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산티아고를 떠나기 전 일기에 자기 확언 같은 글을 썼다.
'성장하고 경험하려면 안전지대를 떠나야 한다. 많은 경우에 이것은 내가 찾고 있는 줄 몰랐던 것을 찾기 위해 두려운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자신의 여정을 믿고 들숨에 용기를 품자. 그리고 날숨에 두려움을 뱉자'
내게 용기를 주었던 글들을 조합해서 썼던 것 같다. 순례길을 가기 전 나름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고장 나 일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만두려 했지만, 나를 필요로 한다는 말과 나의 능력을 올려쳐주며 퇴사를 극구 만류하는 팀원들 덕인지 갑자기 앞으로의 회사생활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서 병원을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도 막상 가려고 하면 아 갑자기 안 아픈 거 같은데?라고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막상 사직서를 내려고 하니까 지금까지 생활이 미화되는 것 같았다.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중에 우연히 정신의학과 관련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분들이 말하길 우리의 뇌는 안정적인 것을 최고의 효율로 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도전하려 할 때마다 불안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불안한 감정이 든다면 내 삶을 위한 옳은 선택을 하고 있는 중이니 스스로를 믿고 하려는 것을 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영상을 보고 각성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비행기 표를 끊었고 익숙함을 벗어난 두려움을 느껴보았다. 정말로 짜릿한 해방감이 듦과 동시에 걱정과 불안함이 한 구석에 자리잡기도 했다. 하지만 이 용기의 결과는 나에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여정을 선물해주었고 이런 경험을 통해 이제는 그 말과 그 감정을 신뢰한다.
메세타 구간을 걷는 동안 스페인의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정말 하필이면 그늘 한 점 없는 메세타를 걸을 때 이런 날씨라니, 순례자 단체 채팅방에서는 폭염 기간 내 순례 동안 돌아가신 순례자들 소식이 속보처럼 올라오고,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더위는 이곳을 걷는데 시간적인 제약을 항상 두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 나는 점점 안정적인 걸음을 걸었다. 꽤 오래동안.
나도 왜인지 모르겠는 안정감과 안주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살짝 쌓여갈 때쯤 파울로 코엘료의 챡 '순례자'를 읽게 되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러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책의 초반에 나오는 문장이다.
생각해보면 이곳에서 내가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했을 때는 익숙함이라는 둥지를 벗어났을 때였다. 여행 스타일 (몇 년을 고수해온)을 벗어났을 때, 추천받은 새로운 노래를 들었을 때, 모국어의 편안함을 벗어나려고 했을 때,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려 했을 때, 익숙한 것에 벗어나 새로운 것의 불편함을 느끼려 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들이 맞아주었다.
이 여정 자체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고 안정을 벗어난 두려움이기도 했지만, 그 시간 안에서도 사람은 이렇게 크고 작은 안정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 안정감에 소속될 것인지 새로운 것을 향해 디디고 나갈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이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안정된 사회 속에서 크고 작은 도전들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했을 때 돌아오는 큰 교훈은 남다르다. 이건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