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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aki Oct 27. 2022

위로가 되는 커피 한잔

블루보틀 나이트 라이트 디카페인


블루보틀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아메리카노는  잔에 나가는  괜찮으실까요?”라고 물어본다.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손바닥만 하게 작은 커피 잔이다. 평소 아메리카노는 밥공기 크기 만한 머그잔에 연하게 마시는  선호하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블루보틀의 아메리카노는 너무 작고 쓰다. 하지만 이것도   마시다 보면 요령이 생기나 보다.


“컵은 괜찮고 샷은 반만 넣어서 연하게 해 주세요.”



오전에 이미 커피를 2잔이나 마셨던 터라 특별히 [나이트 라이트 디카페인] 주문했다. 과한 카페인은 오히려 하루를 힘들게 한다.


작지만 연하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회사 동료와의 대화를 이어 간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회사 동료와의 대화는 편하다. 이 연차가 느끼는 커리어에 대한 고민, 회사에 대한 고민이 비슷하다 보니 혹여 나의 말에 오해를 하지 않을 까, 꼰대처럼 느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편안하게 나의 생각들을 이야기하면 그녀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며 서로의 이야기들을 쌓아 간다.


직장 생활을 17년이나 했지만 커리어에 대한 어려움들은 계속 생겨나고, 그 고민은 그저 회사 생활의 문제를 넘어 나의 삶의 태도와 앞으로의 삶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중요도와 깊이가 점점 더 깊어진다. 고민의 무게가 무겁다 보니 쉽게 해결되지 않고,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고민을 맞닥뜨리면 그때마다 혼자 남겨진 어린아이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자만 전전긍긍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주변 지인에게 도움을 구해볼 싶기도 하지만 결국 이 고민들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며 쉽게 말을 꺼내지도 않는다. 그런 많은 생각이 오가던 와중 그녀와의 대화는 나에게 너무나도 큰 위로가 되었다.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도 아니었고, 조언을 해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큰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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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지 : 페루


크림 브륄레 / 바닐라 / 키라임


출처 : 블루 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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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주변의 소음들이 대화의 주제를 너무 무겁지 않게 해 주었고, 대화 중간중간 홀짝거리며 마시는 커피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강하지 않은 산미에 구수한 느낌의 커피는 날 서고, 부정적인 나의 생각들을 둥글둥글하게 만들어 주었다. 작디작은 이 커피는 몇 모금 마시기도 채 바닥을 드러냈지만, 우리의 시간도 한정적이기 때문에 크게 아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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