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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그릇 Dec 20. 2020

고난을 겪는 사람, 그 옆에 있는 사람(2)

사랑과 말씀에 매이다

욥기 11장

2절 :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12절 :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20절 : 그러나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들의 희망은 숨을 거두는 것이니라


욥의 친구들은 욥이 겪고 있는 고난의 정도와 그 이유를 알고자 하지도 않고, 스스로의 지식과 신념, 경험에 갇혀 있다. 오로지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며 욥을 훈계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입에 담았다. 욥은 자기에게 주어진 고난을 겪는 것이 억울하다고 할 만하다. 욥은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는 선한 사람이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그 잘난 훈계와 지적질로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다. 이에 대해 욥은 자신의 고난에 대한 친구들의 훈계에 반론을 제기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모두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자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심을 품는다. 헛된 신앙은 정당한 의심에 조차도 가로 막는다. 무조건 믿음으로 따르면 된다고 한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덮고자 한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또한 교리와 종교적 가르침으로 덮을 수도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무작정 덮지 말고, 하나님께 여쭤보자. 인간의 테두리 안에서, 인간의 종교적 이해로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을 예단하지 말고, 그분의 뜻을 알고자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하지 않은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종종 '하나님을 불러대곤' 한다. 여기서 소발은 욥을 공격하기 위해 하나님을 부르면서 마치 그분이 자기편인 양 말하고 있다. 우리 역시 기도할 때 이런 모습을 보이곤 한다. 즉 그릇된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는 것이다. 이때 드리는 기도는 진심으로 드리는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가 아닌, 사람 앞에서 하는 기도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욥기 90페이지) 


(하나님께서는) 남을 가르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믿는 교만한 사람들을 통해 가르치지 않으신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욥기 91페이지)


영적인 교육은 과시가 아닌 순종으로 나타난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욥기 92페이지)




욥기 13장 14절 ~ 16절

14절 :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15절 :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또는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

16절 :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욥이 스스로 생명을 해칠 리 없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께서 죽이려고 작정하시면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해석해도 자신이 이런 벌을 받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욥은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입으로만 자신의 고난을 이해하는 척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아뢰고자 한다. 변론하고자 하는 것이다. 죽을 때 죽을지라도 욥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여쭤보고자 한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변론하고자 하는 마음의 근저에는 '경건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 앞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확고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다. 욥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온전하신 분이므로, 자신의 친구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장황하게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변론하기 위해서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욥에게는 자신과 함께 하나님께 아뢸 수 있는 친구는 필요하지만, 여러 말로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척하는 거짓된 선생들은 필요 없다.



<<고난을 겪는 사람의 옆에 있는 사람을 위한 부분>>


우리는 가족, 친구, 연인, 직장동료, 지인들의 고난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어떤 생각,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혹시 얄팍한 지식과 경험으로 그들의 생각을 무시하거나 상황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의 아픔 자체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고, 우리의 주장을 밀어 넣으려고 하지는 않는가?





욥기 14장 13절 ~ 15절

13절 :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14절 :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15절 :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후에 경험들과 계시를 통해 본성을 만족시키는 본질적인 답을 찾아라. 또한 만족스러운 답을 찾기 전까지는 '나는 답을 찾았다' 라고 말하지 마라. 우리는 '오, 나는 그 일을 하나님께 다 맡길 것야' 라고 경건한 척 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그분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우리가 분별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순종하지 못함으로 그분의 섭리를 분별하는데 시간이 걸리곤 한다. 우리는 순종할 때 비로소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분별하게 된다. (105페이지)



<<고난을 겪는 사람을 위한 부분>>


고난과 고통 속에 있는 욥은 친구들에게서 이해도 받지 못하고, 위로도 받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를 변론하고자 힘겹게 말하고 있다. 어떻게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말씀드리고 자신이 유한한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좀 쉬도록 해 주셨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14장을 읽고 묵상하다 보니 욥의 마음이 내 마음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욥처럼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 가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온전하지 않은 자녀라도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 말씀드릴 것이 있다. 피하지 않아야 한다. 부끄럽다고 죄를 지은 마음에 두렵다고 해도 하나님을 피해서는 안 된다. 나의 나아갈 길과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그분과 만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해야 한다. 가식적인 모습을 털어내는 지금의 과정이 나의 영적 성장 과정이 아닐까?




Mentor works 멘토웍스. 김 완 종

인재경영전문가 / 역량평가사 / PHR

現 멘토웍스 편집장 겸 대표멘토

現 SNA-DDI 퍼실리테이터
前 중견기업 인사팀장

『디지털시대의 리더십』 월간인재경영 기고 (2020)

『NCS 자소서 면접 합격 솔루션』 공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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