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열 한번째 글
한 세대 전만 해도 소비자들은 ‘싸게 살 수 있느냐’를 가장 큰 기준으로 삼았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가격이 저렴하다면 발걸음을 옮겼고, 품질이 약간 떨어져도 눈감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소비자는 다르다.
가격은 기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편리함과 경험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하도상가가 시대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
첫째, 편리함이 우선되는 소비 패턴이다.
온라인 쇼핑은 단 몇 번의 클릭으로 결제와 배송이 끝난다.
출근길 전철 안에서 장바구니를 채우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택배 상자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소비자들에게 지하도상가를 찾는 일은 상대적으로 번거롭다.
어디에 어떤 점포가 있는지 정보를 찾기 어렵고, 결제 방식도 불편하며, 환불이나 교환 절차 역시 온라인만큼 간단하지 않다.
소비자들은 편리함의 차이를 체감하며, 자연스레 지하도상가를 외면한다.
둘째, 경험이 곧 소비의 가치가 되는 현상이다.
요즘 MZ세대가 성수동이나 연남동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카페와 갤러리, 편집숍과 팝업스토어가 한데 어우러진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험’ 자체가 소비의 본질이 되었다.
심지어 대형 복합몰조차도 쇼핑 공간을 넘어 전시, 체험, 문화 활동을 제공한다.
반면 지하도상가는 단순한 점포 나열에 머물러 ‘사는 행위’ 외의 매력을 주지 못한다.
소비자들에게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이 없으니, 발걸음을 붙잡기 어렵다.
셋째, 체류 시간과 매출의 상관관계다.
상권에서 소비자는 오래 머물수록 돈을 쓴다.
그래서 현대적 쇼핑 공간은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카페, 라운지, 체험형 콘텐츠를 끊임없이 도입한다.
하지만 지하도상가는 ‘빨리 지나가는 통로’에 맞춰 설계돼, 머무를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의자 하나, 휴식 공간 하나 없는 곳에서 고객은 ‘머물러도 되는지’조차 망설이게 된다.
결국 체류 시간이 짧으니 소비도 늘어나지 않는다.
넷째, 편의 서비스의 미비다.
소비자들은 구매 이후 과정까지 고려한다.
간편 결제, 빠른 배송, 환불 정책, 포인트 적립 등 모든 과정이 매끄럽게 연결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지하도상가는 이런 서비스 측면에서 여전히 뒤처져 있다.
현금 결제나 단순 카드 결제에 의존하고, 온라인과 연동된 마케팅이나 A/S 체계가 부족하다.
소비자가 한 번 불편을 겪으면 재방문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다섯째, 공간 경험의 경쟁력이다.
편리함은 온라인이 장악했지만, 경험은 오프라인이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지하도상가는 이 경험적 요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밝고 세련된 분위기, 특색 있는 공간 연출, 체험과 구매가 결합된 기획이 부족하다.
결국 ‘온라인만 못하고, 오프라인만 못한’ 애매한 공간으로 남는 것이다.
실제 사례를 보자.
더현대 서울은 단순히 쇼핑몰이 아니라, ‘미래형 문화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쇼핑 외에도 예술 전시, 플랜테리어, 라이브 공연을 통해 소비자의 머무름을 이끌어냈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개점 1년 만에 MZ세대 방문 비중이 전체의 절반을 넘겼다.
같은 시기 인근 지하도상가는 여전히 “유동인구는 많지만, 매출은 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차이는 ‘편리함과 경험을 제공했는가’에서 갈렸다.
이제 소비자는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지 않는다.
편리해야 하고, 즐거워야 하고, 경험이 되어야 한다.
편리함은 온라인이 제공하지만, 경험은 오프라인만이 줄 수 있다.
지하도상가는 바로 이 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단순히 싸게 파는 공간이 아니라, 편리함과 경험이 결합된 생활 플랫폼으로 변모해야만 한다.
편리함과 경험을 외면한 공간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지하도상가가 다시 살아나려면, 소비자들이 찾는 가치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그 가치는 더 이상 가격이 아니라, 편리함과 경험이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