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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 2기] 의성을 애정해

밍이 만난 의성

팀 '456(24,25,26)'에서 6을 맡고 있는 밍


“그래서 너 의성에서 뭐 하는데?”


“음… 그건 말하자면 좀 길어. 다녀와서 말해줄게” 


4학년을 앞둔 겨울, 나는 뜬금없이 의성에 가게 되었다.

사실 다녀와서 말해주겠다고 한 건 나도 내가 뭘 할지 몰랐기 때문에 대충 둘러댄 말이었다.

의성이라면 마늘 밖에 몰랐던 나는 그저 로컬이라는 생경한 단어에 이끌려 의성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과의 술래잡기에서 나는 항상 술래인 탓에, 붙잡을 틈도 없이 도망가는 시간을 따라 달리는 동안 6주가 빠르게 지나갔다. 매일을 숨 가쁘게 달리느라 그 당시에는 미처 온전히 느끼지 못한 것들이 있다. 뒤늦게 의성에 남긴 6주간의 발자국을 되짚으며 이렇게 글을 남겨본다.



길 위에서 만난 의성 주민들


   의성에서 현장 관찰을 다니며 만난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무작정 찾아가 문을 두드려도 따뜻하게 맞아 주셨던 도동 1리 &2리 노인정 할머니들. 커피 한 잔과 함께 기꺼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주신 협동 미용실 사장님과 손님. 서툰 인터뷰 진행에도 진심 어린 답변과 함께 점심시간이라며 짜장면을 시켜주신 농민 분들. 기만이(기차에서 만난 이방인들)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시간 내어 참여해 주신 청년들. 그리고 우리의 프로젝트에 공감과 응원을 보내주신 의성의 여러 사장님들까지. 인터뷰가 끝나면 우리 손에는 사장님이 챙겨주신 옥산 사과와 사과 즙, 식혜, 마늘 그리고 서비스로 주신 커피, 막걸리 등이 한 움큼 들려 있곤 했다.

   어쩌면 갑자기 나타나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이방인에게 경계를 보일 법도 한데, 의성 분들은 길 위에서 만난 낯선 우리를 조건 없이 들여 주셨다. 추운 겨울, 문을 두드리는 곳마다 따뜻하게 맞아 주셨기에 나도 의성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이것이 계기였을까? 당시에는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지만 내가 느꼈던 몽글 몽글한 마음은 단순히 고마움이라 치부하기에는 더 깊은 마음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의성에 대한 애정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겨울의 의성을 애정하고 있었다.



다양한 사는 얘기들


   현장 관찰을 나가 많은 분들을 만나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1~2시간이 훌쩍 지나곤 했다. 농업의 가치와 농부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에 대하여, 또는 귀촌 청년들의 다양한 삶의 가치관에 관하여 눈을 반짝이며 들려주시는 이야기들부터 사과나무 꽃이 언제 피는지, 복숭아나무를 어떻게 접붙이는지 신기한 농법에 대한 얘기, 우리 할머니가 노인정에 가서 무엇을 하시는지 알 수 있었던 할머님과의 인터뷰 등등. 도시의 재개발과취업난 이야기로 침식되어 있던 나에게 이런 로컬의 이야기들은 눈이 번쩍 뜨이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도시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로컬의 진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을까?


   인터뷰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러너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늦은 저녁 버스정류장 엉따(버스정류장의 온열의자를 이렇게 부르곤 했다)에 앉아 팀원들과 나눈 ‘공백’에 관한 이야기, 하루 끝 회고 시간의 ‘ 서로 고마운 점 3개 말하기’.  금강장 1층에 모여 가볍게 또 가끔은 딥한 주제로 도란도란 나누었던 솔직한 서로의 생각들. 1기 러너들이 준비해 준 ‘나를 채우는 대화’. 이렇게 수많은 대화의 시간들을 가졌기에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개성이 뚜렷한 10명이 잘 어우러져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었 던 것 같다.   

1기 참가자들과 함께 했던 '채우는 대화' 시간



나의 세계


   6주의 끝 무렵 운영진과의 인터뷰에서 로컬 임팩트 캠퍼스가 끝나고 달라진 점을 질문 받았는데, 한마디로 대답하자면 “내 세계가 한층 더 넓어졌다” 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 세계는 점점 좁아져 간다고 생각하기에, 다양한 경험을 하며 경계를 허물고 내 세계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려 노력하는 편이다. 이번 의성에서 새로운 세계 ‘로컬’을 경험하였고, 도시에서의 삶 뿐이었던 나의 선택지에는 ‘로컬에서의 삶’이라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이제서야 도시의 우물에 갇혀있던 개구리가 진짜 더 넓은 세상으로 도약해 나온 느낌이다. 

   로컬 임팩트 캠퍼스에서 사람들의 다채로운 생각들을 들으며 개개인의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타인의 또 다른 세계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알아갈 수록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었다. 타인을 바라보며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고민해 보게 되었고, 프로젝트기간 동안 기존과 다른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한계를 넘어서기도 하는 나를 경험하며 나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볼 수 있었다. 미처 잘 돌보지 못했던 나의 세계 들여다보고, 나를 잘 이해하고 나니 앞으로 어떤 모습이던 모든 나를 더 아껴줄 수 있을 것 같다. 

밍의 세계를 넓혀주었던 팀원들
밍의 세계를 넓혀 주었던 러너들


사과 꽃 필 무렵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떠났던 의성에서 돌아온 지금, 그동안 의성에서 무엇을 했는지 묻는 친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이나 많다. 어떤 얘기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두서없이 적었지만, 시간이 더 지나 문득문득 떠오를 기억들이 아직 한 켠에 숨어 있다. 며칠 전에는 3월의 달력을 넘기다 무심결에 '지금쯤 의성에는 사과나무를 심고있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길을 가다 아주 작은 꽃봉오리를 볼 때면 4월즈음 앙상했던 가지에 흐드러지게 필 새하얀 사과 꽃도 상상해보곤 한다. 이제 의성에서 보냈던 겨울은 과거가 되고 나는 대구로 돌아와 새로운 봄을 맞이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의성이 가득히 남아있나 보다. 아무래도 올 봄 시간이 된다면 농민 분이 자랑하던 사과 꽃을 보러 의성에 다녀야겠다.

밍의 시선 안에 따스히 담기던 의성에서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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