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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 1기] 호기심의 여름

리피가 만난 의성


내가 의성에서 한 달 반 동안 살게 된 것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막 고3을 끝내고, 대학에 온 나에게 “로컬”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봤을 법한 곳이었고 그곳이 정말로 “리틀 포레스트”처럼 마음이 치유되는 곳인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처럼 알고 보면 텃세로 얼룩져 있는 곳인지 궁금했다. 그렇게 나는 한 달 반 동안 의성에 직접 살며 문제 해결 프로젝트와 딴짓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로컬 임팩트 캠퍼스”에 지원했고, 11명의 다른 참가자, 4명의 운영진분과 의성의 “낭만농부”에서 지내게 되었다.


로컬은 호기심만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활동을 진행하는 의성읍의 “창업 허브센터”와 우리 숙소인 안계면의 “낭만농부”까지 버스로 무려 편도 한 시간이 걸렸다. 비가 오는 날에는 숙소의 이곳저곳에서 지네들이 나오기도 했다. 잠을 잘 때면 엄청난 소리로 울어대던 방충망에 붙은 거대 매미 덕분에 룸메이트인 “용”이 쫓으러 뛰어나간 적도 있다. 유독 더웠던 이번 여름, 폭염 경보가 내려졌는데 3~4시간을 걸어야 하는 날이 종종 있었고, 이 덕분에 어지러움과 두통을 겪으며 혼자서 읍내의 공생병원에 영양주사를 맞으러 가기도 했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팀으로 활동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문제 해결 프로젝트의 “디자인 씽킹”과정도 처음 해보아서 매 순간이 새롭고 낯설며 어려웠다.


우리의 메인 프로젝트인 문제 해결 프로젝트는 의성의 주민분들이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찾고 이에 대한 솔루션을 내는 것이었다. 나, 로빈, 뚜이로 이루어진 우리 “안계세유”팀은 처음에는 의성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아서, 그다음에는 “약초”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정했지만 정작 불편함이 아닌 것 같아서 고초를 겪었고 결국 다시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 우리의 새로운 주제는 “빈집”이었다. 빈집으로 정하고 나서도 문제였다. 처음에는 추억이 깃든 빈집을 소유하고 싶지만, 여건상 본인이 관리할 수 없는 빈집 주인이 핵심 문제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디자인씽킹의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다시 고민한 결과, 오히려 이런 빈집 주인의 관리되지 않은 빈집으로 인해 이웃 주민이 피해를 보고 있어 이웃 주민이 핵심 문제 대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다시, 그다음에도 도대체 이웃 주민분들이 무엇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분들께서 빈집이 안 좋은 이유로 얘기해 주셨던 풀, 미관, 고양이에 대해서 한 번 더 여쭤보면 그것들은 사실 시골이면 어느 곳에 있다는 말씀을 되풀이해 주셨다.


최종 공유회는 다가오는데 우리 프로젝트의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다 함께 모여 다시 생각해 보았다. 빈집의 ‘무엇’이 피해를 줄까. 우리가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줄기차게 보았던 빈집의 공통점은 바로 풀과 슬레이트였고, 이 슬레이트가 발암물질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부동산 아저씨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렇게 우리는 빠르게 관리되지 않은 빈집의 슬레이트가 그곳 주변에 사는 이웃 주민들에게 건강상 피해를 준다는 내용의 데스크 리서치를 했고, 이를 기반으로 빈집의 이웃 주민들에게 슬레이트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었다. 직접 그분들을 뵙고, 슬레이트의 위험성을 설명해 드리며 이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진행했다.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최종 공유회를 마무리했다.


한 달 반 동안 어렵기도 했지만, 많이 배우기도 했다. 이전까지 팀 활동에서의 나는 내 의견을 삼킬 때가 많았다면, 이제는 내 의견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는 마음가짐도 배웠다. 언제든지 본인 집에 와서 물이라도 마시고 가라며 집 주소를 여덟 번이나 가르쳐 주신 경로당의 할머님, 우리가 빈집을 보러 땀을 흘리며 다니니 힘내라며 음료수와 먹을 것들을 챙겨주시던 마을 주민분들, 우리 팀과 함께 주제에 대해 고민해 주신 운영진분들, 한 달 반 동안 함께하며 동고동락한 다른 참가자분들 다 모두 감사드린다. 이번 여름은 여러모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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