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가 만난 의성
자연을 벗 삼아 느리게 살고 싶어 강릉으로 이주하게 되었다는 20대 청년들의 이야기는 거주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자극되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으며 나다움을 가장 잘 실현해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도시에서 나고 자라며 정말 막연하고도 당연하게 '도시에서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리겠지' 라는 생각. 그리고 자연, 고즈넉함, 공동체, 여유로움 등 로컬이 가진 이미지를 동경하던 감정이 공존하던 내가 거주지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로컬에서의 경험이 필요했다. 또한 동료. 당시 느꼈던 나의 가장 큰 한계는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항상 머릿속에서 그쳤던 나는 몽상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상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가장 큰 원동력인 동료가 필요했다. LIC 홍보 글에 있던 #로컬에서의 삶 #삶의 방향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이 세 가지의 키워드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의성에서 머물렀던 6주 동안 “낭만적이다”라는 말을 참 많이 했었다. 매일 복작복작 12명의 식사를 준비하던 우리, 달이 예쁘다는 한마디에 다 같이 옥상으로 달려가던 여러 밤들, 졸린 눈을 비비며 나누었던 깊은 대화들, 버스를 타며 보았던 끝없는 논밭, 생태공원의 쏟아질 듯한 별 그리고 대화 사이 침묵의 여백을 메꾸던 자연의 소리까지. 누군가에겐 일상인 의성의 풍경이 나에게는 참 낯설었고, 특별했으며 낭만적이었다. 의성에서 채운 낭만은 풍경도 큰 부분을 차지했으나 이때의 기억이 이토록 아름답게 남은 건 함께했던 사람들 덕분이었다. 작은 것에도 마음을 다해 행복해하고 그 감정을 함께 공유하고 공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함께 행복하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행복인지 알게 되었다.
#라이프쉐어
의성에 내려온 지 3일 차,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나누었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내 속마음을 말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제 막 이름을 외운 이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었던 이야기들이 마구 나오기 시작했다. 사랑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삶과 가치에 대해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들만의 삶의 이야기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날이 시작이었을까. 우리는 온종일 현재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 무수한 새벽을 각자의 삶을 나누는 시간으로 사용했다.
#서로의 장점
가장 따뜻했던 대화 하나를 적어보려고 한다. LIC를 통한 변화 중 하나는 나라는 사람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친구들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대화였다. 그날은 딴짓 프로젝트 준비 때문에 모두가 바빴던 하루였다. 피곤해서 그냥 쉬고 싶었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바쁜 날일수록 더 놀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고 항상 그랬던 것 같다. 그날도 어김없이 딥톡요정 용이의 주도로 공용공간에서 대화를 하다가 서로의 장점을 한 명씩 말해주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워낙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날처럼 서로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을 서로에게 이야기해주는 시간이 가지곤 했었다. 내가 경험한 그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너무나도 분명한 사람들이었다. 12명의 매력이 전부 다 달랐지만, 그 개인들의 개성을, 각자가 가진 서로 다른 형태의 따뜻함을 전부 아꼈기에 그들의 장점을 말하는 건 참 쉬웠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의 장점을 듣는 일은 꽤 어려웠었던 것 같다. 나를 너무도 사랑스럽게 왜곡해주는 사람들 덕에 쑥스럽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지만 친구들은 내가 아예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해주기도 하고,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까지도 장점이라고 생각해주었다. 어떤 일에 대한 칭찬보다는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의 예쁜 모습을 이야기해주니 내가 나를 더 아끼게 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를 해결해나가는 체인지메이커를 동경해왔다. 그런 나에게 직접 지역에 살며 방학 내내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정의했던 것은 나를 참 많이도 성장하게 한 경험이었다. 멘토리가 정해준 팀원 훈 그리고 용. 6주 동안 우리는 흔히 전동차라고 불리는 의료용 스쿠터에 관한 문제정의를 해나갔다.
처음 의료용 스쿠터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편하게 의성을 돌아다니며 관찰하는 첫 주 현장 관찰 기간 중 만난 자두를 파시는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시장을 구경하다가 할머니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타고 오신 전동차가 우리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의 전동차에 대해 여쭤보니 꽤 먼 거리에 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도로를 타고 자두를 팔러 오셨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게다가 할머니께서는 도로로 달릴 때 옆에 차가 지나가는 게 너무도 무섭다며 중간중간 멈추면서 오신다고 말씀해주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농촌의 보편적인 이동 수단인 전동차가 어르신들을 위험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후에 어르신들에게 마을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찾아간 마을회관에서 만난 할아버지께서도 전동차를 타고 코너를 돌다가 다리에서 떨어지셔서 오랜 기간 병원 신세를 지셨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현장 관찰 기간 동안 이 외에도 농작물 유통과정, 기존 청년과 유입 청년 등의 주제에도 관심이 있었으나 우리는 전동차에 더 집중해서 문제정의를 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전동차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안계에 있는 의료기 가게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장님께서는 기계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보조금에 관한 이야기, 사고 발생의 주요 원인, 전동차가 농촌의 보편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 이유까지 정말 많은 정보를 알려주셨다. 이 인터뷰와 주민인터뷰, 설문조사, 현장 관찰을 바탕으로 우리는 전동차가 어떠한 필수적인 교육 없이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의료기 가게에서 간단한 작동 안내는 하고 있지만 매뉴얼이 없어 가게마다 상이한 안내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안전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보고, 들은 전동차 이용 실태를 살펴보면 중앙선 침범이나 좌우 살피기 등 정말 기초적인 운전 규칙조차 숙지가 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농촌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의료용 스쿠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안전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노인복지관에 방문했다. 전동차를 타시는 어르신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 후에 안전교육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어르신 교육에 관해서도 조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르신들 인터뷰 및 설문조사를 하는 중에 방문했던 곳이어서 여태까지 했던 문제정의를 말씀해드리고 싶다고 말하니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네 분의 복지사님께 우리가 했던 문제정의를 말씀드리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전동차 안전교육 부재 문제에 관련해서 공감해주셨고, 칭찬과 함께 더 좋은 교육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조언들도 많이 해주셨다. 또한 어르신들을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고 또 안전교육 장소까지 제공해주시기로 하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문제정의 프로젝트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주셨던 의료기 사장님! 전동차 관련 정보를 물어보려고도 많이 가고 그냥 지나가는 길에도 들리고 하면서 나중에는 정말 삼촌 같은 느낌이었다. 사장님께도 우리의 문제정의를 말씀드리니 출장 가는 길에 직접 작동법 안내 그리고 안전교육을 해보는 거 어떻겠냐고 말씀해주셔서 직접 출장 판매까지 함께 나가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출장 판매 이전까지는 안전교육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되게 막막하게 느껴졌었는데 직접 작동법 안내와 탑승자가 어느 부분에서 어려워하는지, 어떤 부분 연습이 필요할지를 보고 나니 훨씬 수월해졌다.
이렇게 현장에서 얻은 배움과 인터넷 리서치를 종합하여 우리는 도로 안전 수칙, 논밭길 안전 수칙, 기초적인 도로 이용지식 세 갈래로 나누어 안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의료기 판매점에 배부했다. 또한 어르신들이 쉽게 교육받으실 수 있도록 어르신들의 일상을 담은 스토리 라인과 실제 안계길 사진을 이용하여 교육을 설계하고 스티커 붙이기로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에게 문제정의 프로젝트는 “한 번 해보자!”라는 자세를 만들어주었고 이 자세는 수많은 기회를 불러왔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할까 말까 굉장히 고민하는 성향이 있었고, 결국에는 포기를 선택하는 안 좋은 버릇이 있었다. 그 이유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은 걱정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내가 움직여야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 기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생각보다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정말 많은 분이 협조적으로 도와주셨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니 나도 모르게 일단 시도해보는 성향이 생겼다. 팀원들이 내가 적극적으로 하자고 말해줘서 움직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말 많이 변했구나'를 느꼈고 내 인생을 훨씬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변화라고 생각해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기뻤었다. 현장 관찰 때 만났던 의성 청년 테마파크 대표님이 기회는 잡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라고 말씀해주셨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되게 막연하게 들렸지만 LIC 이후로 이 태도 덕분에 수많은 기회를 만드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제서야 그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눈뜰 때부터 감기 전까지 정말 온종일 붙어있던 우리 수렴 (舊 발산). 그 더운 날 땀 뻘뻘 흘리면서 자전거 타던 나날들, 일이 막혀 셋이 손잡고 펑펑 울던 순간, 서로의 관점이 항상 달라 붙여진 발산이라는 팀명답게 의견 차이로 온종일 논쟁하다가 지치기도 했었고, 전동차만 보면 인터뷰하겠다고 달려가고, 밤새워 일하다가 훈 오빠랑 일출 보던 것도 생각나고, 셋이 시장 가서 장보고 밥해 먹던 거, 뭐 먹을지로 티격태격했던 거 (지금 생각해도 이틀 연속 나물 집은 좀 서운하게 생각해), 집 가는 논길 자전거 타면서 행복하다고 소리치던 우리까지 너무도 많은 시간을 함께해서인지 떠오르는 추억들이 참 많다. 워낙 많은 시간, 경험을 함께해서인지 함께하며 엄청 다양한 감정들을 겪었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애정이라는 단어로 합쳐져 버렸네. 모든 부분에서 너무도 다른 발산이지만 서로를 아끼는 마음만은 수렴일 거라고 생각해. 많이 아끼고 애정합니다.
LIC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거주지 선택 그리고 동료 두 가지였다. 로컬을 나의 거주지로 삼는 것은 아직 잘 모르겠다. 6주간의 시간은 어느 곳에 살고 싶다는 결심까지 이르기에는 생각보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다만 확실한 건 너무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다. 무언가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우리 한 번 해보자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다. 혼자라면 힘들었을 시도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더 많은 일들을, 더 큰 일들을 벌이고 있는 지금이 너무 소중하다.
LIC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뭘 써야 할지도 엄청나게 고민했고 하지 못해서 아쉬운 이야기도 너무 많다. LIC의 경험이 나에게는 참 특별했고, LIC 이후의 변화가 참 소중하다. 이런 소중한 기획을 해주신 멘토리에게 정말 감사하고 또 더 많은 대학생들이 이런 배움을 얻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