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두번째 글
서울 일부 도심의 지하도상가를 지나다 보면 셔터가 내려진 점포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
한때 이곳은 직장인과 관광객,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지금은 발걸음을 재촉하는 통로로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누구는 “이제 지하도상가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하도상가는 정말 사라져야 할 공간일까?, 아니면 다시 태어날 기회를 품고 있는 것일까?
우선 현실부터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전국의 지하도상가는 대부분 1970~80년대에 건설되었다.
당시 지하철과 함께 만들어진 공간은 도시 인프라의 일부였고, 자연스럽게 유동인구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단순한 쇼핑 수요는 급격히 줄었고, 대형 복합몰이나 로드숍이 훨씬 더 쾌적하고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결국 지하도상가는 ‘저렴하지만 특색없고, 불편한 공간’이라는 낡은 이미지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쇠퇴”라고만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지하도상가는 여전히 도시의 중요한 입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하도상가는 지하철 환승구간이나 주요 교통의 관문에 위치해 있다.
매일 수만 ~수십만명이 이 공간을 지나간다.
다만 그 흐름이 점포 안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눈앞의 공실률만 보지 말고, 도시 구조 속에 남아 있는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 해외 사례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다.
일본 도쿄의 ‘긴자 지하상가’는 오래된 공간이지만 꾸준히 리뉴얼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지켜왔다.
단순한 상점 나열이 아니라, 특정 테마와 맞춘 점포 구성, 편리한 동선 설계, 최신 소비 트렌드 반영을 통해 여전히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반대로 오사카의 한 소규모 지하상가는 시설 개선과 콘텐츠 전환에 실패하면서 결국 폐쇄를 맞이했다.
같은 ‘지하도상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극명히 갈린다.
국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강남권역의 일부 지하도상가는 젊은 층과 관광객을 겨냥해 꾸준히 점포 구성을 바꾸고, 문화행사와 연계하며 활력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있었다.
가능성은 있다.
다만 그것은 단순히 리모델링 몇 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첫째, 공간을 단순한 판매점포의 나열이 아니라 ‘도심 속 또 다른 경험의 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둘째, 운영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행정과 상인조직이 충돌하는 구조로는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셋째, 소비자와 연결되는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하다.
로컬 브랜드, 체험형 매장, 문화와 결합된 기획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오늘 이 자리에서 해법을 성급히 단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하도상가가 가진 양면성을 정확히 보는 일이다.
한쪽에서는 ‘쇠퇴’라는 현실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잠재력’이라는 가능성이 공존한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이 공간을 도시의 짐으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도시 거점으로 다시 세울 것인가?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과제와 조건들을 하나씩 짚어보고자 한다.
소비자의 변화를 깊이 들여다보고, 도시 구조 속에서 지하도상가의 입지를 다시 해석하며, 운영과 관리, 주변 상권과의 연계 등 다양한 측면을 차근차근 탐구할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지하도상가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하도상가의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다.
사라질 공간일 수도, 새로운 기회의 무대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갈림길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참고 출처
서울연구원, 「도시 유통구조 변화와 지하도상가」(2020)
국토연구원, 「상권 재편 속 지하도상가의 과제」(2021)
일본 국토교통성, 「도심 지하상가 활용 사례 연구」(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