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라는 말 대신

<자의적 퇴직공무원> 16.

by 이막내작가

정년퇴직을 20년도 더 앞둔 후배가, 동료가, 글을 쓰고 싶어서 퇴직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이렇게 권하기도 했다.

"그냥 직장 다니면서 글 쓰면 안 돼? 퇴근하고 집에 가서 열심히 쓰면 되잖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안 될 것 같았다.

글을 쓴다는 게 수도꼭지를 틀면 곧바로 쏟아지는 물처럼, 마음대로 조절되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아직까지는, 그렇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과 사람들에 치이다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그저 쉬고 싶었다. 글감이 떠오르기보다는 낮에 있었던 속상한 일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리면, 누군가를 험담하는 글만 써졌다. 때로는 퇴근 전에 끝내지 못한 일이 집까지 따라왔고, 낮동안에 에너지를 다 쏟아부은 탓에 퇴근 후에는 아무 생각 없이 TV나 보며 깔깔 웃고 싶은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굳은 의지로 글을 쓴다면, 쓰기야 하겠지만... 글을 쓰면서도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고, 글 쓰는 것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상태에서는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린 나무가 자랄 때, 올라가고자 하는 방향의 가지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곁가지를 잘라주는 것처럼, 나는 내 삶에서 굵게 키우고 싶은 한 가지를 선택하기로 했다. 10년 넘게 잘 자라온 보기 좋은 가지를 잘라내기로 결심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제대로 하고 싶었다.


물론 그걸 다 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두 가지를 멋지게 키워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딴짓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닌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의 성격은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럼에도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잠시 딴짓을 한다. 성과 없는 나날이 지루해서, 시간을 쪼개면 글쓰기에 더 집중할 수 있을까 싶어, 돈도 벌고 글도 쓰면 좋겠다는 욕심에, 적당한 기회가 와서, 혼자 벌고 있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잠시 딴짓을 시작했다.

재택근무이고, 내게 맡겨진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일이다. 출퇴근하며 일하던 시절에 비하면 글을 쓰기에 더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내 머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다. 일을 할 때와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머리가 각각 다른데, 이쪽저쪽으로 빠르게 전환하지를 못한다. 일하는 머리는 맺고 끊기를 잘 못하고, 글쓰기 머리는 예열시간이 길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건, 역시나 무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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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지막 근무지에서 2년 간 함께 있었던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찌어찌 내가 하고 있는 딴짓에 대해 알게 되었다며, 세상이 참 좁다고 하셨다. 책은 나왔느냐 묻는 질문에, 출간도 등단도 아직 못했다고 대답했다. 자비로 출판하려고 돈을 번다고 했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통화를 마치고 혼자 생각했다.

'에고, 나 뭐 하고 있냐.'


"기상청 그만둔 거, 후회 안 해?"

라고 직접 질문을 받은 적은 드물지만, 그런 의미가 담긴 질문은 많이 받아봤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주 후회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미쳤지 되뇐다. 그럴 때마다 상상을 한다. 만약, 다시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퇴직을 하지 않았을까? 우스운 것은...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내 머릿속에서는 같은 자리를 돌아 다시 지금 여기에 와 선다. 다시 상상하고 또 상상해도 같은 자리를 맴도는 여러 명의 내가 똑같은 선 상에 와 선다. 이쯤 되면 의미 없는 상상(어차피 처음부터 의미 없는 상상이었지만)인데도, 적지 않게 그런 상상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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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처럼 재미없는 삶이 또 어디 있을까.

후회 속에서 바둥바둥 살아가다 보면, '아, 이런 게 인생인가?' 코끼리 발가락이라도 만져보게 될지 모르니, 나는 오늘 힘을 내고, 내일 또 후회를 하고, 모레 또 나아가기를 반복할 거다.

4년 전의 선택을 후회할 때마다, 나는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지금의 길이 어차피 내가 갈 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내 새로운 가지를 굵고 튼튼하게 키워내는 것. 지금 내가 매일 흔들리며 이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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