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ian Sausage by 소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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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의 기억
이상하게도 기억 속에 더 깊게 자리 잡는 여행의 기억들이 있다. 나에겐 3년 전에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이 그렇다. 매일 삼시세끼 혹은 네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도 더 새로운 것들, 더 맛있는 것들 먹지 못해서 아쉬워했었다. 부른 배를 꺼트리기 위해서 골목 사이를 걷고 또 걸었고, 다리가 아파 힘들어했던 것보다 배가 불러서 힘들었던 기억이 더 남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이 남는 한 끼를 골라 보라면 주저 않고 'La Prosciutteria'를 꼽고 싶다.
'라 프로슈테리아'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곳은 토스카나 지역의 살루미 (Salume - 살라미, 살시챠, 프로슈토, 햄 등의 육가공품을 총칭하는 이탈리아어)와 치즈, 와인을 판매하는 곳이다. 일반적인 레스토랑처럼 정해진 메뉴를 파는 곳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살루미들로 한 그릇(이곳에선 나무 보드에)을 만들어 준다. 물론 나처럼 살루미의 종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알아서 만들어주는 메뉴도 있다.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된 프로슈토와 햄, 치즈를 먹었던 것 같다. 그동안 마트에서 파는 수많은 치즈와 햄 종류들을 먹어 보았지만, 비닐 속에 얇게 슬라이스 되어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또 오랜 시간 매장에 진열되어 있던 그것들과 커다란 돼지고기 뒷다리를 덩어리 째 놓고 내 눈앞에서 직접 썰어주는 그 맛은 역시 비교가 될 수 없다. 그 이후 어떠한 레스토랑을 가던지 'Antipasto(전체요리)'는 꼭 시켜서 먹었다. 그중에서도 항상 프로슈토와 부라따 치즈가 들어간 메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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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먹는 살루미 혹은 사퀴테리
여행이 끝난 뒤에도 가장 아쉬웠던 것들이 더 이상 제대로 된 살루미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백화점에서 파는 제품들로 가끔씩 그 아쉬움을 달래곤 하지만, 너무 비싸서 만족할 만큼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전에 다 없어지기도 하거니와 역시 그때의 그 맛과 그 향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찾은 곳이 '소금집'이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살루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곳들이 많다는 기사를 접하긴 했었지만, 소금집만큼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적정한 가격에 만드는 곳은 내 기억 속엔 없었다. 우연히 보게 된 잡지의 기사(그곳도 꽤 예전 기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소금집 홈페이지와 관련된 다양한 기사/글들을 찾아본 뒤에 작정을 하고 주말에 방문을 했다. 이미 많은 블로거들이나 매거진을 통해서 소개가 된 곳이라 굳이 나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국내에서도 이렇게 좋은 식재료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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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베이컨의 맛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소금집'
밴드 활동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수제 버거 팝업 스토어를 열고자 했던 2명의 소금집 대표들이 마음에 드는 베이컨을 찾지 못해 만들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인가가 아쉽다고 이렇게까지 본인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일단 내가 매우 그러한 듯해서 반성하게 된다.) 행동하고, 결과물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제품에 대한 믿음이 절로 생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집은 가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방문했던 소금집은 가게라기보다는 공방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Meat Craft'라고 써두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러한 모습이 제품에 대한 믿음을 더 주는 것 같아 나쁘지 않은 첫인상이었다.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다양한 제품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다양한 살루미와 샤퀴테리들을 직접 보게 되니 오래간 만에 만난 새로운 식재료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된 마음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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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집의 첫 번째 맛은 이탈리안 소시지로
어떠한 제품을 맛보아야 이 집과의 인연을 좀 더 길게 가져갈 수 있을까 오랜 고민을 했다. 그러다 손에 쥐어 든 것이 파스트라미, 베이컨, 카피콜라, 이탈리안 소시지였다. 이 정도면 그래도 꽤 오래 먹지 않을까 싶었지만, 3일 만에 끝장을 냈다. 파스트라미와 카피콜라는 치즈를 넣어 심플한 햄&치즈 샌드위치로 먹고, 베이컨은 스크램블 에그와 사우어 도우를 곁들여 미국식 브런치 스타일로, 이탈리안 소시지는 저녁에 와인 안주로. 정말 말 그대로 순삭을 해버렸다.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하고 싶은 제품은 이탈리안 소시지이다. 기존 국내 수제 소시지들을 사서 먹으면 항상 들어가 있는 게 치즈 혹은 청양 고추였다. 매장에서 판매하시는 분들도 청양 고추를 넣어서 맛있다는 말들을 항상 하시는 데, 난 그게 참 별로였다. 그래서 소시지는 손이 잘 안 가는 식재료 중에 하나였다.
암튼 내가 이번에 맛본 이탈리안 소시지는 마늘, 펜넬, 이탈리안 레드 페퍼와 와인을 넣어서 향신료의 맛이 강하게 나는 꽤 괜찮은 소시지였다. 처음엔 그냥 콜드 소시지로 와인과 함께 먹다가, 마지막에 남은 한 개를 구워서 먹었는데 차갑게 먹었을 때는 그 나름의 강한 향신료 맛으로, 구워서 먹었을 때는 소시지의 지방이 녹아들어 한층 더 부드러워진 맛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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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는 없는 이탈리안 소시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이탈리안 소시지는 이탈리아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돼지고기에 펜넬 혹은 아니스를 넣어서 만든 소시지를 이탈리안 소시지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실 이 이탈리안 소시지는 미국 소시지인 것이다. 대신 이탈리아에서는 salsiccia(살시챠)라고 해서 다진 고기에 다양한 향신료를 넣어서 만든 익히지 않은 소시지가 있다고 한다. 지역별로 들어가는 향신료도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게 있다고 하는데 이 살시챠가 이탈리아 이민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이탈리안 소시지가 되었고, 내가 먹은 소금집의 이탈리안 소시지도 미국식과 이탈리아식 그 중간의 어디쯤(혹은 미국식에 좀 더 가깝거나)에 위치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출신이 어디이든 간에 이 소시지는 맛있었다.
이렇게 식재료에 대한 글을 쓰면서 참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먹기만 했던 식재료에 대해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지만...) 배움을 통해 알게 된 식재료를 다시 한번 제대로 먹어보겠다는 꿈, 희망, 기대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번 글을 쓰면서 나에겐 2가지의 새로운 꿈이 생겼다. 언젠가 미국 여행을 갈 기회가 생긴다면 미국인이 만든 이탈리안 소시지를 바비큐 그릴에 구워 라거 맥주와 함께 먹겠다는 것. 그리고 이탈리아에 가서는 이탈리아인이 만든 살시챠를 이탈리아 와인과 꼭 먹어보겠다는 것이다. 그때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글로 남길 기회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