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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 1기] 꿈 같았던 두 달

톰이 만난 의성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기다린 2020년이었지만 그 모습은 내가 학창 시절 동안 품어왔던 로망과는 꽤 달랐다. 학교에 다니기보다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었고, 몇 번 대학 친구들 만나는 게 내 대학 생활의 전부였다. 조금만 지나면 끝나겠지,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남은 시간에 희망은 계속 품어왔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여주지 않았었다. 난 수업은 대충 듣고,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친구들의 술자리만 나가면서 나날을 보냈다. 친구들은 하나하나 군대로 떠나는데, 그 좁은 동네에 혼자 남겨지는 동안에도 난 그저 시국 탓으로 이런 피폐한 삶을 이어갔다. 어떻게 보면 체념이었을지도 모른다. 1년하고도 반이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그러다 한 대학 친구가 이 프로젝트를 소개해줬다. 로컬에서의 할 일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였다. 분명 시골에 살아보지 못한 도시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텍스트들이었지만, 21년 ‘봉화 토박이’였던 내게도 충분히 끌렸다. 그 끌렸던 부분이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관심의 시작은 공감이었다. 시골은 정말 일자리가 없고, 놀거리도 없다. 그런 점이 내겐 큰 불편이었고 내가 도시에서의 ‘삶’을 평생 꿈꿔왔던 것도 이 이유 때문이라 생각했다. ‘로컬임팩트캠퍼스’는 내게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기회를 주었다. 로컬의 사람으로서 이런 좋은 일에 일조해야 한다는 의문의 책임감도 느꼈고, 욕심 같은 것도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이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되었다.


문제정의 프로젝트는 ‘로컬임팩트캠퍼스’의 메인 프로젝트이다. 시골에서 두 달간 살아보면서, 현지인만이 느낄 수 있는 불편,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사실 프로젝트의 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그 두 달이란 시간은 오랜 시간 굳어진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문제해결이 아닌, 문제정의에 초점을 두었다. 제대로 된 문제정의,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문제라고 생각하는 문제, 그 속의 진짜 문제를 찾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였다. 인터넷에서도 나오지 않고, 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문제를 찾으려면 시골에서의 생활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우리는 경상북도 의성에서의 두 달 살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멘토리(Mentory)’를 주도로 ‘Mysc(엠와이소셜컴퍼니)’로부터 전체적인 문제정의 프로젝트에 대해 교육을 받았고, 제공된 툴로 프로젝트 과정을 이어 나갔다.


그 첫 번째 단계는 관찰하기였다. 일주일간 미리 정한 여러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의성이란 도시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우리 조는 의성의 노인, 관광지, 과수, 소프트웨어가 주제였고, 자유로운 방법으로 의성을 관찰했다. 정말 단출한 네이밍에 비해 가장 많이 노력했던 걸로 기억되는 단계이다. 도시에는 없고 시골에만 있는 것이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하나하나 관찰하고 기록했다. 또, 더 많은 것을 관찰하기 위해 하루에 2만 보는 거뜬히 걸었던 것 같다.


이때, 내겐 조금 스트레스가 있었다. 조원들보다 관찰한 내용이 매번 부족했던 것이다. 조에 민폐가 되지 않으려 계속 더 많은 것을 관찰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조원들보다 ‘신기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적었던 게 이유였다. 우리가 생활했던 의성군은 내 고향인 봉화와 같은 경상북도의 한 지역이라 의성의 환경이 내겐 너무 친숙했다. 심지어는, 의성이 봉화보다 인구수도 2만 명 더 많은 도시인 셈이었고, 그래서 난 로컬의 것들을 느끼기가 더 어려웠다. 그래도 그렇게 의성을 돌아다니고 마을 어르신분들과 얘기도 나눠보면서, 의성이란 지역에 녹아들 수 있었다.


이후는 Mysc의 세션에 따라 주제를 정하고, 문제정의를 계속 발전시키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도 쉽지 않았다. 진짜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의성 사람들에겐 문제가 아니었던 적도 있고, 문제를 관찰할 때도 해결 방법을 먼저 생각하고 문제를 찾아다니다 보니 주제를 정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이 세션이 진행되면서도 계속 주제를 수정했다.


그렇게 여러 주제를 거쳐 우리 조는 ‘여름철 심각한 버스 정류소의 더위 문제’에 주제로 정했다. 이 문제는 실제로 버스를 이용하다가 발견했다. 의성군은 서울시 면적의 약 두 배 크기로 아주 넓은 지역이다. 그중 동쪽은 의성읍이, 서쪽은 안계면이 중심지 역할을 한다. 우리는 안계면에서 주거했기 때문에, 의성읍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할 일이 많았다. 그러다, 안계면의 ‘안계 시장’ 버스 정류소가 유난히 더운 것을 확인했다. 물론 한 여름철에 더운 것은 당연하지만, 이 정류소가 다른 곳보다 유독 더웠고, 그 때문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버스 정류소 안이 아닌 바로 옆이나, 도로 건너편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허리, 다리가 안 좋은 노인들이 특히 맨 도로에 앉아 계시다 맨바닥에 앉아계셨던 게 위험해 보였다. 시골의 인구분포 특성상 노인이 대다수인 만큼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고객 또한 노인이 대다수이다. 우리는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을 위해 마련해둔 버스 정류소가 오히려 노인이 버스를 기다리기 힘들게 만드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시골의 버스 배차시간이 기본 한 시간 이상인 점도 함께 고려하면 더욱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문제가 지난해 로드뷰에서 그대로 드러났던 것을 보고 꼭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원인을 찾아보았다. 그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온열 의자였다. 온열 의자는 겨울철 버스를 기다리는 이용객에게 꼭 필요한 난방기이다. 그러나 문제가 됐던 것은 온열 의자가 여름철 열기를 그대로 받고 달궈져 일반 의자보다 훨씬 뜨거운 온도를 갖고 있던 것이다. 사람이 앉기는커녕 손이 델 수도 있을 수준으로 위험한 요소였다. 두 번째는 아크릴과 철제구조로 된 버스 정류소였다. 기본적인 뼈대는 철제구조로 이 역시 뜨겁게 달궈져 있었고, 면을 이루는 아크릴은 그 자체로 뜨겁진 않았으나, 태양 빛을 그대로 투과하고 있었다. 마지막은 삼면이 막히고 한 면만 개방된 버스 정류소의 구조였다. 위의 요소들로 인해 품은 온기가 공기 순환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 버스 정류소 내부에 그대로 갇혀 있는 듯했다.


이렇게 생각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해당 버스 정류소를 이용하는 승객 50명은 족히 인터뷰를 진행했던 것 같다. 면사무소 과장님에게도 객관적인 피드백을 요청하기도 했다. 처음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조금은 어색했지만, 이후엔 오히려 더 편해지고 담소도 많이 나누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인터뷰와 관련 없는 얘기를 나누는 게 조원 입장에선 조금 답답하게 느껴져서 지적받기도 했지만, 어르신분들과 하는 인터뷰기에 더욱 예의를 갖추고 싶었고, 어른들도 편한 분위기에서 더욱 답변을 잘 해주실 거라 생각해서 계속 내 방식대로 인터뷰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단계로 문제해결을 위한 프로토타입을 구상해 시험해보았다. 간단하게 해결책을 만들어 실제 승객에게 시험해보는 것이다. 미리 구상했던 프로토타입의 효용성을 측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해결에는 큰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서, 간략하게 진행됐던 것 같다. 따라서 정확한 측정이 어려웠던 게 아쉽다.


그렇게 조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카카오 100 up을 작성했다. 문제정의 텍스트 툴을 작성하는 건데 문제의 대상부터, 해결책까지 우리가 의성에서 했던 모든 과정을 정리하는 느낌의 글이었다. 이것이 의성에서의 거의 최종 단계였기에 다들 잠을 줄여가며 밤새 작성했다. 그러는 도중에도 의문이 생기면 바로 인터뷰, 관찰을 나갔고,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도 그걸 피해 갈 수 없었다. 나의 주제가 가끔 해결한 문제라기보단, 편의를 줄 방법이라 회의가 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닿과 조원들 그리고 대표님과 우리의 과정을 되짚어보면서 다시 진로를 잡을 수 있었다. 제삼자의 객관적인 의견도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걸 깨달았던 시점이었다. 주제를 바꾸고, 그렇기에 더 열심히 움직였던 조도 있었다. 다들 바쁘고 피곤한 나날을 보냈다.


최종공유회로 우리의 활동은 끝이 났다. 군수님과 많은 군청 직원들 앞에서 우리의 활동을 공적으로 발표하는 자리였다. 예상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고민했던 부분들을 이해해주지 않았고, 안 된다고만 했다. 애초에 칭찬과 인정을 받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막상 그런 따가운 태도를 맞서니 조금은 속상했던 것 같다. 그래도 12명의 노력을 한 자리에서 직관적으로 보게 됐던 것은 굉장한 감격이었다. 그렇게 두 달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로컬임팩트캠퍼스는 내가 가졌던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처음 목표했던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지역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성공했다. 정말 다양한 시각으로 시골과 내 동네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또 가졌었던 건 ‘지방이 바뀔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전에 난 내 동네에 상가가 더 들어서고, 새로운 시설이 생기는 것에 대해 어떻게 보면 아니꼽게 바라봤다. 좁은 동네 몇 다리 건너면 알 수 있는 사람이 장사가 안돼서 피해 보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갖던 이런 부정적인 관념이 맞는 것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이 프로젝트에 지원했던 것도 있다. 이후의 난 이 마음가짐을 바꾸게 되었다. 내가 갖고 있던 태도를 최종공유회 때 핀잔을 주던 군 관계자분들의 시선에서 느꼈던 게 그 계기였다. 누군가는 큰 노력을 하는데 그걸 바라보는 나는 그걸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이 그냥 안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이 점을 로컬임팩트캠퍼스에서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또, 좋았던 것은 사람들이었다. 함께 참가한 12명의 러너, 또 멘토리의 대표님, 워니률까지 모두 내가 오래오래 기억할 소중한 인연이었다. 첫 만남은 꽤 어색했지만, 두 달을 같이 생활하다 보니, 정말 가까운 사이로 지낼 수 있었고, 그렇게 많은 정이 오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단기간에 그렇게 빨리 또 깊이 친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자존감이 낮은 내가 부족하다 느꼈을 때, 자책하기보다 사람들의 좋은 점들을 배우려고 했던 것도 다들 좋고 밝은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관찰하기의 첫 주 열정이 식으려고 할 때면, 다른 사람이 또 그것을 이끌어주었고, 두 달 내내 절대 식지 않았다. 몇 명은 봉사하거나 누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민들과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좋았다. 우리 문제의 타겟은 버스 노인 승객이라, 많은 노인을 인터뷰하기로 했고, 그렇기에 깊은 인연은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난 그 짧은 인연이 좋았다. 버스를 함께 기다리며 나눈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초면인 사람과 그렇게 인간적인 대화를 나눴던 경험이 신기했다. 글씨를 못 읽는 84세 장 씨 할머니가 버스 시간을 몰라 1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도 값지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메인 프로젝트 외에도 재밌는 프로젝트가 많았다. 나만의 여행코스로 가보는 ‘친애하는 나의 의성’, 의성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딴짓 프로젝트’. 모두 정말 좋았다. LIC의 더 많은 사람들과 가까워지면서 비슷한 사람들도 찾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나의 장점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의성에서의 두 달이 정말 꿈 같았다. 이런 대단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거, 그러면서도 리틀 포레스트, 삼시세끼에서만 보던 시골에서의 삶을 내가 일상처럼 할 수 있었던 거 둘 다 너무 한순간이라 느껴지고 앞으로의 인생에선 절대 벌어질 수 없을 일 같아서 꿈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생활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난 나는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두 달을 엄청 소중히 여기고, 또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훗날 내 인생을 돌아볼 때도 난 그러고 있을 거 같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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