쏭이 만난 의성
<딴짓프로젝트 – 친애하는 나의 의성>
태어났을 때부터 대학에 오기 전까지 ‘전라북도 순창군’에서만 줄곧 살았던 내가 의성에 내려간 이유는 리틀 포레스트 영화에 나온 로컬라이프에 대한 로망은 아니었다. 지역에 대한 문제를 그 지역에 머무르면서 주민들의 생생한 소리를 듣고, 조금이나마 해결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막상 의성에 내려가서 문제해결 프로젝트에 열중하다 보니 에너지가 떨어지는 순간이 왔다. 그 때 날 환기해준 건 바로 ‘딴짓프로젝트’였다. 그 중에서도 프로젝트에서 한 발짝 벗어나, 의성 자체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게 만들어준 ‘친애하는 나의 의성’이 기억에 남는다.
4명의 러너들이 한 팀이 되어, 하루동안 가고 싶은 의성의 명소들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는데, 우리 팀은 모두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비슷했던 것 같다. 다들 사람이 많이 없고, 자연 그리고 풍경이 예쁜 곳을 선호해서 고운사라는 절을 가기로 정했다.
<여행모드로 책크인!>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의성군 안계면에 위치한 도서관을 들렸다. 보통 책방의 블라인드 북과 달리, 안계도서관은 종이포장지에 약간의 힌트만 적혀진 태그가 붙여진 책을 '대출'할 수 있었다.
우린 각자 옆 사람에게 책을 골라주기로 했다. 책에 대해선 서너 줄의 힌트만 주어지고, 골라주는 대상의 취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다들 은근히 고민도 했던 것 같다. 그냥 주기엔 약간 아쉬워서 각자 종이 포장지 위에 문구도 썼다.
사실 이런 선물을 별로 선호하지 않거나, 조금 쑥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같이 여행한 러너들 모두 즐겁게 책을 고르고 문구와 함께 선물해줘서 기분 좋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자연 속 고운사>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커다란 입구가 보이고, 그 뒤로 초록 초록한 숲길이 펼쳐진다. 그 안에서는 음악을 틀지 않아도 매미소리가 적막을 채우고,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숲길을 더 올라가다 보면 고운사의 자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웅장했다.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와 전설도 절을 구경하는 재미를 더했다.
한옥의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모습이 적절히 섞인 고운사 안에 있던 카페 ‘우화루’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자칫하면 이질적으로 보여서 절의 분위기를 해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여긴 들어가자마자 이 고운사라는 공간과 정말 잘 어울러진다고 느꼈다.
<예상치 못한 만남들>
이번 여행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은 예상치 못한 만남들이었다. 도서관 사서님, 문화해설사님, 국민대 디자이너 교수님, 버스기사님 모두 예전의 나였다면 만날 수 있었을까 싶다. 메인 프로젝트 하면서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에 이런 만남의 행운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서님 덕분에 우리가 머무르고 있었던 안계면의 로컬라이프, 도서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 문화프로그램에 대해 더 많이 들을 수 있었고, 고운사에서 마주친 문화해설사님 덕분에 고운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고운사를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었다.
카페 우화루에서 만난 디자이너님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 카페의 로고를 직접 디자인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밖에도 인테리어 하나하나 왜 이런 소재를 선택했는지, 소품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도 알 수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프로젝트 중에 만났던 친절한 기사님의 버스를 우연히 탔다. 집에 남는 자두가 많다고 하시며 세 봉지 가득 자두를 챙겨주셔서 숙소에서 다 같이 배부르게 먹었다.
이 모든 인연이 없었으면 이 여행이 이렇게 만족스럽진 않았을거다.
예전엔 여행을 해도 일행이외엔 새로운 사람과 잘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장소에 대한 기대만이 여행전에 가득했다. 하지만 이젠 ‘이번 여행에서 어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도 여행 전 설레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