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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팔구일 Apr 05. 2023

퇴사일지 2

나의 개념 없음과 당신의 열악함

대학을 졸업하고 이 회사 저 회사를 많이도 기웃거렸다.

한동안 카톡 친구 목록이 많았던 이유도 잦은 이직 덕분이기도 하다.


첫 회사는 출근은 아홉시지만, 퇴근은 밤 열시, 열한시일 때가 많았다. 수습이란 이유로 최저임금 100%를 주지 않았고, 85만원을 받았다.

늘 잠이 모자랐고 차라리 가다가 쓰러졌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어느 날 아침엔 제발 아팠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일부러 지하철 벤치에 누워있다가 역무원 아저씨가 놀라서 달려온 적도 있으셨다.


업무 강도도 높은 편이었고 박봉이었지만 다 떠나서 결국 사람이었다. 상사에게 한 번 밉보인 적이 있었는데 무언의 침묵, 업무 관련 말을 하는데도 일부러 내 말을 안듣는 상황이 견딜 수 없었다. 졸업한 학교에서 취업률을 조사하는 전화가 왔는데, 나보다 동생같은 분이 "힘드시겠어요"라는 말을 했을 때 울컥했다. 4.5개월을 일하고 회사와 바이바이했다.


프리랜서로 인터넷 강의를 하는 강사님들의 강의 보조자료 PPT를 제작하는 일을 1년 정도 했다.

업무 난이도는 높지 않았지만, PPT 글자 하나가 틀리면 재촬영을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해 긴장도 컸다.

사수가 꼼꼼하지 않은 나를 별로 안좋아했다.

게다가 난 컴맹이라서 PPT로 그림자료 수정해야 할 때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는데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고민은 많고, 풀 데는 없어 회사 근처 시장에서 순대국과 떡을 먹으며 벌크업이 됐다. 살이 10kg 이상 쪘다.


공공기관에서 전화 받는 일을 6개월 일했다. 대학생들이 이 기관에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장학 조건을 몰라서 졸업하고 지금까지 받은 돈을 전액 환수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무서운 전화들 많이 받았다.

직원도 아닌 나에게 매뉴얼이라 하는, 별로 도움 안되는 종이쪼가리 몇장 쥐어줘 놓고선 사무실에 들어오는 상당히 많은 전화들을 받게 했다.

물론 담당자가 몹시 바쁘기는 했지만, 그들은 일부러 울리는 전화를 안받기도 했다.


어이없던 회사는 과외중개업체였다. 학생관리란 명목으로 과외 선생님이랑 과외는 잘 했는지, 학생이 먼저 한 달 과외를 해보고, 이후에도 계속 과외를 연장하게 하는 매니저 역할이었다.  

수습으로 3개월 일하고 때려치웠는데, 중도에 과외를 그만두면 환불 바로 안해주고 늑장을 부려 학부모를 화나게 했다. 당시 2015~2016년이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구나, 내가 지금 무슨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나, 여긴 회사인가 사기 집단인가 회의감이 들었다.


가장 저주했던 회사는 날 일주일 동안 간을 보고 짜른 곳이다. 회사 사보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일을 안시켰고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그 회사에서 발행한 사보만 주구장창 읽었다.

알고보니 내 성향이 적극적이지 않고 등신처럼 보여 믿고 맡길 수가 없었던 거다. 회사를 상대로 하는 거다보니 큰 돈이 오가는 곳이고 거래처 회사 하나를 잃으면 큰 손실이 난다. 업체와 커뮤니케이션을 잘 할 수 있는 똘똘하고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을거다. 그럼 애초에 뽑질 말던가. 이해는 하나 일 한 번도 시키지 않고 사람을 짜른 건 상당히 모욕적이었다.


팀장이 다른 사람들 보지 않게 조용히 나가라는 말을 했다. 급하게 나가느라 텀블러를 두고 나왔는데, 내 물건이 그 공간에 남아 있는 게 너무 싫었다. 짤린 그 밤 열시가 넘은 시간에 기어이 그 회사에 가 내 물건을 찾아왔다. 야근을 하는 직원이 나를 경계하며 쳐다봤다. 나는 그 눈빛이 혐오로 느껴졌다. 일도 안하고 받은 40만원 가량의 돈은 고맙게 잘썼다. 다만 깊이 저주했다.


그리고 5일 전 다시 퇴사했다.

그만 둔다고 말한 이후 퇴사 일주일 전, 관리자님께서 나란 등신을 붙잡아주고, 같이 일하자고 권면해주었다. 전화 받을 인력이 부족해서였겠지만 꼭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형식이었겠지만 이 회사는  크리스마스라고 전골 밀키트도 선물하고, 설날이라 홍삼도 선물해주고, 특히 나와 상관없는 발렌타인데이에 다양한 종류의 과자와 목에 좋은 레몬청과 달콤한 딸기청을 예쁘게 포장해 준 손길이 정말 고마웠다.


한 곳에 정착 못하고 다양한 곳을 떠돌아서 그런지 이런 선물이 당연한 것만은 아니라는 건 안다.  

어떤 곳은 사람을 그야말로 일하는 개처럼 취급하는 곳도 있고, 아르바이트생은 빼고 자기들끼리 회식하는 문화가 일상인 곳도 많다.


그런 상황들을 놓고 보았을 때 여긴 열악한 곳이나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생애 처음 200을 넘는 돈을 받아보기도 했다. 아주 짧게 일한 4개월이었지만, 그동안 참 고마웠다.


스물다섯 부터 10년 간 여러 회사를 메뚜기 한철처럼 뛰어다녔다.


꼼꼼하지도 못하고, 컴맹인데다 자신을 꾸밀 줄도 몰라 거지같이 입고 다니고, 말 한마디 붙임성 있게 못 건네는 사회성 제로인 나를 받아주고 도와주고 자라게 해주어 고맙다.


개념 없고, 극단적 P에 가까웠던 나를 J 성향으로 만들어준 당신들과의 인연은 언젠가부턴 내가 살아갈 힘이 되기도 했다.


비록 우리의 인연이 오래 닿지는 못하였고 그대들에게 나는 잊혀질 잔재물 같은 존재이지만 말이다.

당신들의 열악함을 모두 용서할 수는 없다. 다만 그곳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부디 평안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건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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