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좌충우돌 멘토링_2』 마흔 한번째 글
“멘토님, 투자 먼저 받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그래야 속도가 나잖아요.”
한참 동안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30대 초반의 대표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서비스 초기 유저 반응이 나쁘지 않고, MVP(최소기능제품)를 개선해 곧 베타 론칭도 앞두고 있다며, 지금 투자유치를 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했다.
이미 몇몇 투자자와 미팅도 진행 중이고, IR 피칭을 다듬고 있다며 자료를 보여줬다.
“음…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정말 투자 받아야 할까?”
나는 그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되물었다.
그의 눈빛에 당혹스러움이 비쳤다. 무언가 잘못했나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의도한 건 그의 발표를 부정하거나 폄하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IR 피칭 준비도 충실히 했고, 초기 트랙션(사용자 반응)도 나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혹시… 지금 투자 유치 말고, 다른 방법으로 다음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안은 검토해봤을까?”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투자’는 너무나 매력적인 키워드다.
누구나 투자유치를 성공했다고 하면 ‘대단하다’는 반응을 받는다.
그 자체가 신뢰의 척도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수많은 스타트업을 만나다 보면, 투자를 유치하는 것보다 '신뢰를 쌓는 것'이 훨씬 어렵고,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몇 년 전, ‘투자유치 성공’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언론에 소개된 한 스타트업의 대표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겉으로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지만, 내면은 무너지고 있었다.
“멘토님… 저, 솔직히 너무 무서워요.”
이미 투자금은 일부 들어왔고, 새로운 인력을 채용하고 마케팅도 시작한 상태였지만, 고객 리텐션은 낮고 제품 완성도는 아직 미흡했다.
무엇보다 팀 내부에 갈등이 발생하면서 조직은 흔들리고 있었다.
투자자는 기대를 걸고 있지만, 그 기대를 감당할 ‘신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지금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건 ‘신뢰의 잔고’야. 투자자가 아니라, 너 자신과 팀, 그리고 고객의 신뢰 말이야.”
스타트업에서 신뢰의 잔고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약속을 지키는 힘’이다.
고객에게 약속한 기능을 제때 제공할 수 있는가?
팀원들과 나눈 비전을 흔들림 없이 실행하고 있는가?
투자자에게 제시한 목표에 대해 현실적으로 도달 가능한 계획이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예’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면, 지금은 투자보다 신뢰를 먼저 챙겨야 한다.
신뢰의 잔고가 바닥난 상태에서 유치한 투자는 오히려 스타트업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는다.
초기 스타트업의 핵심은 ‘신뢰의 축적’이다.
이 신뢰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팀 내부, 고객, 파트너, 그리고 창업자 자신에게까지..
그날의 상담 말미, 나는 그 대표에게 한 가지 조언을 덧붙였다.
“투자는 외부의 돈이고, 신뢰는 내부의 자산이야. 신뢰라는 자산이 없이 돈만 유입되면, 조직은 흘러넘쳐도 방향을 잃어버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다시 IR 자료를 접었다.
그의 눈빛에는 고민이,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각성이 담겨 있었다.
투자보다 먼저, 신뢰의 잔고를 채우자.
그것이 진짜 ‘지속가능한 성장’의 출발점이다.
— 멘토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