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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귀

죽은 자의 복수

by 양다경

직장 생활만 했던 50세 최을숙. 그녀는 우연한 계기로 식당을 처음 차리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이라는 명목 아래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한 그녀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막상 중년에 음식점을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걱정보다 희망을 갖게 건 남자친구 한종철 때문이었는데 그가 추천한 이곳 구릉지. 이곳은 지칠 줄 모르는 나무의 푸르름이 있고, 식당 앞 야트막한 언덕에 공원도 작게나마 있으니. 그러니 등산객과 여행객이 틈틈이 올 것만 같아 무릇 장사가 잘될 거라는 기대감이 차 있는 그녀였다.


"이곳 정말 멋지다! 이런 곳에 식당을 하게 된 건 다 자기 덕분이야, 고마워" 을숙은 종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덕분은 무슨, 나야 뭐, 이 동네에 아는 친구가 있으니 추천한 거지" 그는 답하면서도 그녀의 어깨를 살짝 부딪치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그녀는 그의 넉살이 귀여워 "헛"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을숙은 돈을 들여 식당 안, 거주할 공간도 정비해 인테리어에 들어갔고, 제법 구색을 맞추어 개업을 했다. 개업을 하니 마을 사람들도 이방인 같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했고, 오고 가는 산책로에 쉬어가는 손님들이 들리곤 했다. 그러니 생각보다 식당이 북적여 그녀는 웃음꽃이 만발하다.

"종철 씨 시작이 좋으니 장사가 잘될 것 같아" 그녀는 그에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럼, 잘 되고 말고!" 하며 엄지 척을 들어 보이는 종철. 그도 을숙의 말에 들떠 맞장구를 주었다.


그런데 식당을 시작한 개업날 밤이었다. 그녀는 운영 첫날이라 피곤함이 일찍 몰려왔다. 그러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들었고, 문득 스산한 공기에 잠을 깼다. 잠을 깨 뒤척이니 마치 '으스스 스스 스스' 하는 뱀이 기어 다니는 소리와도 같은 바닥을 쓰는 음이 들려오는 것이다. 그녀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식당 안쪽을 둘러볼 생각에 방 밖으로 나가는데. 순간, 묘한 울음의 통곡소리, '흑흑 흑흑'하는 소리가 을숙에게 들려오고. '사람 소리...?' 하지만 자신밖에 없는 공간에 무슨 사람 소린가, 싶어 "누구세요" 하며 이리저리 살피는 그녀. 그리고 확인차 전기를 켜려는데 전기도 웬일로 켜지지 않는다. 그녀는 오싹한 얼굴빛이 목까지 서려왔고 소름이 끼쳐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건너편 마루 밑으로 시커먼 물체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긴장하며 그 시커먼 물체가 무언지 알기 위해 쿵쾅거리는 마음을 안고 마루 밑을 보며 다가갔다. 걸어가니 그 시커먼 물체가 이상하게 뒤틀린 자세로 자신에게로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니 그건 사람의 형체는 아닌 듯했으니. 소복을 입고 흐릿흐릿하고 긴 머리를 늘어뜨려 기어 오는 모습. 그녀는 '으악'하며 뒤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향해 고함을 쳤는데. "다 가.. 다가오지 마, 제발!!" 하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말에 개의치 않고 그러면 그럴수록 을숙 앞에 바짝 다가가더니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 눈은 뿌옇고 실핏줄이 터져 나온 얼굴은 턱 밑이 어둡고 혀가 길게 늘어져 있는 여자. 거기다 입은 크게 벌린 상태로 축축하고 끈적한 물을 떨어뜨려 엿가락처럼 긴 옆머리를 적셨다. 그 모습에 등골이 오싹한 을숙은 "악아!! 아악!!" 하며 방으로 냅다 도망쳤다. 그리고 그것이 쫓아올까 부들부들 떨며 방문을 꼭 잡고 질끈 눈을 감았다. 평소 그녀는 보통 사람보다 담이 크다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귀신을 가까이서 보니 공포감이 온몸에 뒤엉키고 하염없이 식은땀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후로도 을숙은 여러 번 그 형체를 마루뿐 아니라 냉장고 옆, 부엌에서까지 보아야 했고, 그때마다 도망치기 일쑤였기에 눈 밑은 시커멓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니 피곤에 절어진 모습으로 식당을 운영하기 어려워졌는데. 간혹 남자친구 종철에게 이 일을 하소연하기도 하며. 그러면 잠깐 위로받고 했지만 그는 그녀의 지속된 얘기에 의심의 눈초리가 되기도 했다.

"피곤해서 그런 거 아냐, 식당 한다고 신경 많이 썼잖아" 하며 그는 종종 툭툭 뱉는 식으로 의구심의 말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자신을 못 믿는 종철에게 섭섭해졌고, 점점 이해 못 한다는 생각이 깊어갔다. 그래서 지쳐가던 을숙은 할 수없이 예전부터 알던 박수무당을 불렀고, 무당은 부랴부랴 와서 들어서자마자 방울을 흔들고 식당을 둘러보며 말했다. "흠, 이 식당이 산 아래 있는 것이라 음기가 가득한데... 보자, " 하더니 몸을 부르르 떨며 접신을 시도했다. 그러더니 금세 여자 목소리로 바뀌는 박수무당은 "엄마... 엄마 나를 두고 이리 가면 어떻게.. " 하며 통곡을 시작한다. 그러다 무당은 또 뒷걸음치며 "싫어, 싫다고!! 오지 마!!" 하고 악을 바락 쓰더니 몸을 감싸 안는데. 무당은 그렇게 한참 동안 울고불고하다가 정신이 드는지 "휴" 하고 한숨을 돌리며 말을 이어갔다.


"아가씨네, 젊은 아가씨, 죽어서도 이 식당에 머물고 있네, 아이고... 아가씨 엄마도 여기서 죽고. 불쌍해서 어떡하나, 새아버지에게 겁탈도 당했어. 그래서 비 오는 날 목을 매고 죽었구먼. 저 뒷산 고목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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