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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천

연탄가스

by 양다경

가까이 갈수록 시선을 사로잡는 커다란 감나무와 석류나무. 그 나무의 익은 과일이 무게를 못 견뎌 떨어져 있고. 떨어진 과일 옆으로 풀 내음이 나는 꽤 널찍한 정원. 그 정원은 작은 텃밭을 끼며 앞으로는 흰색 현관문을 보이게 했다.

​수철은 10년 만에 이렇게 좋은 집을 산 것이 내심 뿌듯하다. 거기다 아내, 정숙은 텃밭으로 뛰어가 먹을거리를 심을 생각에 함박웃음을 지었으니.

비단 아내뿐 아니라 아들 민재, 현수, 큰 딸 아현도 정원이 딸린 집이라 들어서는 순간 행복해했고. 그런 모습에 수철은 흐뭇해하며 언제나 꿈에 그리던 이 집에서 다복한 가정을 꾸릴 희망만 가졌다.

​그래서 정원을 지나쳐 흰색 현관문을 거침없이 열고 가족들과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니 튼튼한 목재로 지어져 생각보다 더욱 아늑한 집, 가족들은 그렇게 새로 이사 온 집에서 도란도란 얘길 나누며 이삿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정리하다 2층으로 올라간 아이들. 아이들은 방이 두 개가 있어 서로 큰 방을 갖고 싶어 아우성이다. 그 가운데 큰딸 아현은 사춘기이니 조금 널찍한 방을 쓸 거라고 떼를 쓰고. 두 동생은 하는 수없이 작은방을 선택해 뾰로통해서 내려왔다. 그러나 각자 방을 가지고 나니 힘이 든지도 모르게 방으로 짐을 가져가 예쁘게 정리하는 아이들.

​그 모습을 보며 수철과 정숙도 빙그레 웃으며 안방에 짐을 가져다 놓는다. 안방은 1층 부엌 옆을 지나 제법 큰 방으로 장롱과 화장대가 놓여 있다. 그 사이로 꼭 싸인 옷가지를 푸는 수철과 정숙. 문득 아내 정숙이 뭔가 생각이 났는지 "아, 맞다!! 연탄불을 미리 때야지. 여보, 나 아궁이 좀 보고 올게" 하며 연탄불을 때러 뒤뜰로 나갔다. 뒤뜰에는 아궁이 곁으로 연탄이 피라미드처럼 재어져 있고. 아마도 전에 살던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현숙은 고마운 생각을 하며 연탄을 가져와 불을 짚었다. 그러니 '따다닥' 하며 피어오르는 연탄. 현숙은 연탄에 집중하며 1층과 2층으로 나눠진 아궁이를 알뜰히 살핀다. 살피다 얼핏 뒤돌아 정원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지는 정숙. 터신에게 기도할 요량으로 손을 모아 이곳에서 잘 살게 해 달라, 기도를 했다. 그 사이 연탄은 각자 방의 아궁이로 통해 들어가고. 어찌나 불이 강했는지 좀 지나면 방이 뜨거워 가족들이 이불을 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짐을 풀고 새 집에서의 자는 첫날밤. 모두들 이사와 짐을 정리하고 피곤했는지 깊은 잠에 빠진다. 큰딸. 아현도 곯아떨어지는데. 잠들자마자 불현듯 꿈을 꾸기 시작하는 아현.


한적한 곳, 주위는 나무가 빽빽이 있고, 앞에는 큰 강이 있다. 강줄기는 어디서 어디까지 끝날지 모르는 제법 긴 강이다. 그리고 언덕이 보이는 곳, 사람의 인적이 없는 듯한 곳에 아현이 덩그러니 서 있는데. 그때, 머뭇거리는 아현에게 낯선 소리가 들린다. 아현은 곧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곳은 쪽진 머리에 어떤 키 작은 할머니가 있었는데,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손을 젓고 있는 것 같다. 할머니는 강 중심으로 건너편에 있는데도 그 인상이 어둡고 목으로는 푸른색이 감돌며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다 소복을 입고 있는 모습의 낯선 할머니. 할머니는 다짜고짜 아현에게 계속 손짓을 하며 아현을 끊임없이 꼬드기는 듯한 모습이다.



"이리, 이리로 이리 이리로" 하고 말하는 것 같은 할머니. 금방이라도 아현을 데리고 갈 기세이다.

"네?" 할머니의 말이 띄엄띄엄 들리자 아현은 짧은 대답 후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눈이 둥그레진 할머니가 큰 입을 더욱 크게 벌리고. "어서어서, 어서" 할머니 말에 아현은 무작정 자신을 보고 손짓을 하는 할머니가 왠지 탐탁지 않다. 어리둥절한 아현.



그러자 점점 얼굴이 일그러지는 할머니. "어서!!" 하며 크게 고함을 치며 말하는데 그 소리는 쩌렁쩌렁하다.



그런데 그 순간, 섬뜩한 느낌의 아현이 옆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니 강 위에 배가 한 척 있는데. 그런데 그 배에는 아현의 남동생 민재, 현수가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시커먼 갓과 도포를 입은 사람이 막 노를 저어 동생들을 데리고 건너편으로 갈 판이니. 아현은 뭔가 동생들을 보내면 안 될 것 같아 막 그쪽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민재야, 현수야, 배에서 내려! 빨리!!! 빨리빨리!!" 민재와 현수는 그런 누나를 보고도 아무런 표정 없이 미동이 없다. 아현은 급한 마음에 강어귀에서 물에 첨벙첨벙 뛰어들어 민재와 현수를 끌어내리려 하고. 그러니 시커먼 도포를 입은 사람이 노를 저을 요량으로 배에 묶인 줄을 풀어버린다. 다급해진 아현은 그 모습을 보고 더욱 놀라 필사적인 힘으로 동생들을 배에서 끌어내리는데. 그제야 동생들은 누나를 알아보고 배에서 덤벙덤벙 내린다. 그런 동생들을 아현은 급히 데리고 뭍에 다다랐다. 다다른 아이들은 지쳐 함께 숨을 돌리고.

​그때 맞은편 할머니가 "저런 고약한 것을 봤나!!" 하며 호통을 친다. 그리고 아현과 동생이 있는 곳을 쳐다보며 서슬이 푸른 눈이 되는데. 아현은 그 모습이 공포로 뒤덮여 동생들을 꽈악 끌어안았다. 그리고 끌어안은 채 눈을 위로 치켜뜨니 갓과 도포를 입은 사람이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 바람에 아현은 "으악" 고함을 치며 후다닥 꿈에서 깼다. 깨니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속은 울렁거려 토해내는 것도 없이 토해내게 했다. 기력이 바닥이 난 아현은 겨우 방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엉금엉금 손발을 딛고 옆방에 있는 동생들 방에 들어가 그들을 깨웠다. 그런데 동생들은 아무 말도 없고 의식이 없다. 불안함에 아현은 '캑캑' 하며 다시 밑에 층을 향해 어기적어기적 내려가고. 있는 힘을 다해 아빠, 엄마를 부르고 쓰러지는 아현.

​그때, 안방에 수철과 민영은 아현의 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오고, 집 안이 가스로 뒤엉켜있는 것을 느낀다. 둘은 냄새를 맡더니 그 원인이 연탄가스임을 알았다.

그제야 수철은 2층으로 올라가 재빨리 환기를 시키고 민영도 밖을 나가 장독대에 동치미 국물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먹인다. 민재와 현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현은 비몽사몽에 흐느적거리고 있는데. 수철은 응급신고를 하고 응급차에 실려가는 아이들과 병원으로 갔다.



그래도 아현의 빠른 조치로 동생들이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뻔한 일이었으니. 수철과 현숙은 눈물을 삼키며 겨우 안심을 하고, 병원 응급실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아현의 부르는 소리에 수철과 현숙은 다가가 글썽거리며 아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 그제야 아현이 꿈 얘기를 하는데.



"아빠, 어떤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 나보고 계속 손짓을 했어, 강가에서 말이야. 그런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발만 동동 거리고 있었거든. 그리고 강 주변으로 말이야, 갓 쓴 사람의 배에 민재와 현수가 타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배에 있는 동생들을 끌어내렸어... 근데... 동생들과 도망쳤다 생각했는데... 갓 쓰고 도포 입은 무서운 사람이 눈앞에 딱 서 있는 거야." 하며 엉엉 우는 아현. 그 말을 들은 수철은 소름이 끼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무... 무슨 강? 강이라고...? 강이라니, 강이라면..."

그러면 말로만 듣던 생과 사의 강을 보았다는 것인가, 하는 수철과 정숙. 그 생각이 미치자 수철과 정숙은 맥이 탁 풀리며 무서운 생각에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다.



그때, 입을 떼는 아내 정숙.

"아현이 말한 그 할머니... 그 할머니라는 분은 우리 애들을 다 데리고 갈 심상이었나...?" 정숙의 말에 의미심장해진 수철은 아현에게 할머니의 생김새를 물었다.

"머리에 비녀를 꽂고 키는 작았어, 그리고 매섭게 생기셨는데 입은 커서... "

생김새를 다 들은 수철은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망연자실 표정을 했는데. "왜요? 뭐예요?" 아내, 정숙은 수철의 행동에 궁금증이 더해 물었다.

"아무래도 작은 어머니 같아..." 수철은 확신하듯 입을 다물었다. "작은 어머니라뇨?" 정숙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수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니 수철이 입을 여는데 "사실, 아버지가 밖에서 따로 데려온 여자가 있었는데... 내가 작은 어머니라 불렀지, 그런데 그 작은 어머니는 딸을 낳았는데... 낳았는데... 딸이 죽자, 늘 나를 미워했었어. 그리고 내가 잘 되는 꼴은 못 본다고 병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그 얘기를 했었지..."

수철은 말을 하면서도 옛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 원망 때문에 아이들을 다 데리고 저승에 가려 했단 말이에요? 기막혀, 꿈에서 본 강을 건넜으면 어째, 큰일 날뻔했네" 현숙은 심각한 표정을 하며 가슴팍을 두드렸다. 그런데 듣고 있던 수철이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정숙에게 불쑥 얘기를 꺼내는 수철.

"근데, 여보 다르게 생각해 보면... 결국 아현을 통해 아이들을 구한 거잖아. 작은 어머니가 건너오라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가도록 하려던 게 아닐까?"

"무슨 소리예요? 애한테 손짓을 했다잖아요" 정숙은 대뜸 화를 냈다.

"아니, 꿈에서 아현이 깼으니, 그리고 아현이 민재, 현수를 구했잖아,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은 물론이고 당신과 나도 깨어나지 못했을 거야"

아내, 정숙도 생각해 보니 수철의 말도 일리가 있단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 그런가, 아현의 꿈에 나타나서... 돌아가라는 말이었던가... 하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아이들 모두를 잃을뻔했어요."라고 정숙이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수철.

"그래, 결국 우릴 다 살린 꼴이 되었으니, 내가 작은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나쁘게만 생각했어..." 수철은 말하면서 굳었던 얼굴을 푼다.

"그래요, 그래... 이만하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럼 작은 어머니가 당신을 도우려 했던 것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하고 말을 꺼내는 정숙.

문득 같은 여자로서 작은 어머니라는 분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려 하려는 듯 정숙은 얼굴을 펴고 말했다.



"응, 그래... 그렇게 생각해."

결국 수철은 그동안 품었던 작은 어머니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는 모습이었다.



그 후, 좋은 날짜를 잡아 작은 어머니의 천도재를 한 수철의 가족. 어쩌면 수철에게 원망을 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갑지 못했던 탓에 이런 식으로 꿈에 나와 구해준 것 같은 작은 어머니. 그래서 수철은 늘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던 작은 어머니를 위해 좋은 곳에 계시길, 하며 기도하는데. 그 정성이 가득하다. 가족들도 함께 진심으로 기도하며. 그 후, 연탄가스 예방차 집 공사도 하고 해서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의 일도 나쁜 기억이라기보다는 한편으로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로 수철의 가족들에게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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