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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70~80년대탄생 배경과 현재의 격차

『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세번째 글

by 멘토K


오늘날 지하도상가를 걸어보면, 낡은 조명과 긴 셔터 행렬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 공간은 처음부터 쇠퇴를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1970~80년대 지하도상가는 도시의 자랑이자 생활 혁신의 상징이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 지하도상가는 어떤 배경 속에서 탄생했고, 지금과는 어떤 격차를 보여주고 있을까.

1970년대 초, 서울은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며 교통과 상업 공간 부족 문제에 시달렸다.


지상 도로는 이미 포화 상태였고, 새로운 상업지대를 만들 땅은 한정적이었다.


이때 지하 공간은 새로운 해답으로 주목받았다.

1970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과 함께 시청, 종각, 명동 일대에는 자연스럽게 지하상가가 들어섰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모여드는 시민들이 곧바로 소비층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지하도상가는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었다.


최신 유행 패션과 액세서리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이었고, 비 오는 날에도 편리하게 둘러볼 수 있는 ‘실내 거리’였다.


강남역 지하상가가 대표적이다.

1980년대 강남 개발 붐과 맞물려 강남역 지하도상가는 젊은이들의 약속 장소이자 유행의 발신지로 자리 잡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국제 도시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주요 도심 지하도상가가 리모델링을 거치며 더욱 세련된 공간으로 변모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온라인 쇼핑과 대형 복합몰이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면서, 지하도상가는 더 이상 ‘최신 유행’과 ‘편리함’을 상징하지 못한다.


오히려 ‘낡고 불편한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당시에는 시대적 요구에 완벽히 부합했지만, 지금은 그 요구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또한 1970~80년대의 지하도상가는 도시 성장의 ‘전위 공간’이었다.


새로운 교통망과 도시 인프라 확충이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유동인구가 흘러들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 구조가 다층화되고 생활권이 분산되면서 단순히 교통 동선 위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명동 지하도상가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실제 매출은 크게 떨어졌다.


단순 유동인구와 실제 소비를 연결해내는 힘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운영 체계의 차이도 크다.

과거에는 젊은 창업자들이 저렴한 임대료와 많은 유동인구를 기대하며 진입했다.


하지만 현재는 상인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청년 창업자의 유입은 거의 없다.


관리 주체 역시 지자체, 시설관리공단, 위탁관리사, 상인회가 얽히며 명확한 책임과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즉, 1970~80년대 지하도상가는 도시가 성장하던 시대의 ‘필요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와 소비자의 패턴이 완전히 달라진 속에서,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


격차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혁신을 멈춘 결과다.

앞으로 이 연재에서는 이러한 격차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더 깊이 다루고자 한다.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변화, 상권 구조의 재편, 그리고 운영 관리의 실패가 어떻게 오늘의 지하도상가를 만들었는지 짚어볼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현재를 비관하는 대신, 새로운 조건과 대안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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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출처

서울연구원, 「서울 지하도상가 변천사와 과제」(2020)
국토연구원, 「도시 인프라와 상업 공간 변화 연구」(2019)
강남구청, 「강남역 지하도상가 개발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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