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경찰서 벽면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실종 사건. 해마다 일어나는 사건이었기에 경찰관들도 그러려니 하며 지나치고 있었다. 바쁜 하루에 여러 사건 중 하나로 치부되며.
그러니 시간 속 실종자 가족들은 애끊는 고통으로 주저앉아 울고 있었고. 그럼에도 악마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상대로 아무렇지 않게 유괴를 했다. 그 탓에 오늘도 한 명의 실종 아이의 사진을 들고 온 경찰관. 그는 일상처럼 한쪽 벽 모퉁이에 사진을 붙이고 있었다.
1990년
내 이름은 오진철, 단독주택에 이사 온 나는 아파트보다 좋은 것이 있다면 집에 옥상이 있다는 점이었다. 낡은 철로 된 좁은 계단. 그 계단으로 올라가며 보이는 하늘 밑 마당. 그새 엄마가 심은 상추와 깻잎들이 작은 텃밭에 앞다투어 자라나 있었고, 그 옆으로 내가 즐겨하는 녹슨 운동 기구도 몇 개 놓여있었다. 그래서 이곳에 올라오면 휴식처로 때론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이용하는 나는 괜스레 담 근처 의자에 걸터앉아 주변을 둘러보기도 한다. 그렇게 여유롭게 살고 있는 나는 취업 준비생이다.
어쩌면 오랜 취업 준비로 다른 이가 볼 땐 날 시답잖은 백수로 볼 것이 다분하다. 29살 그것도 대학 졸업하고 군대를 나와 어영부영한 사이에 서른에 가깝게 되었다. 때로는 서른이 코앞이라 그 숫자가 날 불안하게 하며. 그럴 때 나는 마음이 우울해져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그날도 다르지 않고 어스름한 시각, 나는 너덜너덜한 운동복을 입고 어김없이 옥상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때운다. 그러다 옆집에 할머니가 사는 마당을 멍하니 보게 되고. 마당은 크지 않지만 무화과나무가 있고 제법 10평 남짓하다. 나는 야간에 이웃 마당을 보고 있자면 왠지 호기심이 발동해 바라보는 자체가 묘미인 듯도 하다.
그 집엔 마당 구석으로 폐지와 병들도 쟁여 놓았는데. 아마도 이웃 할머니는 고물을 주워 생활에 도움을 얻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옆집 할머니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보려고 치면 그때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할머니가 지나치면 인사를 하려 하다가도 그냥 모른 척 지나갔더랬다.
그래서 이웃이라고 한들 그 속 사정을 모르는 타인처럼 지내기 일쑤였다. 그저 옆집에 대해 아는 바로는 가끔 이렇게 구경하는 정도가 전부였던 것. 그날 저녁도 마찬가지 갑갑함에 담배를 챙겨 옥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옆집 할머니의 마당을 일상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날은 아이들 세 명이 이웃 할머니 어지러운 마당 한편, 무화과나무 곁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할머니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나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무슨 놀이를 하는지 계속 머리를 숙이고 있는 아이들. '개미라도 구경하고 있는 걸까? 그 나이에 다 신기하지' 하며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나는 심심하기도 해서 불현듯 이웃 아이들 관찰자 모드로 돌입했다. 한 아이는 두 아이보다 어려 보인다. 키가 작고 깃이 넓은 옷을 입고, 나이는 다섯 살쯤. 가을로 들어서 저녁으로 쌀쌀한데 여름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한 아이는 머리가 제법 길고 치마를 입은 모습이 여자아이로 일곱 살 정도. 손에 인형을 안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나머지 아이는 그 두 아이보다 키가 큰듯했고, 나이도 두세 살 많아 보였다. 얼굴도 더 깊이 숙이고 있었는데. 마치 바닥에 무언가 그리고 있는 것 같이 손을 끝없이 움직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의 얼굴을 묘사하기 쉽지 않다. 아니 본 것도 같은데 무슨 일인지 돌아서면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려지지가 않았다.
나는 추측해 보니 옆집 할머니가 손주들을 봐주는 것인가 싶기도 해서 그리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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