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彼者 心安也』 여덟 번째 글
살다 보면 꼭 이런 사람이 있다.
평소엔 아무 소식 없다가,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지인
“잘 지내지?”라는 인사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 뒤에는 늘 부탁이나 요청이 따라붙는다.
“혹시 자료 좀 줄 수 있어?”, “지인 소개 좀 부탁해요”, “시간 나면 이것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정작 내가 필요할 때는 바쁘다는 말 한마디로 끝내버린다.
한 직장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반가운 마음에 커피를 마셨는데, 대화의 절반은 “요즘 회사에서 인재를 찾고 있는데, 네가 아는 사람 중에 추천할 만한 사람 없어?”였다.
결국 그 자리는 인맥 탐색을 위한 자리였다.
상대는 대화 후에도 ‘고맙다’는 인사 메시지 한 줄 남기고 또 몇 달간 연락이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그 사람에게 ‘사람’이 아니라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이런 관계는 의외로 많다.
동창 모임에서조차 “이번에 우리 애가 대학 간다는데, 혹시 조언 좀…”으로 시작해 결국 도움 요청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겉으로는 인간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래적 관계에 가깝다.
사람은 누구나 필요할 때 누군가를 찾는다.
하지만 그것이 일방향일 때, 관계는 더 이상 관계가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도구적 관계(instrumental relationship)’라고 부른다.
목적 달성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는 관계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의 감정보다 ‘효용성’을 우선시한다.
그리고 대부분 죄책감도 크지 않다.
왜냐하면 “나도 언젠가 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도움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관계 속에서 ‘필요’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라면 자연스럽지만, 한쪽만 계속 주는 관계는 결국 피로로 끝난다.
한 지역 커뮤니티의 사례가 있다.
모임 내에서 특정 인물이 늘 ‘필요할 때만’ 연락을 했다.
행사가 있을 때만 참여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만 나타났다.
처음엔 모두 웃으며 받아줬지만, 몇 번 반복되자 그를 향한 신뢰는 급격히 떨어졌다.
결국 그 사람은 모임에서 점점 고립됐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이용’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대할 때는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거리를 조절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첫째, ‘관계의 맥락’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모든 지인이 친구는 아니다.
어떤 관계는 일시적 이해관계로 맺어진다.
그런 관계라면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둘째, ‘주는 사람’의 역할을 스스로 정해야 한다.
상대의 요청을 모두 들어줄 필요는 없다.
내가 줄 수 있는 범위와 아닌 범위를 명확히 해두는 게 좋다.
단호함이 관계를 깨뜨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장치가 된다.
셋째, ‘필요할 때만 오는 사람’을 통해 내 관계의 진짜 모습을 점검할 수 있다.
누가 진심으로 나를 아끼고, 누가 나를 이용하는지를 구분하는 기회가 된다.
일방적인 관계에 지치기보다, 나를 진심으로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는 편이 훨씬 건강하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을 원망하기보다,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마음의 피로를 줄인다.
그들은 관계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을 바꾸려 하기보다, 나의 경계를 분명히 세우는 것이 현명하다.
관계의 본질은 ‘서로의 필요’보다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데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만 떠올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안부를 물어올 수 있는 사람.
그런 관계가 진짜 관계다.
그리고 그 차이를 알아볼 줄 아는 순간, 내 마음은 조금 더 편안해진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