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아홉번째 글
지하도상가를 진단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여기는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해요. 하루에 몇만 명은 오갑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의외다.
“그런데 정작 장사는 안 돼요.”
상권 분석에서 유동인구는 늘 중요한 지표로 언급되지만, 지하도상가의 현실은 이 단순한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왜일까?
첫째, 유동인구와 구매인구의 차이다. 지하도상가를 통과하는 수많은 사람 중 실제로 쇼핑을 목적으로 한 사람은 극히 일부다.
대부분은 단순한 환승객이거나 날씨를 피하기 위해 잠시 지나가는 보행자다.
즉, 유동인구가 곧 ‘잠재 고객’이 되지 않는다.
강남역 지하도상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루 20만 명 이상이 지나가지만, 실제 매장에 들어서는 고객은 극히 제한적이다.
상인들은 ‘사람은 많은데 팔리질 않는다’는 역설을 체감한다.
둘째, 머무름의 부재다.
유동인구가 많아도 머물 공간이 없으면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하도상가는 기본적으로 통로형 구조다. 빠르게 이동하기에 적합하지만, 고객이 멈춰서서 구경하고 소비할 환경이 부족하다.
좁은 통로, 불편한 휴식 공간, 지하 특유의 답답한 분위기는 고객을 오래 붙잡지 못한다.
반대로 지상에서는 횡단보도 중심의 보행환경이 개선되면서, 깨끗한 거리와 넓은 보행공간이 쇼핑과 휴식이 결합된 체험형 소비로 이어진다.
셋째, 상품 경쟁력 부족이다.
유동인구는 곧 소비 잠재력이라기보다, 어디서든 살 수 있는 상품이라면 굳이 지하도상가에서 구매하지 않는다.
저가 액세서리, 화장품, 의류 등 지하도상가의 주력 상품들은 이미 온라인에서 더 저렴하고 다양한 옵션으로 제공된다.
고객이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하도상가에서 구매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넷째,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변화와의 괴리다.
요즘 소비자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성수동 카페거리, 연남동의 개성 있는 편집숍, 더현대 서울 같은 복합몰은 소비자를 위한 이야기를 제공한다.
반면 지하도상가는 체험과 콘텐츠가 부족하다. 유동인구는 많지만, 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닿지 못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다섯째, 심리적 진입장벽이다.
지하도상가는 밝 고 깨끗한 곳도 많지만, 어둡고 답답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낡은 조명, 노후화된 시설, 반복되는 공실은 고객의 기대를 낮추고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반면 지상은 도시재생과 보행환경 개선으로 세련되고 밝은 이미지를 얻고 있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지상과 지하가 주는 ‘공간 경험의 격차’가 소비행동을 갈라놓는다.
이러한 문제들은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서울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지하도상가의 유동인구 대비 구매율은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복합몰은 체류 시간을 늘리면서 매출 전환율을 높이는 전략으로 성공하고 있다.
결국 단순한 유동인구 숫자만으로는 상권의 성패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지하도상가의 해법은 무엇일까?
먼저, 유동인구를 ‘지나가는 사람’에서 ‘머무르는 고객’으로 바꾸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공간의 매력, 상품의 차별성, 경험 콘텐츠의 결합으로 가능하다. 단순히 발걸음을 세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멈춘 고객이 머물고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유동인구의 성격을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어떤 연령대가, 어떤 시간대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지하도상가를 통과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예컨대 직장인 점심시간대에 적합한 간편식 매장이나, 젊은 층의 저녁 유입을 겨냥한 팝업스토어 등은 맞춤형 전략이 될 수 있다.
지하도상가의 위기는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은 많은데, 그들이 고객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유동인구와 구매인구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야말로, 지하도상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핵심 과제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