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따뜻함'에 답하다

개인적 사유와 공존의 이유

by 질그릇

"동지들이 되고 싶은 모습은 무엇이오?" - 하트온 작가님


답을 하고 싶은데, 뭐라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오답이라도 내야 할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 가고 있는가? 속도는 늦어도 방향은 맞다고, 중간에 큰 어려움과 실패를 맛보아도, 때로는 핀잔과 비웃음을 받아도,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이루고 싶은 모습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걸어 왔는데, 이 순간 머릿속이 비워진다. 아니 복잡하다.


(공개되는 글에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을까를 순간 생각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나에게 솔직했는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대해 나는 스스로를 속이고 살아왔는 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것 같다. 좀 더 용기를.. 그렇게 살아 왔다. 하늘의 명을 안다는 나이가 거의 목전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속이고 싶다는 마음을 완전히 떨구지 못했다.


(자기 기만,,, 참 무섭다)


나는 잘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잘난 줄 알았다. 조금만 더 하면 세상이 다 알아줄거라 굳게 믿으며 살아왔다. 세상이 몰라주는 것이 야속했고, 오히려 세상을 비웃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나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결국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다가 스스로 실망한 사람의 깊은 탄식)


나는 어떤 모습이 되고자 하는가? 아직은, 아니 아직도 위 '따뜻한' 질문에 대한 '냉정한' 답변이 나 스스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내가 지향하는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그려내야 한다. 이런 마음의 언저리에서 하나 최근에 결심한 것이 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당신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소?"


하루에 하나씩 짧은 글을 쓰면서 "하루 - 너에게서 배운다"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오늘은 멀리 있는 '벗'에게서 배웠다. 나는 벗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 한다.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뜻이 통하고 마음이 전해지면 벗이다.


좀 더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까지, 아니 평생의 소명과 노력, 깨달음과 함께 구도자의 길을 간다.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구도자다.


하지만, 아직은 혼란이다. 이렇게 생을 다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는 길을 멈출 수는 없다. 이것은 나에게 이 삶을 허락하신 창조주의 뜻이고, 그분의 지극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