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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그릇 Dec 13. 2020

고난을 겪는 사람, 그 옆에 있는 사람

사랑과 말씀에 매이다

욥기 8장 2절 ~ 3절

2절 :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3절 :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욥기 8장 20절 ~ 22절

20절 :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므로

21절 : 웃음을 네 입에, 즐거운 소리를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22절 :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빌닷의 말 하나하나를 보면, 틀린 말은 없다. 하나님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친구 욥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1장 1절)'이다. 그런 욥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고난의 원인도 알 수 없다. 그런 욥에게 빌닷은 하나님에 대해서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장황하게 내뱉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욥의 위로를 위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빌닷을 비롯한 친구들은 자신들의 믿는 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설명하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욥을 부축하여 하나님 앞에 함께 나아갔어야만 했다.


"위로자가 있어야 하는 자리는,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말없이 벗이 되어 주는 자리이다. 고난 당한 자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는 자리이다. 고난 당하는 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진부한 말들을 하거나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가 아뢰는 것이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그를 위해 단 한 번도 기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난 당하는 욥을 대하면서 자신들의 교리가 맞다는 주장을 하는데만 열을 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욥기 68~69페이지)




욥기 9장 15절 ~ 16절

15절 :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

16절 :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스스로 아무리 의롭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나는 잘 해 왔는데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기냐고 따지고 들어도, 때로는 분노를 터뜨리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비난할지라도 그것은 한낱 티끌같은 푸념일 뿐이다. 절대자, 심판자 앞에서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인간은 자신의 기준에서 스스로를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조자, 절대자의 권위로서 심판하실 분이다. 인간은 그 하나님께 오로지 간구할 뿐인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이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으면 그 응답을 부정하거나 알아 채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다. 가끔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때, 아들과 나의 관계를 살펴보곤 한다. 물론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든, 내가 하나님께 잘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게 되고 돌아 보게 된다.


고난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것은 맞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몸부림치며, 통곡을 하고, 간절히 기도한다.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매달린다. 은혜로운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도와달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 영화에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신부님을 향해 십자가를 던진 것처럼 하나님을 미워하고, 비난을 쏟아 붇는다. 그게 무지하고, 유한한 아들, 딸의 모습이고,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고난이 이어질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욥의 태도를 보면서 몇 가지 알게 된다. 첫째, 자신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실제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욥의 친구들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욥을 비난하고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유한함, 나약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절대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인간은 하나님께 속한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고난과 고통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일뿐, 하나님의 본성은 아니다. 그 허락하신 이유를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한다. 그리고 그 뜻에 맞게 겪어 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그 분께 절대 순종하게 된다. 




욥기 10장 1절 ~ 2절

1절 :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2절 :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이유를 모른채 극심한 고난과 고통을 겪고 있는 욥.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살기 힘들고, 마음에 불평이 가득하고,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한 그의 고백은 정직하다. 그는 인간으로서 커다란 고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일에 대해서 억지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욥은 자기에게 고난이 주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께 아뢰고 여쭤본다. 욥은 자신의 고난을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무조건 치부하지 않는다.



욥은 분노하거나 하나님께 불경스럽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은 알지 못하는 고난의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께 솔직하게 여쭤본다. 인간은 유한하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보잘것 없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곤 한다. 적어도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 이해에 어긋나면 틀리다고 여긴다. 때론 화를 내거나 다툰다. 마구 열을 낸다. 이것이 욥과 보통의 인간, 욥과 나의 분명한 차이다.



욥은 가식적이지 않았다. 그는 아는 체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너무 힘든데, 그 이유는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세상에는 고난을 겪는 사람과 이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거창하게 세상을 얘기하지 않아도 주변의 가족과 친구, 지인들을 보면 그렇다. 나는 고난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얘기할 만큼 잘 알지 못한다. 위로자의 자격도 없다.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 글을 읽게 되는 누군가 자신의 고난을 바로 바라보면 좋겠다. 고난 속에서 실망하지 않고, 잘 겪어 내면 좋겠다. 그리고 주변에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좋은 위로자가 되면 좋겠다. 이 모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Mentor works 멘토웍스. 김 완 종

인재경영전문가 / 역량평가사 / PHR

現 멘토웍스 편집장 겸 대표멘토

現 SNA-DDI 퍼실리테이터 
前 중견기업 인사팀장

『디지털시대의 리더십』 월간인재경영 기고 (2020)

『NCS 자소서 면접 합격 솔루션』 공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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