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첫번째 글
서울의 한 지하도상가를 걸어가다 보면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절반 가까운 점포의 셔터는 내려져 있고, 열린 점포의 주인들마저도 손님 없는 가게 앞에서 무료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역이나 서울의 일부 지하도상가의 경우는 더더욱 쇠퇴하거나, 밤이면 노숙자들의 쉼터가 되기도 하는 상황에 있기도 하다.
이 풍경은 특정 한 곳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곳곳의 지하도상가가 공통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아, 일부 새롭게 리모델링을 통해 단장한 지하도상가의 경우 많은 유동인구와 공점포가 거의 없는 곳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하도상점가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기도 하다.
지하도상가는 한때 도시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1970~80년대에는 최신 유행이 모여드는 청춘의 거리였고, 교통 요지와 맞물리며 시민들의 생활권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4050년이 흐른 지금, 지하도상가는 낡은 시설, 줄어드는 고객, 세대교체의 실패, 변화하는 도시 구조 속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 지하도상가를 다시 이야기해야 할까?
첫째, 소비자의 변화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해 오프라인 공간을 찾지 않는다.
편리함은 온라인에서, 경험과 즐거움은 오프라인에서 얻는다.
하지만 지하도상가는 여전히 ‘값싸게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오래된 틀 안에 갇혀 있다.
세대와 시대의 변화를 놓쳤다는 점은 오늘의 위기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단서다.
둘째, 도시 구조와 교통환경의 변화다.
과거 지하철·버스 환승의 중심지였던 곳은 이제 도심 재편과 신도시 개발로 흐름이 달라졌다.
같은 유동인구라 해도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어떤 목적으로,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가’가 중요해졌다.
지하도상가는 이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셋째, 운영과 관리의 문제다.
지자체와 시설관리공단, 운영 위탁관리, 상인조직이 얽혀 있지만 시설관리 외 운영과 활성화에 관한 책임 있는 컨트롤타워는 뚜렷하지 않다.
시설관리와 상가 입찰 운영 등에 치중한 관리, 상인들의 고령화, 청년 창업자의 유입 부진, 상가 불법 전대와 임대료, 내부 갈등은 혁신의 동력을 갉아먹고 있다.
여기에 노후화된 시설과 안전 문제까지 겹치면서 지하도상가는 시민들에게 ‘편리한 공간’이 아니라 ‘피하고 싶은 공간’으로 인식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넷째, 주변 상권과의 단절이다.
지하도상가는 지상과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오히려 고립된 공간으로, 일부는 통행공간으로 주변상권과의 시너지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상 상권과의 시너지보다는 경쟁의 구도가 만들어졌고, 이는 상호 소모적인 구조로 굳어졌다.
이러한 과제들을 정리해 보면, 지하도상가는 단순히 낡고 쇠퇴한 상권이 아니라 도시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지 못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지하도상가는 쇠퇴했다"라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이 공간이 왜 쇠태되고 있는지, 어떤 조건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연재 『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나는 앞으로 30여편의 글을 통해 지하도상가의 현실과 문제, 소비 트렌드의 변화, 상권 구조와 도시 환경, 운영과 관리의 난제, 주변 상권과의 연계 가능성 등을 다각도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하도상가의 생존과 변신을 위한 조건들을 하나씩 찾아보고자 한다.
오늘의 첫 글에서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와 함께 묻고자 한다.
“지하도상가는 사라져야 할 낡은 공간인가?, 아니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잠재적 거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고, 과제를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변신의 조건은 시작된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