 마침 나을 때여서 그랬던 건지 다행히 굿을 한 이후 작은 외삼촌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이 일로 꽤 오랫동안 교인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하셨고, 온갖 수모와 참회의 시간을 거쳐 다시 교회로 돌아가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종교나 미신에 집착하는 외할머니를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하십니다. 안정적인 삶을 원했기 때문에, 당시 정부 산하기관 소속이었고 성실해 보이는 아버지와 결혼했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전도유망한 사원이었고, 토지 및 부동산 감정을 하는 업무를 보고 있어 재개발될 장소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젊은 나이임에도 본인 명의의 아파트 및 분양받은 아파트까지 두 채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허허벌판에 혹은 낙후된 지역에 있던 본인 명의의 아파트들이 아닌, 새로 지어져 번듯한 아파트에 아버지께서 눈을 돌리면서 불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친구 동생의 명의로 새 아파트를 구입해서 우리 식구를 이사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참고 억지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이 일로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셨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새 아파트의 명의자인 아버지 친구 동생은 우리 식구 몰래 다른 사람과 아파트 매매계약을 했고, 계약금을 챙긴 뒤 해외로 도주했습니다. 속아서 우리 집을 산 사람은, 잔금을 치러 주지 않으면 우리 식구를 고발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새 아파트를 나와야 했고, 잔금을 치러 주느라 기존에 갖고 있던 아파트 두 채까지 전부 날려 외가에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아파트 세 채를 잃은 어머니는 그 뒤로 부적을 구입하기 시작하셨고, 재미삼아 몇 번 보던 점을 열심히 보러 다니시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런 일들을 겪은 저 또한 안정적인 삶을 원했기 때문에 저의 직업도, 신랑의 직업도 가능한 풍파가 일어나지 않을 만한 것으로 골라서 택했습니다. 솔직히 서로가 퇴직하기 전까지는 별 일 없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사기로 어마어마한 금액을 피해보게 되자, 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올해 삼재인 사람은 금전적으로 막심한 손해를 보게 된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는데, 마침 제가 올해 삼재인지라 사후대처라도 해 보려고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 말린 북어를 현관 입구에 걸어두면 재복이 좋아진다고 하였습니다. 당장 건어물 가게로 가서 말린 북어를 명주실로 묶어 현관 입구에 걸어두었습니다.


주말인 오늘 아침, 미뤄뒀던 집안 청소를 하는데 걸어둔 북어 아래에 벌레 껍질 같은 것들이 여러 개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저는 신발에 딸려 들어온 모래흙이나 벌레 껍질인 줄 알았는데, 신랑이 북어 안에 살던 구더기의 허물인 듯하다고 했습니다. 현관 여닫을 때 들어온 벌레가 장마철 습기 찬 북어 안에 알을 낳았나봅니다.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힘든 와중에 재복이라도 좋아지라고 북어를 걸어둔 건데, 그 안에 구더기가 끓었다는 걸 알게 되니 기분이 너무 나빴습니다. 집을 계속 더럽힐 순 없으니 위생 상 북어를 버리긴 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꾸 저에게 안 좋은 일만 벌어지는 것 같은 상황에 짜증이 나서 신랑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북어도 버렸으니 이참에 어머니께서 붙여둔 부적까지 떼어버리라고 하는 신랑에게 저는 절대 부적을 뗄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실은 저도 부적을 신봉하거나 맹신했던 사람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것까지 떼어버리면 더 불행한 일이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어차피 부적 붙여뒀어도 나쁜 일 얼마든지 생기잖아. 저거 소용없어. 어머니처럼 부적 믿지 말고 떼어버려.’ ‘싫어. 저 부적까지 없으면 나한테 닥칠 불행을 뭐가 막아줘? 나쁜 일이 계속 생기잖아. 나 지금도 충분히 불행해. 여기서 더 불행해지면 어쩌란 말이야?’


‘내가 네 부적이야.’


신랑이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신랑에게 ‘맨날 내 옆에 있지도 않아주잖아,’ 하고 투정하면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게 찾아오는 불운은 실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힘든 일이 더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저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집착을 불러오고 또 저의 집착을 불러온 것입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 기도한다고 달라져, 부적 붙인다고 달라져, 하며 잘난 척했던 제가 괴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니 어느새 어른들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불운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저입니다.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없고, 다른 무언가에 기대어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이걸 가슴으로 깨달아가는 과정이 참으로 엄혹합니다. 그러나 항상 제 곁에 있는 건 아닐 지라도, 악귀와 귀신을 쫓아주는 - ‘약한 생각을 물리쳐주는’ 부적 같은 신랑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낼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동시에 신랑에게도 제가 부적 같은 존재가 되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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