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연 Apr 21. 2020

디즈니처럼 매뉴얼을 사용하면 명쾌해집니다

개인차를 줄이는 표준

100년 동안 사랑받는 기업, 월트 디즈니


1923년에 설립한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곧 100년 기업 반열에 오릅니다. 기업의 생애가 대체로 짧은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100년 넘은 기업이 꽤 많은 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P&G(1837년), GE(1878년)에 비하면 월트 디즈니가 젊은(?) 기업으로 보일 정도니까요.


To make People Happy


짧지만 강력한 비전으로 시작한 기업의 위상은 오늘날에도 견고합니다. 엘사 열풍을 일으켰던 <겨울왕국>부터 수많은 ‘어른이’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어벤져스>까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힘이 여전하니까요.


세계 각국에 있는 디즈니랜드를 찾은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 보세요. 그야말로 천국에 온 듯한 표정입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아이언 슈트가 개발되면 가지고 있는 빌딩을 팔아서라도 사겠다는 억만장자가 꽤 많을 겁니다.

어린이와 어른이들을 설레게 하는 캐릭터들은 여전히강력!


디즈니의 경쟁력은 뭐니 뭐니 해도 스토리입니다. 결국 이 스토리의 경쟁력, 정확하게 말하면 캐릭터의 매력도가 명성을 지속시킵니다. 한때 이 제국이 휘청거렸던 이유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생겨나지 않은 채 디즈니랜드 등의 소비 공간만 계속 확장했기 때문입니다. 20년 전 드라마의 세트장 같은 초라함이었죠.


하지만 중심을 잃고 흔들렸던 디즈니는 창업자의 로드맵처럼 스토리 콘텐츠 중심으로 균형을 되찾으면서 전 세계 사람들을 다시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디즈니는 그렇게 많은 단기 직원을 데리고 어떻게 일할까?


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큰 고민은 직원 교육입니다. 사람은 부족하고 할 일은 많은데 직원의 근속연수는 길지 않고, 단기 아르바이트생도 넘쳐납니다. 업무 인수인계를 꼼꼼하게 하고 나름대로 업무 매뉴얼도 만들어보지만 제대로 하는 직원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오히려 속이 터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요즘 애들은 너무 대충해요. 제가 어떤 아르바이트생에게 매장 화장실을 두 시간에 한 번씩 청소하라고 했거든요. 비품들도 채워놓고요. 그런데 가보면 바닥에 물이 흥건하고, 화장지는 다 쓰기 일보 직전이에요. 화를 내면 그때뿐이고요.”
애도 아닌데 어디까지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거야? (사진 : 픽사베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디즈니랜드가 직원들에게 어떻게 지시하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디즈니랜드는 단기 근무자의 끝판왕 같은 곳입니다. 방학이나 휴식기를 이용해서 단기간 근무하는 직원들이 정직원보다 많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디즈니랜드는 입사한 지 몇 주 또는 몇 달밖에 안 된 직원을 잔뜩 데리고도 세계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비결이 뭘까요?


《How To 디즈니 시스템&매뉴얼》 저자이자 20년 동안 디즈니랜드에서 일한 오스미 리키는 ‘디즈니 특유의 매뉴얼 시스템’ 덕분이라고 설명합니다. 디즈니의 매뉴얼은 옆에서 계속 교육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직원 입장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우리 회사에도 매뉴얼 있는데요?
그래도 제대로 안 해요

음…, 혹시 매뉴얼을 이렇게 만든 게 아니었을까요?

<세면대 청소 매뉴얼(나쁜 예)

1. 세면대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는다.
2. 수도꼭지를 전체적으로 닦는다.
3. 거울을 닦는다.
4. 휴지를 보충한다.

출처 : 오스미 리키, 《How To : 디즈니 시스템 & 매뉴얼》, 손나영 옮김, 도슨트출판사, 2017, p.45


사람마다 ‘깨끗하다’라고 생각하는 기준점이 다릅니다. 누구는 세면대에 커피 자국 같은 것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누구는 수전까지 반짝거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즈니는 이런 간극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글로벌 조직이다 보니 일하는 직원들의 교육 수준, 문화 배경, 나이 등이 천차만별이거든요. 그래서 지시 사항을 누가 들어도 같은 뜻으로 알아듣도록 만드는 데 정교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깨끗한 화장실, 깨끗한 방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오른쪽 방은 17세 고등학생 입장에서는 괜춘한 것처럼.(사진 : 픽사베이)


그들이 지시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먼저, 원하는 결과를 머릿속으로 상상합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깨끗한 싱크대’의 모습을 말이죠.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행동과 순서’를 분석한 후 구체적으로 매뉴얼화합니다. 누구라도 보고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음은 디즈니의 전형적인 매뉴얼입니다.


<세면대 청소 매뉴얼(좋은 예)

1. 세면대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는다
2. 세제와 스펀지로 세면대 안쪽을 닦는다.
3.  걸레를 물이 흐르지 않을 정도로 짜서 반쪽 면으로 세면대 안쪽을 구석구석 닦는다.
4.  물기를 꽉 짠 걸레의 나머지 부분으로 세면대 바깥쪽을 구석구석 닦는다.
5. 마른걸레의 반쪽 면으로 세면대의 남은 물기를 닦는다
6. 나머지 부분으로 거울/수도꼭지의 물방울과 물때를 닦는다.
7. 남은 휴지가 1/3 이하라면 남아 있어도 보충한다.

출처 : 오스미 리키, 《How To : 디즈니 시스템 & 매뉴얼》, 손나영 옮김, 도슨트출판사, 2017, p.47



Greeting with Clapping!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디즈니는 세계 최강의 스토리 기업인 만큼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직원 매뉴얼을 만들 때도 언어를 우아하고 재치 있게 사용하죠.


디즈니랜드의 꽃은 디즈니의 온갖 캐릭터가 모여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퍼레이드입니다. 저 멀리서 퍼레이드가 다가오면 직원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칩니다.

“Greeting with Clapping!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그러면 꼬맹이 손님부터 어른까지 손뼉을 치기 시작하고, 모두 기대감으로 부풀어 즐거운 얼굴이 됩니다. 그런데 오스미 리키는 이 대사가 흥을 돋우기 위한 것도 있지만 사실은 안전을 위한 매뉴얼이라고 설명합니다.


퍼레이드가 가까이 다가오면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앞에 가서 보고 싶어 합니다. 자연스럽게 앞 사람을 밀게 되죠. 모든 사람이 조금씩 앞 사람을 밀다 보면 넘어지기 쉽고, 연쇄적으로 사람이 깔리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크게 다치게 될 겁니다. 웃음과 음악 소리만 가득한 놀이동산에서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고함과 경고 휘슬로 사람들을 단속하는 것은 디즈니답지 않습니다.


그래서 디즈니는 고민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앞 사람을 못 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 손을 못 쓰게 하면 되잖아!”


매뉴얼을 만들어서 안전 요원에게 퍼레이드가 다가오면 “박수로 맞이해주세요!”라고 외치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기다림에 지쳐 로프에 위험하게 매달려 있던 꼬마들이 똑바로, 안전하게 서서 손뼉을 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손뼉을 치려면 어느 정도 간격이 필요하므로 자연스럽게 앞 사람을 미는 위험한 행동도 막을 수 있습니다.


직원의 통솔력과 큰 목소리가 아니라 매뉴얼로 지켜지는 안전함 (사진 : 픽사베이)

매뉴얼을 만드는 건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매뉴얼이 없으면 설명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설명하는 사람조차 원래 취지와 다르게 알고 있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많은 글로벌 회사는 문의 사항이 있으면 먼저 회사 게시판에서 답을 찾아보도록 직원들에게 가르칩니다. 제대로 찾지 않은 상태에서 질문하면 해당 URL 링크만 보내준다고 합니다. 친절하게 길게 대답하면 오히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라는 눈총을 받습니다.


어떻게 하면 비슷한 질문에 비슷한 문제를 처리하느라 시간을 죄다 쓰면서 번아웃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디즈니의 매뉴얼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업무에 활용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언어 도구를 배우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책 바로 가기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


이전 07화 소비자는 낯선 익숙함을 선호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