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말씀에 매이다.
이번 계기로 인생의 전반부에 무엇을 남겨 왔는지 돌아 보는 시기를 갖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적나라한 질문과 맞서야 합니다. "ㅇㅇㅇ(회사)의 ㅇㅇㅇ(직무)를 맡고 있는 ㅇㅇㅇ(직위/이름) 입니다." 에서 이제 '이름' 만 남습니다.
질문, 그 적나라함.
'이름' 만 남은 나에게 스스로 묻습니다.
"이름 석자에 무엇이 남았어?"
"먹고 살았지. 그것이 어른이라는 존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인 줄 알고 살았지."
"그래 수고했어.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 불안한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기어코 살아 내느라 고생했어."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 어른같아? 그래도 25년을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고 살았잖아."
"..."
후회, 그리고 아쉬움.
아쉬움인지, 후회인지, 절망인지, 불안함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반백의 시간을 쌓아서 깔고 앉아 있어도 '젠장..' 이름 석자에 무엇을 남겨 왔는지, 어른의 모습으로 잘 성장하고, 성숙한 모습을 갖춰 왔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먹고 살았다는 것이 스스로 잘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괴롭기만 합니다. 부모님께는 잘 나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아내에게는 평생토록 외로움을, 아들에게는 못난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습니다.
변명, 가장 쉬운 도피처.
80대의 아버지, 50대의 아내, 20대의 아들. 이 모두에게 먹고 사느냐고 그랬다고, 나도 힘들었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나도 최선이었다고, 제발 이해 좀 해달라고.. 솔직히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후에 '어른 자격 중간 평가'에 과락은 면하도록 61점을 딱 주고 이번 평가는 끝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헛된 변명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두려움.
이후의 삶도 지금처럼 그렇게 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미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갈 것이 정말 두렵습니다. 어떤 세파에도 흔들림없는 큰 사람이기를 원했습니다. 어떤 유혹에도 단호함을 보일 수 있는 그런 어른이기를 바랬습니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평생 학생이기를 바랬고, 다양한 정신과 행태들을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한 인격이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모습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지, 방향은 맞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나의 아버지
제가 기도하옵나니
저를 굽어 살펴 주소서
원컨대
듣는 귀를 열어 주시고
보는 눈을 밝게 하시고
입은 더욱 닫게 하소서
이를 통해 제가 다른 이들을 판단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팔은 힘껏 들어 찬양케 하시며
손은 어려운 곳에 닿게 하시고
뱃 속은 비우며, 애써 채우지 않게 하소서
이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저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닿기를 원합니다.
머리는 주님에 대한 지식과 지혜로 채워 주시고
가슴은 성령의 불로 뜨겁게 하시며
다리는 주님의 반석 위에 굳게 서게 하소서
이를 통해 주님의 자녀로 살다가 소명을 다한 후에
이 세상 훌쩍 떠나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