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potle Peppers in Adobo Sa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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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여행은 못 가도 멕시코 음식!
여행을 좋아하지만, 힘들고 도전 의식을 필요로 하는 여행지보단 깨끗하고, 안전이 검증된 나라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남미는 항상 여행지 순위에 들어가지 못하곤 했다. 한국에서 남미까지의 이동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핑계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자칫 강도를 당할 수도 있고, 사기를 당하거나, 총의 위협까지 받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나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예전보다는) 가는 것도 수월해지고, 칸쿤 같은 곳은 신혼 여행지로도 많이 가지만 암튼 남미는 나에게 아직까지는 미지의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음식은 그냥 너무 좋다. 멕시코 음식들을 종류별로 섭렵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장 쉽게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건 역시 타코가 아닐까 싶다. 잘 구운 또르띠아 위에 원하는 만큼 양파, 토마토, 양상추, 다양한 콩들, 치즈, 구운 소고기 혹은 닭가슴살을 얹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카몰리와 사우어 크림, 살사 소스를 듬뿍 얹어서 먹는다. 한 입 가득 베어 물고 우물우물 다양한 식재료들의 조화를 느낀다. 여기에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더 더해지면 "아... 올해도 뜨거운 여름을 잘 즐기고 있구나!"라는 기분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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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느낀 멕시코의 맛
몇 해전 놀러 갔던 미국 서부에서 맛있게 먹고, 기억에 남는 요리 중의 하나가 산타 바바라에서 먹었던 멕시코 음식이었다. 새하얀 벽에 붉은 기와 지붕들로 만들어진 건물들과 아가베 선인장의 조화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던 동네에서 먹었던 그 음식들은 내가 생각했던, 그동안 알고 있었던 멕시코 음식보다 덜 자극적이면서도, 푸근한 느낌을 더 많이 받았었다. 아마 그동안 내가 알던 멕시코 음식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가정식 스타일의 음식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날 받았던 자극으로 나는 바로 눈에 들어오는 멕시코 요리 잡지 한 권을 샀다.
역시 화려하다. 원색적이다. 자극적이다. 산타 바바라에서 맛보았던 그렇게 푸근한 요리들은 없었지만 처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에너지가 쉴 새 없이 느껴지는 요리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보다는 하지 못할 요리들이 더 많았지만...
이 잡지에서 내가 더 관심을 가졌던 페이지는 바로 'Mexican Pantry'. 멕시코 가정집 팬트리에 하나씩은 있을 것 같은 다양한 식재료를 정리한 페이지였는데 여기에도 당연히 오늘 소개할 'Chipotle Peppers in Adobo Sauce'가 있었다. 이 식재료를 처음 만났던 건 멕시코 요리가 아니라, 미국식 칠리(이것도 따지고 보면 멕시코 음식이 아닐까?)를 만들려고 레시피를 찾아보던 중이었다. 내가 하는,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 중의 하나가 바로 '칠리'인데, 여기에 이 식재료를 넣으면 훨씬 더 깊고, 스모키한 맛을 느낄 수가 있다고 했다. 누가? 마사 스튜어트 아주머니가! 그 날 백화점 수입 식재료 코너와 이태원 마트들을 뒤져서 이 소스를 찾아냈던 기억이 있다. 이 식재료를 넣었더니 그전까지 만들었던 칠리와는 또 다른 묵직하고 진한 맛의 칠리가 완성되었었다. 그때만 해도 생소한 식재료였지만 요즘은 집에서도 멕시코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는지 이제는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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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식료품 가게에서 시작한 La Costeña
'La Costeña'라는 브랜드는 멕시코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본 분들에게는 익숙한 브랜드일 것이다. 멕시코 식재료의 대표 브랜드이기도 하고 캔이나 통조림 등의 제품들이 국내에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의 히스토리를 찾아보니 매우 소박하면서도 정겨웠다. 1923년 Vicente López Resines라는 분이 멕시코 시티에 'La Costeña'라는 작은 식료품 가게를 샀고, 그곳에서 20Kg짜리 병에 할라피뇨 고추를 식초에 담가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가게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성공이 이어져 1937년에 정식으로 'La Costeña'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제품들 중에서도 'Chipotle Peppers in Adobo Sauce'는 아주 잘 익은 붉은 할라피뇨 고추를 건조, 훈제시켜서 매우 독특한 맛과 향을 내게 한 뒤에 이것을 매콤한 토마토 베이스의 아도보 소스에 넣은 제품이다. 레시피들을 찾아보면 고기를 재울 때도 사용을 하고, 수프에도 넣고, 딥 소스로 만들어서 야채를 찍어 먹기도 하고 매우 다양한 음식으로 활용을 하는 식재료이다. 외국의 어떤 블로거는 한국 음식에 넣을 고추장이 없을 때 대체재로 넣는다는 이야기까지 쓰여 있었다.
필리핀의 아도보는 무엇이고,
멕시코의 아도보는 무엇인가?
사실 ‘Adobo’라는 단어는 필리핀 요리 중 하나라고 한다.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올라온 레시피나 요리 이야기들을 찾아보면 식초, 간장, 마늘, 후추 등으로 닭이나 돼지고기를 재워두었다가(marinade) 볶아서 먹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찜닭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이 ‘Adobo’라는 단어가 남미에서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음식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역사 속 어디에 선가는 연결 고리를 찾을 수도 있을 듯 하지만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비슷한 느낌도 있는 것 같다. ‘Adobo’는 스페인어인 ‘Adobar’에서 유례가 되었다고 하고, 이는 ‘marinade’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언어라는 건 참 알 수가 없는 듯하다.
멕시코에서는 이 식재료를 소스처럼 만들어서 고기에 재워둔 뒤에 구워 먹기를 잘 한다고 해서 나도 한번 만들어 보았는데….
역시 요리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