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싯돌프로젝트 1기
의성에서 프로젝트를 일부 진행하고 넘어온 후무뭇의 지니는 다른 팀과 프로젝트 진행방식이 확연히 달랐다. 고객의 문제를 찾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개발해 나가는 다름 팀과 달리 지니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미 개발된 제품을 '누구에게 팔아야 하는가', 즉 시장을 찾는 것이었다.
지니는 병아리콩으로 만드는 인도식 콩 스프레드 시트인 후무스가 단백질이 높고 다양한 요리에 활용도가 높다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점차 건강한 식단을 추구해 나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활발하게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다만 쌀국수가 처음 들어왔을 때 고수 향 때문에 못 먹던 한국인들이 많았던 것처럼, 인도식 후무스 그 자체에는 특유의 향신료 향이 있어서 식품에 대한 호불호가 꽤나 크게 갈리는 현황이었다.
지니는 후무스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국내산 로컬푸드로 바꿈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대두콩과 올리브유, 그리고 각종 농산물로 만들어 기존 후무스에서 나는 특유의 시큼한 향신료 향이 나지 않고 고소하고 단백한 맛이 나게 했다. 후무스에 대한 맛의 장벽이 허물어지면 다양한 활용도와 풍부한 단백질, 그리고 보존제나 첨가제 없이 오직 농산물로만 만들어진다는 특성이 건강을 신경쓰며 식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후무스를 즐긴다! 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있더라도 향신료 향을 선호하기 때문에 즐기는 사람들이기에 지니의 후무스는 이것을 좋아할 만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니는 기존 시장 중에 자신의 후무스에 관심이 있을 만한 사람을 추려보았다. 여러 시식회, 팝업 스토어 행사에서 고객을 만나보며 추린 시장은 다음과 같다.
1. 다이어트를 하는 채식인 (채식인들은 보통 콩으로 단백질 섭취량을 맞춘다)
2. 건강한 식자재를 활용한 다용도 콩 스프레드 시트에 관심이 있는 3040대 직장인 여성
3.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간식을 만들고자 하는 주부
다이어터, 자연주의 식문화 추구인, 어린 아이를 먹여야 하는 주부, 모두 자신 또는 특정 대상의 건강을 염려해 자연스러운 건강 식단을 구성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들이 이용하던 기존 대안은 직접 채소 및 부자재들을 사서 요리를 해먹는 것이었는데 매번 장보고 요리하기 귀찮고 번거롭기 때문에 지니의 후무스는 그들의 식단 구성에 대한 고충을 덜어주는 하나의 완비제품이 되고자 하였다.
최근 시장에 나오는 단백질 및 건강 제품들은 위와 같은 사람들을 노리지 않는다. 그들은 하루에 단백질을 필수적으로 일정량 이상 섭취하고자 하는 중고강도 운동인들을 주로 타겟하는데, 단백질 함량 정도가 시장의 수요를 빠르게 충족하다 못해 과도하게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높은 단백질 함유량을 높이기 위해 극단적으로 구성된 영양 비율 및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편의점에 가면 고함량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제품들이 많은데 이 시장에서 살아나기 위해 기업들은 얼마나 더 많은 단백질을 얼마나 더 맛있게 제공할 수 있을지, 즉 기존 제품을 어떻게 개선해서 기능을 더 올릴지를 고민하고 있다.
클레이튼의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 따르면 기존 제품을 이용하는 고객이 요구하는 것을 추가하고 개선하는 것은 '존속적 혁신'이라고 부른다. 존속적 혁신은 주요 시장에서 활동하는 주류 고객들이 기대하는 수준에 맞추어 기존 제품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현재 더더 고단백, 더더 저당인 상태를 만들어 나가는 식품 기업들은 헬스 등을 통해 단백질을 극단적으로 관리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하며 존속적 혁신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이미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매출과 영업이익과 관련된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많이 사용된다.
반면 새롭게 시장을 들어가야 하는 스타트업과 같은 경우에는 파괴적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는 파괴적 기술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제품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혁신이다. 파괴적 기술은 과거에 통용됐던 것과 아주 다른 가치명제를 시장에 선보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파괴적 기술은 주류시장에서 기존 제품들보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몇몇 주변 고객들이나 신규고객들이 가치를 두는 다른 특징들을 갖고 진입하게 된다. 기존 기업들이 노리지 않는 주변부 시장 및 새로운 시장을 점유하다가 차츰 주류시장 고객들의 니즈까지 만족시키는 상태가 오면 시장의 흐름을 새롭게 주도하는 선도 기업이 되는 것이다.
지니의 후무스는 파괴적 기술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단백질 식품의 주류시장은 쉐이크, 바 등의 보충제 형식으로 이뤄져있다. 고단백이 매일 필요한 사람들, 단백질을 일정 수준이상으로 섭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헬스 및 운동으로 몸매 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하루에 채워야 하는 단백질 총량 그램 수(보통 남성은 하루에 56-91g, 여성은 46-75g)를 외우고 다닐 정도로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대부분의 단백질 식품 기업들은 매일 같이 안정적으로 소비해주는 이러한 고객을 주류 고객으로 여기고 이들을 위한 제품 개선 혁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니의 후무스는 이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일단 지니의 후무스는 첨가제 없이 농산물로만 만들어져 보존 및 유통기한이 짧다. 신선식품이기 때문에 미리 만들어 둘 수가 없어서 당일 또는 전날에 만들어야 하는데 이러한 점들이 매일 바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게끔 포장 상태로 제공하는 식품들에 비해 접근성 및 보관방법이 열등하게 만든다. 또한 매일 같이 먹어야 하는 만큼 제공하는 기능에 맞는 가격이 설정되어야 하는데, 지니의 후무스는 단백질을 기능만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로지 가장 효율적인 '단백질 섭취'만을 추구하는 중고강도 운동인들 시장으로 가기에는 가격경쟁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지니의 후무스는 처음부터 주류 시장을 타겟하지 않았다. 후무스의 성능에 있어 단백질이 높은 편인 것은 맞지만 기존 단백질 제품을 찾는 주류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두드리고 발굴해본 결과 단백질 식품을 섭취하는 비주류 고객들의 시장도 꽤나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니의 후무스는 국산콩으로 만든 건강한 단백질 음식을 찾고 있는 4050 주부, 다양한 요리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식물성 단백질 식품을 찾고 있는 채식 지향인들을 만족시킨다. 이들은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등의 영양소를 균형잡히게 섭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큰 사람들이다.
시식회, 택배테스트, 팝업스토어에서 후무스를 구매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건강한 음식을 챙겨주어야 하는 사람(예를 들면 주부), 혹은 집에서라도 건강한 음식을 챙겨먹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예를 들면 외식을 자주 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후무스를 맛보고, 설명을 듣고, 구매해 가서 여러 음식에 곁들여 먹는 것을 목격했다.
이 사람들은 단백질 함량에 집착한다기보다 단백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원료인 '콩'으로 만들었다는 것과 이것을 다양한 식사에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인위적으로 특정 영양소를 높인 음식만을 섭취하기 보다 다른 음식들과 후무스를 섞어서 자연스럽게 균형잡힌 영양소를 한 번에 섭취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모수가 적어서 정확히 어떤 사람들이 후무스를 구매하고, 가장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어디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균형잡힌 식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기대치'를 가진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지니는 자연주의의 건강한 식단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후무스가 여러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후무스로 만든 리조또, 플레이트, 스콘, 파스타 등을 만들어 보여주면서 다용도로 쓰일 수 있는 천연 단백질 음식임을 소개하고자 하고 있다. 기존 단백질 시장에 정면으로 부딪히기 보다 그 시장의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고객들을 찾아 조금씩 시장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지니의 후무스가 새로운 시장의 변혁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