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한
넓은 빌라로 이사 갈 생각에 저축을 했던 정연은 하늘을 날 것만 같다. 오늘 이 모은 돈으로 빌라 잔금을 치르고 입주만 하면 되는 것이다. 군사무관인 남편 철근도 그동안 애썼으니 입주를 하고 나면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드는 그녀였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며칠 후, 정연은 남편 철근은 함께 첫 입주를 하게 되었고, 빌라는 생각보다 더 햇볕이 들고 거실도 아늑했다. 그녀는 군 아파트에 살 때도 좋았지만 좌우로 탁 트인 공간, 넓은 베란다의 여유로움이 있는 이곳이 여간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빌라가 흡족했던 이사 첫날, 그 낭만도 하룻밤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니. 그건 생각지도 못한 층간 소음, 소리 때문이었다. 그것은 빌라에 온 첫날부터 그녀를 괴롭혔고, 하지만 철근은 그날 당직이었던 탓에 그녀에게만 국한되는 소음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퇴근하는 철근을 향해 정연은 소음 문제를 넋두리처럼 털어놓았다.
"여보 위에 사람들이 입주했나 봐요. 사람들이 너무 뛰어다니는 것 같아요. 당신이 시간 날 때 가서 얘기해 봐요." 하며 정연은 철근에게 투덜댔다.
하지만 사정을 알 리 없는 철근은 그녀에게 너그러움만 종용했다.
"그런가, 우리가 빌라 첫 입주가 아니었나? 혹시... 부모님은 일 나가고 저녁에 애들만 있나? 사정이 있겠지" 하며 무신경하게 말을 뱉는 철근. 그녀는 그의 태연함이 자신의 사정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하기 그지없는데. 그리고 어쨌거나 그는 당직이니 또 그녀는 매번 쏟아지는 층간 소음을 감수해야만 될 것이다. 정연은 그 생각에 짜증 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어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나 다를까 문제의 그날도 남편의 출근 뒤, 연속 들리는 소음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고. 안 되겠다 싶은 정연은 늘어진 카디건을 대충 챙겨 나섰다. 그리고 위층에 올라 가 벨을 누르고, 벨을 누르니 막상 위층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지며 반응이 없다. 그녀는 화가 나 문을 쿵쾅거렸다.
"바로 밑에 층에서 왔어요. 좀 조용히 해주세요,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녀는 큰 소리로 얘기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소리로 얘기해도 역시나 사람의 기척이 없다. 정연은 '자기네들도 미안한 거 알고 그러나... 이렇게 했는데 앞으로 개선되겠지.' 하며 그쯤 해두고 일단 계단을 내려와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내려온 뒤로도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또 위층이 시끄럽기 시작했다. 거기다 이제 쿵쿵 뛰는 소리까지 들리는데. 그녀는 할 수 없이 다시 올라가게 되고, 울분을 삼키며 재차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순간, 귀를 의심하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환자가 위험해요, 곧 수술을." "네, 바이탈 체크, 이쪽으로 빨리" 하는 병원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려오는 것이다. 아이들이 병원놀이를 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분명 어른의 목소리 같기만 하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도대체 무슨 일인가, 뭐지... ' 하며 소름 돋는 섬뜩한 마음이 되어 구시렁대며, 내일 오전에라도 위층 일, 빌라 문제로 관리자분들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집으로 가고자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그런데 왠지 등골이 싸늘함을 느끼는 정연. 그녀는 냉한 느낌에 천천히 뒤돌아 엘리베이터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그런데 그때, 어떤 형체가 허물 거리며 보이기 시작하고. 보고도 믿지 못할 형체는 아른하게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온몸에 흙이 잔뜩 묻은 군복을 입고 입가에 피가 고인 군인의 모습. 그는 온 얼굴이 부어있고 여윈 몸에 목에는 시퍼런 상처투성이로 가득했다. 정연은 소스라치게 놀라 '으악' 고함을 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니 그 군인이 천천히 다가와 입을 여는데 그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더니 입이 크게 아래, 위로 갈라지며 잔뜩 피를 토해낸다. 토해낸 피는 정연의 얼굴로 뱉어져 그녀의 얼굴을 빨갛게 칠한 듯 덮어지고 "악악" 하며 그대로 의식을 잃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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