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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소비자 동선 변화와 생활권 구조

『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열 두번째 글

by 멘토K


지하도상가의 생존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소비자 동선이다.


상권의 힘은 결국 사람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과거에는 교통과 상업이 일체화된 구조 속에서 지하도상가가 중심축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소비자 동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도시 구조가 변했고, 생활권의 개념도 확장되면서 지하도상가는 더 이상 예전의 ‘필수 경유지’가 아니다.


첫째, 교통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의 변화다.

1970~80년대 도심은 차량 위주의 교통체계였다.


보행자는 차도를 피해 지하도나 육교로 이동했고, 지하도상가는 그 동선 위에서 자연스럽게 고객을 확보했다.


그러나 최근 도시정책은 보행자 중심으로 재편됐다. 횡단보도가 확충되고, 지상 보행환경이 깨끗하고 쾌적하게 개선되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지상으로 옮겨갔다.


서울 광화문이나 을지로 일대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지하도를 거쳐야만 가능했던 이동이 이제는 지상에서 더 편리하게 이뤄진다.


그 결과, 지하도상가는 보행 동선의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부로 밀려났다.


둘째, 생활권 구조의 다변화다.

예전에는 직장과 주거, 소비가 도심에 집중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거권, 업무권, 상업권이 분산되고, 지역 단위 생활권이 강화되었다.


집 근처의 상권, 직장 인근의 복합몰, 주말에 즐기는 로컬 핫플레이스 등 일상 속 소비 동선이 다채로워졌다.


이는 곧 ‘굳이 지하도상가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된다.


예를 들어 성수동이나 연남동 같은 지역은 주거·문화·소비가 결합된 생활권으로 성장했지만, 지하도상가는 여전히 출퇴근 동선에 묶여 있다.


변화된 생활권 구조 속에서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셋째, 시간대별 동선 변화다.

과거 지하도상가는 출퇴근 시간대에 폭발적인 유동을 확보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원격근무, 유연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출퇴근 패턴이 분산됐다.


퇴근 후 동료와 모이는 장소도 예전처럼 도심 지하도상가가 아니라, 접근성이 좋은 복합몰이나 동네 맛집으로 이동했다.


동선의 변화는 곧 매출 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여전히 출퇴근 인구가 많다고 하지만, 이들의 체류와 소비는 예전 같지 않다.


넷째, 목적성 있는 이동과 무목적 소비의 단절이다.

현대 소비자는 이동의 목적이 뚜렷하다.

점심을 해결하려면 직장 인근 식당, 쇼핑은 온라인, 여가와 휴식은 핫플레이스. 지하도상가처럼 ‘지나가다 들르는 공간’은 동선에서 제외된다.


특히 MZ세대는 동선을 단순 이동이 아니라 경험의 연장으로 본다.


예컨대 성수동 카페 투어나 복합몰 데이트처럼 이동 자체가 콘텐츠화된다.


반면 지하도상가는 목적과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니, 자연스레 소비 동선에서 배제된다.


다섯째, 관광객 동선의 변화다.

예전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명동이나 동대문 지하도상가에서 대량 쇼핑을 하는 모습이 흔했다.


하지만 최근 관광 패턴은 ‘쇼핑’보다 ‘체험’과 ‘로컬 경험’ 중심으로 이동했다.


외국인 관광객은 이제 전통시장 체험, 로컬 카페, SNS에서 유명해진 포토스팟을 찾는다.


관광객 동선마저 바뀌면서, 지하도상가의 매력은 더욱 희미해졌다.


실제 사례를 보자. 강남역 지하도상가는 하루 평균 20만 명 이상이 오간다.


그러나 점포별 매출은 예전만 못하다. 출퇴근객이 여전히 많지만, 대부분은 환승을 위해 이동할 뿐 쇼핑 목적은 없다.


반대로 같은 지역의 지상은 보행환경 개선과 상권 기획으로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지상과 지하가 명확히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사례다.


소비자 동선의 변화와 생활권 구조의 재편은 지하도상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가장 근본적 요인이다.


단순히 점포를 늘리고,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이제는 소비자가 다시 지하도상가를 목적지로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동선을 바꾸지 못한다면, 적어도 그 동선 위에서 멈출 매력은 제공해야 한다.


결국 지하도상가의 생존 전략은 도시와 소비자의 생활 동선을 다시 읽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동선은 곧 소비이고, 소비는 곧 상권의 생명이다.


변화된 생활권과 소비 패턴 속에서, 지하도상가는 이제 ‘통로’가 아닌 ‘목적지’로 전환할 수 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 멘토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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