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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민 Oct 25. 2022

순례길 여정 제2장

#10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부모님이 좋아했던 드라마인 '응답하라 1988'에서 자주 나왔던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지나간 인연을, 지나간 세월을, 지나간 시절을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노래를 부르며 추억하자는 이 가사는 희망차면서도 살짝은 마음이 아련해지기도 하다. 실제로 인생을 살면서 세상에 둘도 없던 친구가 어느 순간 내 곁에 없다는 것을 느끼기도, 원수같이 서로 헐뜯었던 친구가 지금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준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흔히 다들 경험해봤을 것이다. 나의 상황과 상대방의 상황이 잘 맞물릴 때 우리는 인연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여의치 않으면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기에 우리 곁의 사람들은 피와 법으로 엮인 것이 아니라면 자주 바뀌기 마련이다. 만남과 헤어짐은 인간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며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길은 끌레멘스 신부님이 말한 대로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져야 하는 길이다. 인간관계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되는 길은 본디 이 길만은 아닐 것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고작 하루에 만난 사람들만 세보아도 양손이 부족할 정도이다 보니 내 곁에 머무르는 사람들도 자주 바뀌었다. 간혹 마음이 정말 잘 맞아서 산티아고까지의 일정을 함께 하는 사람들도 본 적 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혼자 오는 편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짧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다.  

 길을 걸은지 2주 정도 지났을 때, '부르고스'를 지나 메세타 구간을 막 들어가려 할 때쯤이었다. 문득 저녁을 먹고 나서 일기를 쓰려고 로비에 있는데 낯선 사람들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하루하루의 1KM, 3KM가 이 정도의 차이를 내는구나 싶어 엉뚱하게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실감하던 찰나에 문득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순례를 시작하고 팜플로냐까지, 그리고 로그로뇨까지 가는 일주일 동안은 비슷한 일자에 시작했던 사람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며 자주 마주쳤다. 시작점이 같기도 하고 큰 마을 간의 간격이 멀지 않아 일정이 크게 다른 사람들이 아니면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쌓아갔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서로의 걸음이나 일정에 차이가 커졌는지 마주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친해진 순례자들은 내 시야에서 몽땅 사라져 버렸고 새로운 사람들로만 채워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는 것은 매력적이고 돈으로 사지 못하는 값진 경험이다. 이렇게 전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함께 걷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이 순례길의 큰 장점이면서 순례자의 특권이다. 나도 충분히 그 매력에 매료되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만큼 동시에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이기도 했었는지, 조금은 친해졌다고 생각한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싶어 그리워지기도 했다.

 하루는 내가 자주 쉬는 탓에 뒤쳐진 거라 생각해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 긴 거리를 걸어서 따라잡으려 하기도 했었고 반대로 다른 하루는 '내가 너무 빨리 걸어왔나'싶은 생각에 하루를 쉬면서 그들을 찾기도 했다. 이제는 다들 예상하겠지만 이렇게까지 노력하지 않아도 만날 사람과는 다시 만났고 아무리 만나려 머리를 써서 발버둥 쳐도 인연이 아닌 사람과는 끝끝내 만나지 못했다. 서로 간의 만남과 헤어짐은 나의 영역 범위 밖의 일이라는 것쯤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하는 기대는 접기가 힘든 건 사실이었다.


 지나간 인연을 그리워하면서도 새로운 순례자들과 또다시 대화를 나누고 며칠을 지내다 보니 새로운 인연들이 생겼다. 스페인의 기록적인 폭염에 함께 메세타를 걷는다는 일종의 전우애가 생겨서 금세 친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새롭게 낯이 익은 사람들이 생기고 서로의 보폭을 함께하며 관계를 만들어갔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새로운 순례자들과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걸으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았다. '주위에 낯설었던 사람들이 낯익은 사람들로 바뀔 때 처음에 그리웠던 사람들이 여전히 그리운가?' 대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그렇다면 그리움을 느꼈던 나는 익숙한 과거의 것들을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수고가 들어가야 하는 현재를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가끔 우리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본래의 감정을 숨기고 싶어서, 아니면 정말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서 다른 감정으로 표출할 때가 있다. 이 생각에 비추어보았을 때 내가 그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히 초심자에게 좋은 경험을 만들어주고 좋은 인상을 심어준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지만 익숙한 것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다시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피어오른 두려움이기도 했다. 이 모든 감정이 그리움으로 뭉뚱그려 다가온 것이다.

 하나의 감정이 계속해서 떠오른다면, 그 감정을 떨쳐내기 힘들다면, 그 감정이 정말로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인지, 포장지로 싸인 것은 아닌지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움으로 포장된 것이 불안과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깨닫자 나의 시야는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뒤가 아니라 내 옆으로 관심을 둘 수 있었고 이렇게 나의 순례길 제2장이 시작되었다.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마냥 슬퍼하고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음으로써 새로운 장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나서 순례자들을 맞이해주고 싶어 사흘간 산티아고 대성당 앞으로 출석했다. 하루 종일 그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만큼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 특히나 순례길을 걷는 동안 자주 그리웠던 독일인 친구들이 도착했을까 싶어 자주 기웃거렸던 것 같다. (내가 그들을, 정말 사람 자체를 그리워했나 보다. 걷는 도중에 간간히 꾸준히 계속 생각이 났다. 아마 예고 없이 헤어진 이후로 영영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인사라도 했으면 괜찮았겠지만, 서로 잘 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해서 그런지 계속해서 생각이 났다. 아니면 그 사람들 그 자체가 그리웠을지도.) 그러다 대성당 앞에서, 비교적 최근에 친해진 순례자들을 맞이하게 되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이렇게 있는 동안에 옌이 산티아고에 온 걸 놓쳐버리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이 말이다. 이 생각이 스친 순간부터 나는 그 대화에 완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놓지 못하는 소중한 인연도 놓아줌으로써 아름다워질 때가 있다고 한다. 어렵겠지만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마음속에 묻어둘 필요가 있다. 지나간 인연이 나에게 선물한 경험을 추억하고 기억하면서 새로운 인연들을 계속해서 쌓아가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그리움마저 기억에 함께 묻어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대화에 다시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나와 상대방이 인연이 되는 확률은 드넓은 들판에 바늘을 꽂았을 때 바늘구멍에 민들레 홀씨가 들어가는 확률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거다. 아빠와 내가 부녀 사이로 만날 확률은 사막에 바늘을 꽂았을 때 바늘구멍에 민들레 홀씨가 들어가는 확률 정도로 조금 더 낮은 확률이지 않을까? 이 무지막지하게 낮은 확률로 아빠와 나는 만났고, 관계를 만들었고 추억을 쌓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빠를 기억에 묻어야 했다. 그래야 나는 미련으로 점철된 과거로부터 벗어나 현재에 존재할 수 있고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려 하는 나의 시야를 앞으로, 그리고 옆으로 옮길 수 있으니까. 나와 아빠가 함께 했던 시간은 비록 정말 짧았지만, 그동안의 인연이 나에게 선물한 경험을 추억하고 기억한 채로 지금 나와 함께 걸어가는 인연을 더욱 소중히 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자그마한 희망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아빠와 헤어질 준비를 마쳐가고 있었다. 


그럼 다시 부모님이 좋아하는 노래 가사로 이야기를 마치겠다.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내가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면 기존 사람들과 더 친해졌을까 하면서 궁금해하긴 했지만 인연에 있어 혹시나 하는 생각은 접어두는 게 맞다. 서로 간의 만남은 나의 영역을 넘어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퍽이나 다정한 사람이었나 보다. 옌과 할아버지들, 모두가 그리우면서 다시 만나고 싶고 따라잡아야 하나 싶어 부단히 걸어가기도 했고 가끔은 내가 너무 빨리 걷는 것 같아서 하루 쉬어가며 그들을 찾기도 했다. 이렇게 계속 그들을 좇으면 내 시야는 다시 좁아져 내 주위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 채 그들을 놓치기도 할 거고, 그렇게 달려간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순례를 멈췄을 수도, 우리의 접점은 이미 끝나서 계속 못 만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로지 나의 선택이다. 선택을 내리고 후회가 없으려면 내가 지금 드는 감정이 정확히 어떤 건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22. 06. 나의 순례길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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