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철의 십자가)
철의 십자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마주하는 가톨릭적인 장소 중 하나다. 그리고 가장 의미 있는 장소라고 보아도 무방할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우리는 순례길을 오른 첫날부터 가지고 있었던 물건이나 돌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미련을 두고 떠나야 하는 곳이다. 두고 오는 돌의 무게만큼이나 우리의 마음도 가벼워지길 바라면서. 본인이 사는 곳에서 돌이나 물건을 가져와 철의 십자가에 두고 오는 게 관례라고 한다. 순례를 시작하면서부터 담아두었던 나의 모든 미련과 생각들을 그곳에 둠으로써 이제는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철의 십자가는 생장에서부터 시작해 2/3 정도가 지난 지점에 위치해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고, 무지막지한 메세타 구간도 건너야 하며, 피레네 산맥 다음으로 높다는 하나의 산을 더 넘고 나서야 마주칠 수 있는 곳이다. 생장보다 산티아고에 더 가까이 위치하는 이 지점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단편적으로 나의 경우에서 설명을 해보자면 나는 이곳을 걷기 전부터 걷고 있는 중에도 아빠를 생각했다. 의도적으로 계속 생각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떠올랐다. 아빠와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미안함이 떠오르기도, 그저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아빠와의 추억을 기억하고 웃고 울며 걸었다. 그렇게 나는 아빠와 함께 걸었다. 하지만 생각을 했다면 정리를 했어야 했고 이제는 '아빠와 나의' 까미노에서 온전한 '나의' 까미노를 걸어야 했다. 그렇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나 만나는 이곳이 적당한 지점인 것이었다. 아빠와 나에 대해 웃고 울고 슬퍼하고 보고 싶어 하며 추억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이곳에서 비로소 자그마한 미련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빠의 묵주를 가지고 이곳에 오려고 했었다. 나를 스페인으로 이끌었고 아빠가 성당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그 묵주 말이다. 하지만 배낭을 꾸리고 나서 아빠의 묵주를 챙기려는데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는 거다. 크지도 않은 집을 쥐 잡듯이 뒤져보고 찾아도 나오지 않아 슬프고 화가 났다. 아빠가 나와 함께 순례길에 가기 싫은가 싶은 생각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해 아빠를 떠올릴 물품을 챙기지 못했다.
그렇게 배낭을 메고 집에서 떠나기 직전에 친구가 사진이라도 가져가는 게 어떠냐고 벽에 붙여놓은 사진을 가리켰다. 사진을 가져갈까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사진은 아빠와 내가 함께 있는 몇 안 되는 어린 시절 사진이라 잃어버릴 걱정에 처음에는 거절했었다. 하지만 혹시나 챙겨보라는 친구의 두 번째 제안에 결국 사진을 챙겼고 덕분에 집에서 가져온 하나의 물건을 지닐 수 있었다. 나는 철의 십자가라는 장소를 순례자들과 얘기를 나누다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이 생각나지 않아 잠깐 실망했지만 가져온 사진이 떠올라 친구에게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한 편으로는 내가 아끼는 소중한 사진을 이역만리 타국에 두고 온다는 게 마음이 쓰이긴 했지만 이곳에서는 이 아쉬운 감정마저 두고 가야 했다.
직접 마주한 철의 십자가는 생각보다 더 압도적이었다. 누군가는 나처럼 울면서,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발을 못 떼는 마음을 보여주면서, 행복하게 누군가와의 추억을 추억하기도 하며 본인 나름대로 미련을 떠나보내고 있었다. 돌을 가져온 순례자들은 주로 돌에 자신의 소원을 적는데 그래서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멋진 소망들을, 버리고 싶은 미련들을,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고 싶은 멋진 사람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 나도 아빠와의 사진을 두었고 사진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철의 십자가를 내려오면서 생각해보니 아빠는 낯선 스페인 땅에서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묵주를 내가 찾을 수 없게 꽁꽁 숨겨둔 게 아닐까. 아빠의 묵주만 외롭게 덩그러니 길에 남겨지고 싶지 않고 사진 속 우리의 모습대로 함께 그 자리에 남아있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나와 아빠의 순례길 여정은 함께 그 자리에 남아있다.
이제는 나의 까미노를 걸어야 했다. 비록 지금은 겨우 끓인 라면만 보면 새벽마다 라면을 끓여 내가 옆에 있으면 정성스레 끓인 그 라면을 전부 양보했던 아빠가 떠올라 헛구역질이 올라오기도, 무지개만 봐도 아빠 생각이 나 눈물이 차오르고 가끔은 아빠 생각에 하루를 눈물로 지새우기도 했지만 이 모든 감정을 경험하고서야 아빠를 추억으로 남겨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나와 아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정말 많이 가질 수 있었다. 걸으면서 울면서 얘기하면서 글을 쓰면서 나의 감정을 정리하고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감정에 도망가지 않고 마주쳐서 받아들이고 어떤 감정인지 정의 내리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서서히 나도 모르게 아빠를 묻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을 지나치기만 하면 미련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기적은 바라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사소한 것에서 아빠의 기억이 떠오를 것이고 아직은ㅡ혹은 평생이 될지 모르겠지만ㅡ 아빠를 그리워하고 미안해도 하면서 다양한 감정에 둘러싸여 있을 테지만, 나에게 오는 감정을 피하려 하지 않고 오롯이 그 감정까지 기억하면서 아빠와의 추억을 기억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10일도 채 남지 않은 이 까미노를 이제는 나의 까미노로서 걸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