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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 1기] 나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는

쥬가 만난 의성



의성을 왜 가? 가서 뭐하는데? 

                                                                                                  나도 잘 몰라.

                                                                                     그냥 일하고 노는거   ?


주변사람에게 방학 동안 의성에 있을 거라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난 의성에 왜 갔을까? 무엇을 하고 싶어서 갔을까? 한가지 이유를 꼽기엔 힘들 것 같다. 그냥 고민이 너무 많아 머리가 '펑'하고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 대학교에 진학하며 20년간 살아왔던 대구를 벗어나 홀로 수원에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1년간 그렇게 생활하고나서, 이 생활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어졌다. 분명 내가 택한 대학 생활이었는데도 말이다.


  대학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전공수업을 열심히 듣고 시험을 치르는 무한 반복. 성인이 되어 할 수 있는 일과 기회는 많아졌지만 전공 공부만을 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 공부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분명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대학에 들어왔는데 그것들은 전부 잊고 취업 그리고 성공만을 좇았다. 금방 지나가 버린 1학년. 2학년이 되니 주변에 있는 선배들을 만나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남들이 다 준비하는 컴퓨터 활용시험, 토익스피킹 그리고 대학원 진학 후 연구소 취업. 무한 경쟁이 앞에 놓여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길을, 남들을 따라 걷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걸까?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니 더 나아가 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함박웃음을 지었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고 예쁜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떠는 일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놀이가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잘은 모르겠지만, 한적한 자연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에 그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더불어 그곳은 경쟁이 없고 다양한 삶이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그리고 적당히 느리게 가는 곳이길 바랐다. 그럼 그런 곳에서 내 일을 할 수는 있나? 이런 고민 속에서 ‘로컬임팩트캠퍼스’를 발견해 참여했다.


  어느날 저녁에는 다 같이 모여 수도권 대학생과 비수도권 대학생의 이야기를 비교한 영상을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몇몇 친구들은 언니나 형을 생각하며, 그리고 자기 모습과 비슷해 눈물을 보였다. 고향을 떠나야 하는 것은 고향을 떠나는 것과 다르다. 누군가는 고향에 대학이 없어 떠나야 하고 누군가는 사회가 주는 압박감에 떠밀려 떠난다. 인서울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온전히 내가 한 선택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다른데

동등하게 존중받는 삶


대학에서 취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선배들을 찾아다닐 때, 이런 질문을 주로 하곤 했다.
 그 기업에 취업하려면 주로 어떤 스펙을 쌓아? 우리 과에서 가장 좋은 아웃풋은 뭐야? 
  이런 대화를 하고 나면, 열정이 되려 사그라들었다. 내가 아는 삶은 성공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뿐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이름만 대면 아는 그런 대기업은 성공을 보증하는 수표였다. 그런데 의성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살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우위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내 눈엔 그들의 삶이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기억에 남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하려고 한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은 처음으로 현장답사를 하러 나가던 날, 너무 더워 근처에 있던 낚시 가게에 들어갔는데 그때 만난 사장님이다.
 
  낚시 가게 사장님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막 시작했을 때 받았던 ‘이웃들의 차가움’에 대한 상처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무턱대고 가게 문을 열었을 때 경계하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는 금세 편하게 대화하였고 처음으로 정이 담긴 커피를 건네받았다. 그 시원한 커피는 낯선 곳에서 처음 느끼는 따듯함이었고, 앞으로 여기서 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되었다. 나중에는 의성의 어느 곳이든 정수기 위에 맥심은 늘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눈이 빨리 떠지는 아침에는 우유배달을 하고, 일이 끝난 저녁에는 산책을 즐기는 모습은 근사했다. 딸의 이야기를 하는 무심해 보이는 말투 속에는 사랑이 가득 있었다.


  오래된 시장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한 카페의 사장님은 시장 상인들을 무척 아끼셨다. 상인분들은 가장 맛있는 시기의 재료를 알려주고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보는 건 어떠냐는 질문을 던져주시고는 하는데, 학교에서 교수님이 창작과제를 주시는 모습과 비슷해 재미있었다. 그러고 메뉴판을 보니 제철 과일을 파는 상인과 최고의 맛을 위해 시행착오를 겪는 사장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자주 가던 김밥집의 사장님 분들은 새롭게 시작한 의성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음식을 먹는 동안 이렇게 동네에 사람이 많았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손님이 찾아왔고 늘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했다. 초등학생들의 외상을 받기도 했다. 배달비를 받지 않고 숙소까지 배달해주신 적도 많았다. 의성을 떠나는 마지막 날에는 음식값을 받지 않으셨다.


  막걸리 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나이, 성별, 학벌 등 세상이 정한 기준을 벗어나 ‘우리는 그저 재미있는 일을 한다’라는 가치를 가지고 맛있는 술을 만든다. 모두가 막걸리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막걸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첫 창업이라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짧은 대화를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장님은 우리의 질문에 충분히 시간을 가진 후 대답해주신 것이다. 자신을 느린 사람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그 말에 느려도 괜찮겠다는 위안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이 친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는 의성의 한 특별한 고등학생 ‘오상헌’이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이 하교하던 중 카페에서 여는 이벤트를 홍보하던 우리를 처음 만났다. 건네받은 포스터를 살펴보더니 이벤트를 하는 이틀간 찾아와 궁금한 것들을 잔뜩 물어봤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가는데 전혀 망설임이 없는 그는 우리에게 꽤 깊은 인상을 줬다. 의성에서 버스를 타다 우연히 만나 대화했는데 ‘동네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요즘도 가끔 SNS로 연락하곤 한다.
 
 이런 삶을 보고 듣고 느끼기 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로컬에서 나도 뭐 하나쯤은 할 수 있겠다.’ 아니 사실, ‘어디서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라는 오만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명 인사의 강연을 듣고 난 후보다 더 커다란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다. 역시 몸으로 배운 건 잊히지 않는다고 피부로 느낀 그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생생하다. 한 달 반의 과정 동안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나에게 상상치 못한 큰 수확이었다.


비슷한데 다른 사람들 : 12명이 한 공간에서 지내는 법


별을 좋아하는 12명의 사람이 모였다. 우리는 열심히 프로젝트를 하다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별을 보러 나갔다. 돗자리 하나를 펴서 도란도란 누워있으면 다시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여름의 찌는듯한 더위에 지쳤을 때는 계곡에 가서 신나게 물놀이했다. 새벽에는 맥주를 마시며 고민을 이야기했다. 이런 모든 순간이 행복하고 소중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을 꼽으라면 여유로운 주말의 아침이다. 밤에는 잠들기 싫어했고 아침에는 일어나는 것을 가장 힘들어했던 나였지만 눈을 뜨면 친구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에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설레기 시작했다. 빨리 아침밥을 먹자며 일어나라고 하는, 옆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곤히 자는 친구들의 모습은 소소하지만, 그때의 장면과 내 감정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친구들과 한데 모여 산다니!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어 했다. 그런데 회고할 때 많은 사람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꽤 충격적이었다. 나랑 함께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게 좋다니. 그렇지만 그들은 나랑 함께 있는 게 싫은 거라기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방에 혼자 있어 보았다. 그랬더니 의성 밖의 생활을 완전히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건강히 잘 있다는 연락을 했다. 아마 의성에서 생활하기 시작하고 2주는 지난 후였을 것이다. 부모님이 걱정하셨을 거라고 생각하니 죄송했다. 그리고는 어느새 길어진 손톱과 발톱, 까맣게 타버린 피부, 이곳저곳에 퍼렇게 멍든 다리를 봤다. 나에게도 혼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증거가 펼쳐져 있었다. 증거를 지우며 나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겐 혼자 있는 시간이 즐겁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내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다른 이들도 어떤 이유로든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의성 그 후


  이 글의 초반에 나는 머리가 '펑'하고 터질 듯하여 의성에 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고민이 많이 정리되었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사는 분들과 함께하며 내가 갈 길이 하나뿐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요즘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허덕이지 않는다. 더불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묵묵히 갈 것이다. 그리고 계속 함께할 인생의 동반자가 생겼다. 힘들 때 꺼내 볼 추억과 곁에만 있어도 든든한 사람들이 내 삶의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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