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저에게 온 게 맞나요?

by 살피

코끝이 차갑고 손바닥을 비비며 입김을 내뿜는 날에 처음 발을 디뎠던 이곳은 곧 내 집이 되었다. 온통 새로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적응하지 못했던 건,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비슷한 나이대에 비슷한 상처를 품고 있었다. 난 부모의 행방으로 이곳에 왔지만 아예 부모를 잃거나 보호조치를 받은 아이들도 있었다. 부모는 어디로 갔을까. 내가 이곳에 오길 바란 걸까? 영영 답을 알 수 없는 물음들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내 집에 온 지 5년이 흐른 지금, 난 퇴소를 앞두고 있다. 항상 나의 시작과 끝은 겨울이었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차가운 바람이 불었고, 집에 왔을 때도, 집을 나가야 할 때도 지구를 담고 있는 스노우볼은 멈추지 않았다. 눈이 휘몰아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입술이 파래지는 일은 잦았다. 겨울에 태어나면 추위를 안 탄다는데, 나는 왜 이러지. 영하를 찍는 날에는 이불 두 개가 필수였다. 심하면 목도리나 귀마개, 마스크를 하고 자는 날도 있었다. 내가 느끼는 추위가 어디에서 왔는지 조금은 예상이 되었다.

부모가 사라진 건 한순간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집에는 나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벽에 걸어놓은 가족사진과 따뜻한 밥이 들어있는 밥솥도 그대로였다. 나에게 남겨놓은 메모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학교를 가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 아침 식사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학교를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경찰이 집에 찾아왔다. 엄마가 모르는 사람 문 열어주지 말랬는데. 경찰이 아니라면 어떡하지? 걱정이 무색하게 그들은 정말 경찰이 맞았다. 그 후로 난 여러 절차를 밟은 후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지만 사실 나는 하나도 크지 못했다. 서류에 박제된 내 나이는 만 18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 18세로 바뀔 거였다. 18. 어감도 별로다. 저런 끔찍한 나이가 된다면 이곳을 무조건 떠나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곳에서 나가면 갈 곳이 없는데 어디로 가라는 거야. 밖에서 홀로 산다면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내 집이 있는 상태에서 외출하는 건 전혀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차원이 달랐다. 퇴소 날이 다가오며 그만큼 더욱 겁쟁이가 되어 갔다. 하루는 방 모서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일기를 쓰기 위해 작은 노트 하나를 구했다. 표지에는 ‘집’이라고 써넣었다.

나름대로 떠날 준비를 했다. 노트에는 각종 팁과 정보들이 가득 채워졌다. 그러던 중 내 앞으로 온 편지 하나를 받았다. 발송인 란에는 내가 모르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저에게 온 게 맞나요?

선생님께 여러 번 물었다. 선생님은 맞다고 했다. 분명 내 것이라고. 경계하며 조심히 봉투를 뜯었다. 초라한 종이 한 장이 봉투 안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이제 보니 종이 한 장이 아니라 한 조각이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쪽지 하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단어 하나만 하얀 종이 위에 강조되어 있었다. ‘파란’ 파란이 뭘까 생각하다가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파란은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 살았던 동네의 마스코트 같은 단어였다. 아파트나 학교, 유치원, 가게 할 것 없이 모두 ‘파란’의 이름이 붙었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 이곳을 떠난다고 다시 못 오는 건 아니었다. 언제든 걸어서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집’이 사라진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물론 퇴소 후에도 지원을 받을 순 있지만 나의 10대가 이대로 사라진다는 게 이상했다. 난 ‘파란’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장갑을 끼고 핸드폰으로 날씨 예보를 봤다. 보이는 화면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그려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과 눈을 맞췄다. 온통 ‘파란’이다. 여전히 나의 목적지는 ‘파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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