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자의적 퇴직공무원> 8.

by 이막내작가

전국 순환보직(한 곳에서 일정 기간 근무를 하면, 다른 근무지로 전출을 가거나 새로운 보직을 배정받는 제도)인 국가공무원은 인사발령이 나면 전국 어디든 갈 수 있다. 아니, 가라면 가야 했다. 많은 경우 연고지나 희망 근무지역으로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지만, 때에 따라서는 어쩔 수 없이 먼 곳까지 가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내가 가 본 가장 먼 근무지는 내 고향을 기준으로 2개의 도를 지났다. 고속도로를 타고 자동차로 250km를 달려가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주말이면 텅 빈 관사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느니, 몸이 피곤하더라도 기꺼이 250km를 오고 갔다. 잠깐이라도 엄마와 어린 조카와 시간을 보내고, 친구를 만나고, 내 방에서 마음 편히 두 발을 뻗고 싶었다. 3시간이면 도착한다는 내비게이션의 출발 전 예상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도착시간은 점점 늘어갔다. 주요 도시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합류하는 차들로 정체가 되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교통사고나 도로공사로 인해 거북이 행렬이 이어지기 일쑤였다. 결론적으로 집까지 가는 데에 평균 약 4시간~4시간 30분이 걸렸다. 좀이 쑤시듯 엉덩이가 들썩이는 4시간 동안 긴장감으로 짓눌린 어깨는, 목적지의 톨게이트가 보이고서야 힘을 풀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며 그날도 나는 톨게이트에 들어섰다. 통행료를 징수하는 직원에게 고속도로 통행증과 신용카드를 건넸다. 잠시 후 나는 영수증과 신용카드를 돌려받으며, 오래도록 잊지 못할 말 한마디를 들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요금소 안에 있던 중년의 여자분이 내게 건넨 말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란 말이 그토록 힘 있는 말이던가? 순간, 나는 그 식상한 말에서 전해지는 어떤 기운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하루 전, 주말을 앞두고 1박 2일 워크숍이 있었다. 워크숍 이틀째 되는 날은 하필 내 생일이었고, 계획안부터 결과보고까지 워크숍을 담당했던 나는 정신없이 바빴다. 미역국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고, 축하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생일이 지나갔다. 담당자이니까 고생은 당연했지만, 그래도 수고했다 말 한마디 건네주었으면 좋았을 우리 과장님은 직원 격려를 깜빡하셨다. 나는 이미 번 아웃(burn out) 상태였다. 워크숍을 마치고 관사에 돌아왔을 때, 밀려오는 허탈함은 어디에도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유독 마음이 쓸쓸했다. 위로받지 못한 마음을 데리고 4시간 넘게 달려 톨게이트에 들어서는 순간, 뜻밖의 이에게 위로를 받았다.

덤덤한 말투로 보아, 으레 하는 인사였는지도 모른다. 억지스럽게 친절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통행료를 계산하면서 알게 된 250km란 거리를 보고 건넨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한마디에 뭉친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만약 그분이 내게 천냥 빚을 졌더라면, 그 순간 나는 모든 빚을 탕감해주었을지 모른다. 천냥 빚도 갚는다는 말 한마디가 세상에 정말로 존재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말이 그때부터 좋았다. 오래도록 그 말을 생각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20년 11월의 어느 날 저녁, 오랜만에 된장찌개를 끓였다. 육수에 정성을 들이기로 했다. 멸치 똥을 따고, 다시마를 조각냈다. 칼칼한 맛을 내고 싶어서 청량고추도 넣었다. 아껴두었던 붉은 살 새우 몇 마리도 넣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다가 다시마를 먼저 건져내고, 올라오는 거품들을 숟가락으로 걷어내며 한참 동안 끓였다. 드디어 육수가 뽀얗게 우러났다. 이 날따라 왠지 거품으로 지저분해진 냄비 가장자리가 싫었다. 된장찌개를 깨끗한 냄비에 끓여내고 싶어서 새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채로 건더기를 건져내고 깨끗한 육수만 냄비에 담을 참이었다. 한 손에 채를 들고서, 뜨거운 육수를 냄비 통째로 채 위에 부었다. 으악!! 맙소사!!!

새 냄비에 부어야 할 육수를 개수대에 쏟아버렸다. 20여분 끓인 육수를 개운하게 개수대에 부어버린 것이다. 국수를 삶는 과정과 착각했을까? 채 안에는 희멀거진 멸치와 청양고추, 탱탱하게 익은 새우만 남았다. 나는 개수대 앞에서 그대로 정지! 좌절의 30여 초가 흘렀다. 이놈의 정신머리! 미쳤다, 미쳤어!

새 냄비에 다시 맹물을 붓고 썰어두었던 양송이버섯, 단호박, 양파를 쓸어 넣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조금 전에 내가 한 짓이 어찌나 기가 막힌 지 혼자만 알기 아까웠다.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나 조금 전에 된장찌개 끓인다고 열심히 육수 내놓고서는 개수대에 싹 버렸어.」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가 답했다.

「잘했다. 못 했다 하면 서럽고.」

그랬다. 못 했다 하면 서러웠을 것이다. 허망함이야, 무엇에 빗대어야 표현할 수 있을까? 자책을 하고 있는 나에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수고했다! 싹 쏟아버릴 육수를 그토록 진하게 끓이느라 수고했네."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른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서야, 나는 부어버린 육수에서 미련을 거둘 수 있었다.


2020년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로 꼬박 41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쏟아버린 것이 육수 말고 또 뭐가 있었을까? 좋은 인연을 쏟아버리기도 하고, 인생의 중요한 시기의 시간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의 내신과 대학교 시절의 학점을 쏟아버리기도 했다. 10년 넘게 진하게 우려낸 육수 같은 직장도 쏟아부었다면 부은 것이고, 힘들게 번 돈을 필요 없는 것들에 쏟아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쏟아버리며 살아왔다고만 말하자니, 허무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쏟아부어버릴 육수라 할지라도 육수를 끓이는데 들인 정성과 시간은 분명 내가 쏟아부은 것이니, 그 경험만큼은 버린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평탄하다면 평탄한 인생이었지만, 그렇다고 삶이 힘들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어느 한 사람도 예외 없듯이,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 속에는 말하지 못한 사정이란 것이 있으니까. 각자 상황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하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더 가볍다, 무겁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니까. 모든 순간이 아름답지만은 않았고, 노력 없이 그저 얻어지는 것도 없었다. 얻은 것보다 쏟아버린 것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한다. 또 앞으로도 변함없이 수고할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미리 전한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에게도 이 좋은 말을 전한다. 내가 다 알지 못하는 그대의 삶이지만, 이 순간 같은 마음일 그대에게 건넨다.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끝까지 잘 살아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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