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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팔구일 Apr 01. 2023

퇴사일지

다시 퇴사다.


조용한 퇴사를 하고 싶었다.

회사 분들에게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단 명분으로

퇴사 전날까지 관리자를 제외하고 아무에게도 그만둔단 말을 안했다.


동기 언니가 퇴사 전날 다른 분을 통해 내 소식을 접하고 너무 서운하다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진심어린 마음을 표현해주셨다. 회사 끝나고 같이 밥 먹자고 하셨는데 몸 상태가 안좋아서 식사는 어려울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최근 몸이 진짜 안좋은 건 맞다. 집에 오자마자 바로 침대로 가야 다음날 겨우 일어날 수 있고, 코를 풀면 코피같은게 묻어나오고, 머리가 빙빙 돈다. 아마 멘탈이 매너리즘 정점을 찍어서 몸도 그렇게 반응하는 걸거다.


그런데, 솔직히 내 안에 타인을 향한 마음이 없는게 진짜 이유다. 하루만 일하면 디엔드인데 저녁 한끼 시간내는게 뭐 그 어렵다고 그러는지, 마음 한켠 내어주지 않는 이기적인 나를 본다. 내가 일하는 현장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나의 불안에만 집중했다. 다른 사람 따윈, 생각하려고도 안했다.


퇴사 전 날, 예의 챙긴다고 동료들 퇴사 선물을 준비하는데 이게 과연 누굴 위한거였을까. 그분들을

정말 생각하는 거였다면 미리 퇴사를 말씀드리고,  정식으로 인사할 마음은 마련했을거다. 관계를 맺기가 귀찮았던거고, 마음으로 언제나 회사와 회사 사람들을 밀어낼 궁리를 하고 있었던 거다.


서로 인사도 데면데면했고, 말 한 번 제대로 안 한 선배님이 점심을 드시고 와서 갑자기 내 자리로 오셨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들었어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고생만 하다 가시네요" 하시며 비싼 자몽에이드를 주셨다.  그때, 내가 숨기려고 했던 내 안에 사랑 하나도 없으면서, 예의차림으로 사랑을 포장하려고 했던 가면이 보였다. 이분이 예수님을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보단 이 분 마음이 훨씬 예수님에 가깝구나. 부끄럽고 참 고마웠다.


사람은 참 지겹게 안변한다. 000님이 대화방을 나갔습니다라는 문구가 안나오게끔 회사 단톡방을 나가겠단 명분으로 카카오톡을 만져대다 카카오톡 데이터가 다 삭제되고 친구 목록도 날아갔다.


회사 동기들에게 끝나고 다음에 밥 먹으러 오겠다는 말을 한 지 한 시간도 안돼 단톡방을 그따위로 나가버렸다. 그런데... 평소에 나하고 잘 연락을 안했던 분들이 내가 카톡에서 사라졌다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해주시는 연락을 주셨다.


파괴적이고 사람을 밀어내기 급급한 나같은 애를 사랑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어서

어안이 벙벙하고 미안하고 그렇다.


시한 폭탄 같은 나의 얼룩을 잔잔하고 따뜻한 이슬로 닦아주시려는 그 분 마음이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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