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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aki Oct 20. 2022

스트레스와 게이샤 커피

파나마 아우로마르 게이샤


조만간 팀의 이름이 또 바뀐다. 2년이 채 되지 않아 벌써 4번째 변화이다. 그때그때 회사의 필요성에 따라, 조직의 변화에 따라, 사람의 변화에 따라 팀 이름과 역할 그리고 나의 역할이 변화되어 왔다. 처음엔 우리가 다양한 업무를 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윗분들의 필요성에 따라 이렇게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잘 모르겠다.


커피의 카페인이 스트레스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더 뛰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에 커피를 내린다. 좋은 커피 한잔이 이 기분을 조금이라도 좋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집에 남아있던 마지막 [파나마 아우로마르 게이샤 (Panama Auromar Geisha)]를 내렸다.


게이샤를 좋아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그저 비싼 커피라고만 인식하며 비싸니까 맛있겠지, 더 좋겠지 하며 마셨었는데 이제는 아주 조금이지만 왜 게이샤가 좋은 커피인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마셨던 그동안의 게이샤는 기본적으로 무겁지 않은 바디감에 매끈한 질감, 과하지 않은 산미와 꽃인지 과일인지 모를 기분 좋은 향기와 맛이 아주 적절한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맛과 향기가 마실 때마다 입에서 코에서 뿜어져 나온다. 이전에 마셨던 [파나마 아우로마르 게이샤]도 그 향긋함에 기분 좋게 마셨었던 커피였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것도 뿜어져 나오지 않는다. 복잡한 나의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노트에 이것저것 끄적거리는 것이 바빠서 내가 입으로 마셨는지 코로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잔을 들어 보니 커피는 다 마시고 없어진 상태였다. 이럴 거면 이름 모를 원두로 뽑아먹는 회사 커피와 무엇이 달랐을까.


사둔 지 좀 오래된 원두라 향이 다 날아갔을까 싶기도 했지만 아니다. 이건 나의 기분의 문제다. 나의 이 시끄러운 머리와 마음 때문에 이 좋은 커피 한잔도 즐길 만한 틈을 주질 못했다. 게이샤의 잘못이 아니다.


——


농장명 : 아우로마르 (Finca Auromar)


생산자 : 로베르토 브레네스 (Roberto Brenes)


지역 : 치리퀴 (Chiriqui)


재배 고도 : 1,600m - 1,770m


품종 : 게이샤 (Geisha)


가공 방식 : 워시드(Washed)


재스민 / 살구 / 오렌지 캔디 / 복숭아


출처 : 커피 리브레


——-


이 기분과 마음이 정리가 되면 다시 한번 마셔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이날의 커피가 내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게이샤 원두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곳에서 또 좋은 게이샤들이 나올 테니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볼 것이다. 그때는 좋은 기분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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