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다섯번째 글
요즘 젊은 세대에게 “지하도상가에서 옷을 사본 적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대부분 고개를 젓는 쪽이다.
그들에게 쇼핑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이뤄지는 일이고, 결제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몇 분 사이에 끝나 버린다.
클릭 몇 번이면 집 앞까지 배송되는 편리함 앞에서, 지하도상가에 내려가 직접 발품을 팔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온라인쇼핑의 성장은 단순한 채널 전환을 넘어 소비의 ‘기준’을 바꾸었다.
가격 비교는 기본이고, 리뷰와 별점은 구매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과거에는 지하도상가에서 직접 보고 만져야 알 수 있던 품질이 이제는 소비자들의 경험 데이터로 증명된다.
그러니 지하도상가의 “값싸고 다양한 상품”이라는 장점은 온라인 플랫폼의 “편리하고 검증된 상품” 앞에서 힘을 잃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42조 원을 넘어섰다.
반면 오프라인 소매점, 특히 소규모 점포의 매출은 매년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하도상가의 존재감은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사람이 줄었다’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인식 속에서 지하도상가가 더 이상 쇼핑의 주요 무대로 자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장을 가보면 이 격차는 더욱 뚜렷하다.
한때 명동 지하도상가에는 ‘최신 유행 패션’을 찾아 전국에서 몰려든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이제는 주말에도 유동인구의 상당수가 단순 통행객이다.
점포 안을 기웃거리기보다 휴대폰 화면에 집중하며 걸어가는 이들이 더 많다.
강남역 지하도상가 역시 예전처럼 젊은이들의 쇼핑 메카라기보다, 지하철 환승 통로에 가까운 풍경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지하도상가의 설 자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온라인이 채우지 못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들어 아침 출근길이나 점심시간에 찾는 패스트푸드점이나 분식집, 급히 필요한 휴대폰 액세서리나 생활 소품, 혹은 단기간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저가 의류나 잡화 등은 여전히 지하도상가의 주요 수요다.
온라인은 ‘계획된 소비’에 강하지만, 지하도상가는 ‘즉시성과 편의성’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온라인은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화면 속으로는 음식의 냄새도, 옷감의 촉감도, 사람과의 대화도 담을 수 없다.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찾는 것은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는 감각적 만족과 사회적 경험이다.
지하도상가가 이 부분을 살릴 수 있다면, 온라인과는 다른 가치를 제시할 수 있다.
문제는 그동안 지하도상가가 이러한 차별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온라인쇼핑이 성장하는 동안 지하도상가는 여전히 ‘싼 물건 파는 곳’이라는 이미지에 머물렀고, 이는 결국 소비자의 발걸음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새로운 경쟁 환경에 맞는 전략적 전환이 부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온라인시대에도 지하도상가는 어떤 설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까?
첫째, 즉시성과 편리함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에 필요한 서비스를 모아놓은 ‘생활밀착형 플랫폼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둘째, 온라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감각적·사회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작은 푸드존, 체험형 매장, 창작자들의 팝업스토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온라인에서 보고 예약한 상품을 지하도상가에서 수령하거나, 오프라인에서 체험 후 온라인에서 재구매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오늘날 지하도상가의 위기는 단순히 공간 노후화 때문이 아니다.
온라인쇼핑 시대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속에서 지하도상가의 정체성을 재정립할 기회도 있다.
이제 지하도상가는 더 이상 과거의 영광에 머무를 수 없다.
온라인이 빼앗지 못하는 영역, 즉시성과 경험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곳으로 자리해야 한다.
결국, 지하도상가의 설 자리는 단순한 물건 판매가 아니라 도심 속 생활과 경험을 연결하는 허브가 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사라질 공간일지, 다시 태어날 기회가 될지는 바로 이 전환에 달려 있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