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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통로형 상권'의 한계와 매력 요소의 부재

『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일곱번째 글

by 멘토K


지하도상가를 걷다 보면 늘 드는 생각이 있다.

이곳은 ‘머무는 공간’이라기보다 ‘지나가는 길’에 가깝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목적을 갖고 찾아오기보다 단순히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비를 피하는 통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통로형 상권’의 구조적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하도상가는 본래 교통과 쇼핑을 동시에 엮기 위해 만들어졌다.


출근길, 등굣길,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에 자연스럽게 점포들이 배치되어 있으니, 소비자의 발길을 붙잡기만 하면 매출이 이어졌다.


1970~80년대에는 이 방식이 성공적이었다.

교통 인프라와 상권이 결합된 지하도상가는 도시 생활의 혁신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사람들은 여전히 통로로는 이용하지만, 굳이 점포에 들어설 이유를 찾지 못한다.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매력 요소의 부재다.

단순한 통로 구조 속에 나열된 가게들은 비슷한 상품을 진열해 놓고 있을 뿐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서둘러 가는 길에 멈출 만큼 특별한 것이 없다.


예를 들어 명동 지하도상가를 걸어보면, 휴대폰 액세서리, 저가 화장품, 캐릭터 소품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이들은 저렴한 가격만을 무기로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더 싸고 다양한 상품을 즉시 만날 수 있다.


결국 고객은 점포를 외면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두 번째 문제는 머무를 이유가 없는 공간 설계다.

통로형 상권은 동선의 효율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휴식 공간이나 체험 공간이 부족하다.


의자 하나 놓여 있지 않은 좁은 복도, 공용 화장실조차 찾기 어려운 구조는 소비자에게 ‘빨리 지나가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반면 성공적인 상권은 고객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동선과 공간을 설계한다.


대형 복합몰이 끊임없이 카페, 라운지, 전시공간을 배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번째는 콘텐츠의 차별성 부족이다.

통로형 상권은 본질적으로 ‘잡다한 가게들의 모음’에 가깝다.


특정 테마나 스토리로 공간을 기획하지 않다 보니, 소비자는 어디를 가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을지로 지하도상가의 경우도 전자부품을 테마로 특화된 구역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무작위 배치에 가깝다.


매력 요소가 없는 단순 병렬 구조는 결국 고객의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네 번째는 상권 간 연계성 부재다.

지상과 지하가 단절되어 있다는 점은 통로형 상권의 치명적 한계다.


지상에서는 활발히 움직이는 카페, 패션 브랜드, 문화 공간이 있는데, 지하로 내려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도시 공간은 연결성이 핵심인데, 지하도상가는 이 연결 고리에서 소외되어 있다.


실제로 강남역 지하도상가를 예로 들어보자. 매일 수십만 명이 환승을 위해 오가지만, 실제로 매장에 들어서는 비율은 극히 낮다.


점포들이 단순히 통로 옆에 나열되어 있을 뿐, 고객을 끌어들일 만한 콘텐츠나 설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환승객의 발걸음을 매출로 전환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통로형 상권’의 한계가 드러난다.


통로형 상권의 문제는 단순히 매출 부진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지하도상가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소비자는 이곳을 ‘쇼핑 공간’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로 인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상권의 매력은 점점 더 희미해진다.


결국 공실률 증가, 매출 하락, 브랜드 이미지 약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당장 답을 내놓기보다는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사람들은 머물지 않는가?” 그리고 “무엇이 이곳을 멈추게 만들 수 있는가?”


매력적인 콘텐츠, 체험 요소, 편의 시설, 지상과의 연결성 등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다.


통로형 상권이라는 구조적 한계는 인정하되, 그 안에서 어떻게 새로운 매력을 만들 것인가는 앞으로 지하도상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오늘 우리가 직시해야 할 사실은 분명하다.

단순히 유동인구가 많다고 해서 상권이 살아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지하도상가가 여전히 ‘통로’에 머문다면, 고객의 발걸음을 붙잡을 수 없다.


매력 없는 통로형 상권은 결국 스스로 소멸할 수밖에 없다.


이제 지하도상가가 생존을 위해서는, 통로를 넘어 ‘머무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 멘토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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