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이해하면 소음 대신 신호가 또렷해진다
실리콘밸리에서 PM(Product Manager)으로 일하는 분의 강의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실리콘밸리에서는 프로젝트별로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임시로 모여서 팀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정된 팀의 구성원이 아닌 데다 직무도 다른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자주 날 수밖에 없다고 해요. 그래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각자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면 이건 꼭 되어야 한다’라는 요건들을 적는다고 합니다. 저는 이걸 지칭하는 용어가 재미있었어요.
Good enough to ship
(항해하기에 충분한)
각자 적어낸 요건 항목들을 합친 후 그 리스트를 모두가 이정표처럼 참고하며 일한다고 했습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제품이나 서비스는 완성되지 않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항해를 떠날 수가 없는 거지요. 최소 요구사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리스트는 업무의 항해 도중에 치명적 구멍으로 배가 침몰하는 것을 미리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프로젝트 때문에 모인 임시 팀도 이렇게 시작하는데, 1년 이상 매일 함께할 팀에서 최소한의 기준조차 없이 일한다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특별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소가 있어요. 일로 만난 관계에서 모든 것을 서로 맞출 필요는 없지만, 특별히 싫어하는 행동을 굳이 할 필요도 없겠지요.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좋아하는 행동을 많이 하기보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조언도 있잖아요.
우리만의 ‘Good enough to ship’ 항목을 찾아 팀의 그라운드룰을 만들어봅시다.
Step 1 : 구성원별로 자신의 항목 작성하기
팀장을 포함해서 구성원 모두 자신만의 항목을 적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배려하자’, ‘아침에 밝게 인사하자’, ‘업무를 잘 공유하자’ 같은 두루뭉술한 내용만 떠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에게 정답인 내용만 적는다면 굳이 따로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이 그라운드룰은 오직 우리 팀만을 위한 맞춤형이라서 의미가 있는 겁니다. 처음 시작을 이렇게 해보세요.
“이 그라운드룰은 오직 우리 팀을 위한 겁니다. 구체적이어야 가치가 생겨요. 업무 시간에 겪는 일 중에서 유난히 자신에게 격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행동을 적어봅시다.”
나에게 유난히 싫은, 거슬리는, 섭섭한,
방해되는, 고마운, 감동받는 행동은 무엇인가?
각자 5개 정도 적으면 되는데 최대 10개까지도 괜찮습니다. 팀원끼리 겹치는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대신 10개 중에서도 우선순위 5개는 따로 표시를 해주세요. 제 경우를 예시로 보여 드릴게요. 물론 참고만 하시고 각자 자유롭게 쓰시면 됩니다.
○○○ 팀장의 그라운드룰 항목(예시)
• 회의할 때는 서로에게 집중합니다.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메모 외의 용도로 흘깃대는 건 서로의 힘을 빠지게 합니다.)
• 문제가 생겼을 때는 10분 안에 리더와 관련 팀원에게 공유합니다.(나쁜 소식을 외부인으로부터 듣는 일은 없어야겠죠.)
• 보고 및 요청할 때는 30초 안에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고, 이후에 차근차근 본론을 설명합니다.
• 업무를 도와주면 “○○님 덕분이에요.”라고 분명하게 감사를 전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진심은 드뭅니다.
• ‘지겨워’, ‘짜증 나’ 같은 부정적인 언어는 속으로만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른이니까요
Step 2 : 팀 전체 항목을 모은 후 우선순위 정하기
팀장과 팀원 네 명으로 구성된 팀이라면 25~50개의 항목이 모일 겁니다. 하나씩 읽다 보면 웃음이 나는 목록도 있을 거예요.
점심 메뉴를 물어보면 ‘아무거나’라고 말하지 않기로 해요.진짜 아무거나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퇴근 이후에는 무소식이 최고입니다. 웃기는 짤, 생활의 팁, 업무상 참고 기사 공유도 모두 출근 이후에!
목록을 보며 팀원들과 토론을 합니다. ‘하지 말았으면’ 하는 내용만 잔뜩 있다면 ‘해주니까 고맙더라’ 같은 내용도 상의해서 추가합니다.
항목만 주르륵 적는 것보다는 회의, 협업, 생활매너 같은 키워드로 카테고리를 나눠주면 좀 더 눈에 잘 들어옵니다. 그리고 우선순위에 따라 정리하여 작은 카드로 만든 후 각자 자리에 붙여 둡니다.
이제 우리 팀의 그라운드룰이 정해졌습니다.
항해하기에 충분한(Good enough to ship) 최소한의 요건이 갖춰진 셈입니다.
안녕하세요! 신간이 나왔습니다. 감사하게도 교보문고 <탐나는 책>과 북모닝CEO 2월 도서에도 선정되었어요. (❁´◡`❁)
지난주에 막 임명된 따끈따끈한 신임 팀장, 여전히 적응 중인 6개월 차 팀장, 리더가 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막막한 마음에 답을 찾는 분, 팀장의 권한과 역량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주니어 일잘러 모두 환영합니다.
매콤 달큰한 현실을 살아가는 리더가 오늘 배워서 내일 적용할 수 있는 솔루션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