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산에서 말다툼을 벌리는 두 남녀. 사랑은 애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을 구걸했다. 남자는 이미 정한 마음이 있다며 야멸차게 여자를 밀어내고. 그러자 여자는 분노로 가득 차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했다. 그 분노는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기 싫은 이기심에서 비롯되다가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치닫더니 온몸을 떨리게 했다. 여자는 급급 내 독기를 품고 산언덕, 방심하던 남자를 있는 힘껏 밀어버린다. 남자는 아악 하는 짧은 비명소리를 내고 굴러 떨어지는데. 그 비명은 산새를 놀라게 하며 산 곳곳에 잔인한 메아리가 되어 주위에 울려 퍼졌다.
1989년
'이림'이라는 같은 회사를 다니는 27살 김영식과 26살 한동준. 통통한 체격에 수수한 면이 있었던 김영식은 조각같이 생긴 한동준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동준은 이목구비가 진하고, 큰 키에 모성애를 부르는 하얀 피부 덕에 회사의 여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솔이던 영식은 '그놈의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을 투덜대며 소외감에 뾰로통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산을 좋아하는 부장님으로부터 회사 내 산악회 모집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래서 이참에 기회다 싶은 영식은 여직원들에게 매력 어필도 할 겸 선뜻 직장 내 산악회에 가입했다. 그런데 모임에 가니 하필이면 한동준, 그도 가입한 것을 알았으니. 그걸 안 영식은 '따라다니네, 진짜.' 하며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느 날, 회사 산악회를 시작할 겸 아롱산에 가기로 한 첫날. 영식은 오늘은 뭔가 자신을 돋보여 회사 여직원들에게 좀 더 관심을 받고 싶은 모양이다. 애써 색깔도 화려한 남방을 사서 입고 센티한 고동색 모자, 등산복 청색 바지도 빳빳이 다려 입고 왔다. 제법 평소와 다른 자신만의 패션 러블리한 모습. 그렇게 꾸미고 직장 사람들 앞에 서니 조금 쑥스럽기도 하지만 다 함께 산을 오를 생각을 하니 즐겁기 그지없다. 그래서 산으로 향하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만연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속도를 맞춰 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가는 중 문득 뒤돌아보니 여전히 경박하지 않는 터프한 매력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동준. 여직원들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웃음꽃을 피운다. 뭐가 그리 동준이 재밌는 것일까, 마치 조명이 한동준에게만 쏟아지는 것 같은 화사함. 영식은 그런 분위기를 보자 못내 못마땅해지고 시샘이 났다. 그때 동준이 영식을 의식하며 가벼운 목례를 하더니 힐끗거린다.
그러다 갑자기 그에게 뛰어와 말을 거는 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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