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스물 다섯번째 글
지하도상점가를 오래 들여다보면, 변화가 더딘 이유가 단순히 공간의 낡음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눈에 보이는 문제는 시설이지만, 진짜 원인은 운영의 방식, 더 정확히 말하면 지속 가능한 관리체계의 부재에 있다.
수십억 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하고도 불과 몇 년 만에 다시 ‘옛 풍경’으로 돌아가는 지하도상가가 적지 않다.
이는 예산 부족도, 의지 부족도 아니다. 새 옷을 입혀도 오래 입지 못하는 이유는 그 옷을 관리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도시의 지하 공간을 조사하면서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왔다.
“쇠퇴한 지하 공간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인공호흡기는 무엇인가?”
그 답은 결국 사람, 구조, 그리고 투명성이었다.
지하도상가는 지자체, 시설관리공단, 상인회, 위탁운영사 등이 얽혀 있는 복합적 구조다.
문제는 이들 기관의 목표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목표: 사고 방지, 안전 관리
상인의 목표: 매출 증가, 고객 확보
행정의 목표: 예산 집행과 절차 준수
이 방향성이 충돌하면, 조명 교체 하나조차 몇 달씩 논의만 하다 골든타임을 놓친다.
이런 구조에서는 어떤 변화도 지속될 수 없다. 지속 가능한 개선을 위해서는 역할을 분리해야 한다.
시설 안전·관리 = 공공
마케팅·활성화 전략 = 전문 경영조직(PM)
도시 시설은 행정이 담당하고, 상권 활성화는 전문가가 담당해야 한다.
이것이 해외 주요 상권이 이미 채택한 구조이며, 지하도상가에도 반드시 필요한 모델이다.
지하도상가는 폐쇄형 구조이기 때문에 상인들이 만드는 분위기가 곧 이용자 경험의 전부다.
그러나 현실에서 상인 참여는 늘 “바쁘다”, “왜 해야 하냐”는 반응으로 이어진다.
참여가 노동이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의 지하도상가가 비교적 성공적인 리뉴얼 효과를 낸 이유는
상인회가 자율 점검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참여가 ‘실질적 혜택’으로 돌아오도록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수 점포 관리비 감면
매장 홍보 배너 우선 배치
공동 마케팅 참여 점포에 우대 혜택
위반 점포 패널티 명확화
‘참여하면 이익이 생긴다’는 구조가 생기면 상인들은 움직인다.
지속 가능한 관리체계는 규제가 아니라 인센티브로 작동해야 한다.
많은 지하도상가는 아직도 운영진의 감각과 경험에 의존한다.
왜 공실이 생겼는지, 어느 구간에서 고객이 멈추는지, 평균 체류 시간이 얼마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권은 감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제는 지하도상가도 데이터 기반 운영이 필수다.
유동 인구 변화
체류 시간 분석
고객 시선 히트맵
공실 위험 구간 모니터링
업종별 매출·수익 구조 변화
일본 오사카 ‘난바 워크’가 대표적 사례다.
고객 체류 시간이 가장 높은 구간을 분석해 문화·휴식 공간을 재배치했고,
이는 상권 전체의 ‘고객 이동 패턴’과 ‘매출 구조’를 바꿨다.
데이터는 의사결정의 근거를 만들어준다.
근거가 명확할수록 관리체계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하 공간에서 소비자가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세 가지다.
공기질
침수
화재
이 불안은 소비자의 머릿속에 깊게 자리 잡은 ‘지하 공간 편견’과 결합해 지하도상가 방문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유지관리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고객 신뢰를 만드는 핵심 마케팅 요소다.
공기질이 좋다
냄새가 없다
조명이 밝다
긴급 상황 대응이 빠르다
이런 사전 관리가 쌓이면 소비자는 “이곳은 안전하다”는 확신을 느낀다.
지하도상가가 살아나기 위한 첫 번째 마케팅은 ‘광고’가 아니라 위생·안전·관리 품질이다.
지하도상가의 문제 가운데 가장 해결이 어려운 것이 바로 불신이다.
“관리비가 어디에 쓰이는지 모른다.”
“익스테리어 비용이 왜 저렇게 나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런 말이 돌기 시작하면 어떤 정책도 지지를 얻지 못한다.그래서 필요한 것은 기존의 “회계 공개” 수준이 아니다.
상인들이 낸 비용이 어떻게 상권 활성화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투자-성과 보고 체계가 필요하다.
공동 마케팅 예산 집행내역
관리비 사용의 항목별 구체성
개선 사업의 성과 지표(유동량 증가·매출 변화 등)
신뢰는 정보에서 나오고, 정보는 공개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것은 관리체계를 운영할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리모델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관리와 운영은 매일의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의 문제다.
나는 수많은 지하도상가에서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시스템이 아니라 “역할을 맡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보았다.
지속 가능한 관리체계는 이렇게 완성된다.
구조를 만든다
규칙을 만든다
관리비 집행 체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지킬 사람을 만든다
지하도상가가 다시 살아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이 공간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를 끝까지 견디게 만드는 사람과 구조가 있을 때,
비로소 지하도상가는 “다시 숨 쉬는 공간”이 된다.
지금 당신의 상권에는
변화를 이끄는 관리자가 있는가?,
아니면 단지 감시자만 남아 있는가?
_ 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