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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May 05. 2020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같은 편에 섭시다

in-group vs. out-group


같은 편에게는 신뢰를, 다른 편에게는 불신과 경계를


C 임원은 일도 잘하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았습니다. 승승장구하며 승진하던 도중 어떤 계기로 한직으로 밀려났는데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분이어서 안타까웠어요. 그분이 밀려날 때 경영진은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직원들 편이야. 회사 생각보다는.”


당시 CEO는 직원 복지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편이었기 때문에 저는 이 말을 듣고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C 임원이 회의에서 얘기하는 방식을 보고 무슨 뜻인지 알게 됐습니다. 직원들 편에 서서 경영진이나 다른 임원들을 대상으로 설득하고 계시더라고요. 경영진이나 임원들을 공략해야 하는 성벽처럼 대하면서 말입니다. 그제야 그 CEO의 말이 이해되더군요. 

저 사람의 생각을 바꿔야지! (사진 : 픽사베이)

사회심리학 용어 중에 인그룹i(n-group)과 아웃그룹(out-group)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 편은 인그룹, 남의 편은 아웃그룹입니다. 얼핏 보면 차별과 편향이 가득해 보이지만 누가 우리 편인지 판단하는 것은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능력입니다.


갓난아기조차 호의를 가진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아봅니다. 자라면서도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안 돼”라는, 아웃그룹을 경계하는 법을 충실히 배웁니다. 이 경향은 본능과 학습을 통해 이중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

기에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그룹에게는 신뢰와 공감을, 아웃그룹에게는 경계를 보입니다. 


그러니 상대방을 설득할 때는
우리가 인그룹,
즉 같은 편이라는 인식을
줘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아웃그룹으로 분류되면 어떤 얘기를 해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상대방은 귀를 닫고 객관적 근거조차 의심의 눈으로 쳐다봅니다. ‘분명히 좋은 숫자만 뽑아서 가져오는 체리피킹cherry picking을 했거나, 조사 질문을 조작했겠지’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얘기를 해도 먹히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우리는 설득하는 상대방을 다른 편처럼 대합니다


어렵고 까다로운 상대를 설득해야 할수록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상대방 편에 서세요. 


상대방을 공략해야 하는 성벽처럼 취급하면 원하는 걸 절대 얻어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

람이 정확하게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례: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팀 예산을 30% 삭감해야 하는 영업팀 


강 팀장은 지금 재무팀 공지를 보고 무척 화가 나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팀 예산을 30%나 삭감하라는 공지가 왔거든요. 안 그래도 부족한 예산으로 고생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강 팀장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재무팀 최 부장에게 항의합니다.


“부장님. 갑자기 예산을 30%나 줄이는 게 말이 됩니까?”


“위에서 지시한 사항이야. 알다시피 올해 우리 회사 영업이익률이 절반으로 곤두박질쳤잖아. 위기 상황이라고. 그래서 모든 부서의 운영비를 30% 삭감하기로 했어.”


“그러면 쓸데없는 비용을 줄여야지 영업비용을 삭감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거 위에서는 알고 계세요? 이렇게 생각 없이 30% 일괄적으로 삭감하는 걸 아시냐고요.”


“하…. 왜 나한테 그래?”

“아니, 재무팀에서 위에 강력하게 말해야지, 무 자르듯이 일괄 30% 삭감이 무슨 경우예요? 다음 달에 신제품 출시하는 것 알면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나라고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불만 있으면 사장한테 직접 항의하라고! 안 그래도 경영진이 우리 재무팀만 매일같이 볶아대는데 강 팀장까지 짜증 나게, 진짜.”


재수없어서라도 안해줄테다 (사진 : 신서유기)

저런! 보이시죠? 강 팀장은 대화 속에서 자신들은 피해자, 최 부장을 ‘현업 부서 고생은 신경도 안 쓰고, 생각도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직원들을 괴롭히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했습니다. 최 부장 역시 자기를 ‘다른 편’ 특히 ‘악당’으로 취급한 강 팀장에게 까칠하게 굽니다. 


강 팀장은 원하는 것을 얻기는커녕 미운털이 박히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영업팀 경비 처리는 더 힘들어지겠네요.


갈등 상황일수록 오히려 상대방과 같은 편이 되세요


원하는 걸 얻으려면 상대방과 같은 편이 되어야 합니다. 재무팀으로 달려가기 전에 최 부장의 처지를 잠깐 생각해봅시다. 예산 30% 삭감을 전달하는 사람은 뭐가 좋겠습니까? 위에서 시키니까 거센 항의와 비난을 꾹 참으면서 하는 거죠. 같은 월급쟁이 처지에서 짐작할 수 있는 짠한 마음을 갖고 얘기를 시작합시다. 


“최 부장님, 부서 예산을 30% 삭감한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놀랐어요. 재무팀도 비상이겠네요. 회사 상황이 그렇게 안 좋은가요?(같은 편 강조 ①)”


“후유…, 말도 마. 올해 영업이익률이 절반으로 곤두박질쳤잖아. 위기 상황이라고. 그래서 모든 부서의 운영비를 30% 삭감하라고 위에서 난리야.”


“부서들 반발이 만만치 않겠네요. 괜찮으세요? 경영진 등쌀에, 직원들 항의에, 진짜 고생 많으시겠네요.(같은 편 강조 ②)”


다른 동료들의 거센 항의 때문에 마음이 상했던 최 부장은 강 팀장의 이야기에 얼굴이 조금 누그러져서 대답합니다. 


“강 팀장, 진짜 말도 마. 어찌나 들볶는지 요즘 같아서는 사표 내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올라온다고. 진짜 치사하고 더러워서 말이야. 직원들은 나만 원망하고.”


“아이고, 그렇다고 그만두시면 저희는 어떡합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부서 예산 절감 계획서는 잘 작성해볼게요. 다른 팀장들한테도 제가 잘 얘기하고요.(같은 편 강조 ③)”


“그래, 고마워.”


우리는 같은 편. 알죠? (사진 : 픽사베이)

기존과 차이가 보이시나요? 강 팀장은 계속해서 최 부장과 자기가 같은 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재무팀 최 부장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립니다. 이때 강 팀장은 요구 사항을 조심스럽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다음 달에 신제품이 나오는데, 출시 두 달 동안은 영업을 집중적으로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혹시 이번 3/4분기는 기존 예산대로 하고, 4/4분기는 허리띠를 졸라매서 60% 삭감하면 어떨까요? 그럼 전체로는 30%가 되거든요.(요구 사항) 곤란하시면 제가 본부장님께 한번 말씀드려볼까요?”


“아냐. 괜찮을 것 같아. 신제품 출시하면 영업비용 드는 건 다 아는 사실인데 뭐. 그리고 4/4분기에 예산 여유가 좀 생길 것 같은데 그때 좀 챙겨줄게. 60%나 깎아서 어떻게 일하려고.”


“이해해주셔서 진짜 감사해요. 바쁘실 테니 시간 그만 뺏을게요. 예산 계획안은 얼른 작성해서 내겠습니다.”


“그래그래. 고마워. 나중에 끝나면 밥이나 한번 먹자고.”


강 팀장은 신제품 출시하는 3/4분기 예산은 그대로 두고, 영업비용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4/4분기 예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냅니다. 게다가 최 부장은 예산에 여유가 생기면 영업팀부터 챙겨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연한 호의입니다. 왜냐하면, 강 팀장은 자신과 같은 편이니까요. 


같은 편끼리는 원래 서로 도와야 하는 법입니다.

설득의 관건은 '우리가 같은 편'임을 보여주는 것 (사진 : 픽사베이)


상대방은 공략해야 하는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순간 상대방은 100%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경계 태세로 들어가죠.

우리는 상대방과 한 편입니다.공통의 악당을 해결해야 하는 동지죠.

설득의 성패는우리가 같은 편임을 얼마나 잘보여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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