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여섯번째 글
서울의 어느 지하도상가를 걸어가면, 상점 앞에 서 있는 상인보다 오히려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과거에는 ‘들렀다 가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지나가는 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객의 발걸음이 끊기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여러 층위의 변화가 얽히며 지하도상가의 매력을 하나씩 약화시켰다.
첫 번째 이유는 낡은 공간 이미지다.
조명은 어둡고, 환기는 잘 되지 않으며, 간판은 제각각이다.
오래된 시설은 안전 문제까지 동반한다.
소비자들은 이런 공간을 ‘쾌적하지 않다’고 느끼고, 이는 곧 방문 의지를 꺾는 요인이 된다.
최근 서울 일부 지하도상가에서 리모델링을 단행했지만, 여전히 대다수 공간은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는 상품과 업종의 매력 부족이다.
과거에는 지하도상가에서만 살 수 있는 독특한 패션이나 액세서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더 저렴하고 다양한 상품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대형 복합몰은 브랜드와 체험을 동시에 제공한다.
지하도상가의 점포들은 여전히 저가 화장품, 액세서리, 잡화에 머물러 있는데, 이마저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상품이다.
결국 소비자가 굳이 지하도상가에 올 이유가 줄어든다.
세 번째는 동선의 불편함이다.
지하도상가는 본래 교통과 연결된 통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구조가 복잡해지고, 안내 표지판도 일관성이 부족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찾기 어렵고 불편한 공간’이 된 것이다.
명동, 을지로 일대 지하도상가를 가보면, 출구와 연결되는 통로가 미로처럼 얽혀 있어 방문 목적이 없는 사람들은 쉽게 지쳐버린다.
동선의 불편함은 체류 시간을 줄이고, 체류 시간이 줄면 매출도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네 번째는 고객 경험의 부족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해 오프라인 공간을 찾지 않는다.
‘어떤 경험을 얻을 수 있는가’가 방문의 핵심 동기다.
대형 쇼핑몰이 쇼핑과 함께 영화, 전시, 레저를 제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하도상가는 단순한 점포 나열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지 못했다.
작은 공연, 체험형 팝업, 로컬 브랜드와의 협업 같은 시도가 거의 없다 보니, 방문 동기가 약하다.
다섯 번째는 상인과 소비자 세대의 괴리다.
많은 지하도상가 상인들은 여전히 50~60대 이상이다.
이들이 지켜온 오랜 노하우는 소중하지만, 문제는 젊은 소비자와의 눈높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SNS를 통한 홍보, 디지털 결제 서비스, 트렌드에 민감한 상품 기획 등은 미흡하다.
실제로 한 상인은 “우리도 SNS 해야 한다는 건 아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세대 간 소통의 단절은 곧 소비자 유입의 단절로 이어진다.
여섯 번째는 주변 상권과의 단절이다.
지상 상권과 지하도상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오히려 경쟁 관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상에서는 카페와 로드숍이 활기를 띠는데, 지하는 고립된 공간처럼 남아 있다.
도시가 재편되면서 지상은 새로운 경험의 장으로 진화했지만, 지하는 여전히 ‘폐쇄적 상권’에 머물러 있다.
이 모든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지하도상가는 점점 ‘머물 필요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고객의 발걸음이 끊기는 것은 단순히 상권의 쇠퇴가 아니라, 도시 공간과 소비 문화가 변화하는 속도에 지하도상가가 따라가지 못한 결과다.
물론 이는 절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 고객이 떠났는지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다시 고객을 불러들이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낡은 시설은 리모델링으로 바꿀 수 있고, 평범한 상품은 기획과 협업으로 차별화할 수 있다.
불편한 동선은 설계와 안내 체계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경험 부족은 새로운 콘텐츠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직시하고, 변화할 의지를 실천으로 옮기느냐에 달려 있다.
고객의 발걸음이 끊긴 이유는 명확하다.
이제는 그 이유를 넘어, 다시 발걸음을 붙잡을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