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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하도 상점가 업종과 상품의 변화 트렌드

『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다섯번째 글

by 멘토K


서울 명동 지하도상가의 초입을 들어서면 한눈에 느껴지는 변화가 있다.


예전에는 의류와 패션 액세서리가 빼곡히 들어서 있던 자리에 휴대폰 액세서리, 저가 화장품, 캐릭터 소품점이 눈에 띈다.


또 다른 구역으로 가면 오래된 가발 가게와 맞춤 정장점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하도상가의 업종과 상품은 끊임없이 바뀌었지만, 그 변화가 소비자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잡았는지는 의문이다.


1970~80년대 지하도상가의 핵심 업종은 의류와 패션 잡화였다.


당시 젊은 층은 지하도상가를 최신 유행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했다.


당시 청계천과 명동 지하도상가는 말 그대로 ‘패션의 거리’였고, 강남역 지하상가는 10대와 20대의 집결지였다.


값싸고 다양한 상품, 그리고 한정된 유통망 속에서 지하도상가는 트렌드와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잡았다.


1990년대 들어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도심에 들어서면서 지하도상가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이 시기에 나타난 변화가 바로 저가 위주의 생활용품과 캐릭터 상품이다.


특히 지하철을 오가며 충동구매하기 좋은 소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이 변화는 장기적으로 차별성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상품 경쟁력이 아닌 가격 경쟁력에 의존하다 보니, 유사한 점포들이 늘어나며 상권의 매력은 점점 희미해졌다.


또 다른 흐름은 스트리트푸드와 패스트푸드의 유입이었다.


바쁜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지하도상가는 빠르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였다.


떡볶이, 김밥 같은 분식집에서부터 글로벌 패스트푸드 체인까지 다양한 음식점들이 들어섰고, 지금도 일부 지하도상가에는 이 문화가 남아 있다.


여기에 택배 접수나 간단한 인쇄·복사 서비스처럼 직장인들을 겨냥한 비즈니스 편의 기능도 덧붙여졌다.


그러나 이런 업종 역시 차별적 기획보다는 ‘편의’에 머물며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2000년대 이후 온라인 쇼핑몰과 모바일 커머스가 급부상하면서 지하도상가의 업종 변화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소비자들은 클릭 한 번으로 의류와 잡화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고, 배송 속도도 빨라졌다.


지하도상가는 점차 오프라인 쇼핑의 주 무대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대신 남은 공간에는 저가 화장품, 휴대폰 액세서리, 기념품점이 채워졌다.


이는 곧 ‘저가 중심 상권’이라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최근 들어서는 일부 지하도상가에서 푸드존, 카페, 체험형 매장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점포가 아니라, 잠시 머물며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다.


예컨대 을지로 지하도상가의 일부 구역은 청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형 매장을 유치하며 활기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아직 제한적이고, 상권 전체를 바꾸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여기서 중요한 인사이트가 있다.

지하도상가의 업종 변화는 늘 ‘뒤따라가는’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한때는 유행을 선도했지만, 이후에는 대형 유통과 온라인 쇼핑몰이 차지하지 않은 틈새를 메우는 데 집중했다.


문제는 그 틈새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값싼 물건이나 일시적 유행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앞으로의 변화는 단순히 업종과 상품의 변화를 넘어 경험과 스토리 중심의 재편이 필요하다.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공간에 머물고 싶고, 브랜드의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 기반 브랜드와 협업하거나, 도심 직장인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서비스, 로컬 크리에이터의 팝업 스토어 같은 차별화된 콘텐츠가 필요하다.


현재의 격차는 명확하다.

과거 지하도상가는 도시 소비 문화의 선두였지만, 지금은 성수동 등 핫플레이스 들이 주도하며 후행자 역할에 머물고 있다.


이 격차를 줄이려면 소비자와 동시대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상품과 업종을 유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전략은 단순히 개별 상인의 선택에 맡길 것이 아니라, 지하도상가 전체가 하나의 기획된 공간으로 운영될 때 가능하다.


지하도상가의 업종 변화는 단순한 상권 재편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공간이 시대와 어떻게 호흡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낡은 점포와 셔터 사이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가능성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팔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를 묻는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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