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이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따뜻했고 이마에 내려앉던 햇살은 다정했다. 믿기지 않게 봄이 와버렸다. 내가 몰랐던 사이, 목련도 이미 꽃망울을 하나둘 터뜨린 것이 아닌가. 계절은 벌써 봄의 중턱을 넘어서고 있는듯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봄기운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베란다 창문 밖 풍경을 통해서다. 듬성듬성 보이던 산수유의 노란 빛깔을 확인하고는 겨우내 입던 코트와 패딩을 세탁소에 맡길 때가 되었다 생각했으니 말이다.
산수유는 봄꽃 나무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란색으로 봄을 알리는 봄의 메신저. 어디 그뿐인가. 산수유가 화사한 노란빛을 발하면 주변 나무들도 서둘러 봄의 옷을 입으니, 산수유는 꼭 봄의 요정 같다. 가지마다 여러 꽃들이 달려 있고 도심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가까이 있고 익숙한 나무.
사실 나도 봄만 되면 노랗고 예쁜 꽃을 피우는 이 나무의 이름이 '산수유'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첫째 아이를 낳은 그 해 봄이었으니 얼마 되지 않았다. 어느 봄날 시어머님과 나는 산책 중이었다. 어머님은 내 걸음에 자신의 보폭을 맞춰 천천히 걸으시며 "어머, 산수유 좀 봐. 이제 봄이다."하시며 좋아하셨다. 그때 나는 '이 예쁜 나무가 이름도 예쁘네.'하고 생각했었다. 이듬해 우리는 산수유 꽃축제도 갔었고.
산수유의 아름다움은 봄에 그치지 않는다. 가을이 되면 길쭉하고 둥그런 열매들이 나무 가득 열리는데 새빨갛고 작은 열매들이 얼마나 앙증맞고 귀여우며 탐스러운지 모른다. 또 산수유는 향은 약하지만 화려한 색에 곤충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들기에 이에 대비해 자신의 잎맥을 털로 감싸 보호하고 있는데, 지혜롭지 않은가.
우리집에서는 이 산수유가 우리 가족의 마음을 무시로 환히 비추는 것만 같다. 앞 베란다 쪽 정원에도 커다란 산수유가, 반대편 주방 쪽에도 그에 버금가는 키가 큰 산수유가 있어서 블라인드만 걷으면 산수유가 빼꼼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환기를 시키려고 집에 있는 창들을 다 열어젖히고 거실에 턱 앉아 고개를 돌리면 왼쪽에도 산수유가, 오른쪽에도 산수유가 있는 형상이다. 일 층이라 더 그런가 싶지만 이 산수유들이 어느 때에는 아파트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꼭 우리집 정원에서 직접 키우는 나무인 마냥 소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관찰하고 보살피게 된다.
봄에는 노랗게 모여 꽃 뭉치를 이룬 산수유를 사진을 찍어 보관하고, 가을에는 아이들과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 소꿉놀이를 한다.
3월의 나무는 소실점 끝에서 피어난 귀한 생명같이 귀하다. 그 추운 겨울을 맨몸으로 이겨내고 결국에는 꽃을 피운 모습이 듬직하고 든든하다. 자신의 온몸을 자연의 소리에 청종하고 그 순리에 자기 생을 내어 맡기는 나무는 분명 큰마음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종종걸음으로 바삐 집 안팎을 오가다 가도 산수유만은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바라본다. 신비롭고 경이로운 나무의 생명이 내게 잘 살고 있다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나는 방긋 웃음으로 화답한다.
창문을 활짝 열고 산수유를 바라보며 코트와 패딩을 정리하던 날, 미세먼지는 없었고 하늘은 맑았다.
나무도 나도 땅에 두 발 단단히 붙이고 화창한 봄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