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무지개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비가 내린 뒤에 뜨는 무지개는 날씨처럼 내 기분을 바꿔놓기도 했고 괜스레 마주치기만 해도 행운이 따라올 거라는 희망을 주는 것만 같았다. 무지개가 시작하는 곳에서는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귀여운 괴담도 어린 시절에는 곧잘 믿는 편이었어서 무지개가 뜨면 찾으러 가보려고 친구들과 작당모의를 하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 가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화 속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이제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무지개는 나에게 가슴 벅찬 감정을 선물해주는 자연현상 그 이상의 존재로 남아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날, 아빠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무지개를 봤다. 그때 어떤 생각이 잠깐 스쳤는데 다시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생각을 꾹꾹 눌러댔다. 그 생각이 '혹시 저 무지개가 아빠가 천국으로 건너가는 다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만 아니었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결국 그 생각은 맞았고 그 후로부터 무지개는 나에게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조금은 슬픈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요즘은 순례길이 관광 명소로도 많이 유명해져 종교적인 이유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보다 단순 트래킹을 즐기거나 생각 정리를 하려 온 순례자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인이 줄어드는 것을 감안해본다면 당연한 현상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순례자들이 모두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있다. 이곳은ㅡ특히 프랑스길은ㅡ 걷다 보면 영적인 길이라는 것을 한 번쯤은 느낀다는 것이다. 각자 다른 이유에서 이겠지만 놀라운 타이밍을 목격한다는 공통된 말을 들을 수 있다. 나도 길을 걷다가 무지개를 신기한 타이밍에 마주치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마주한 적이 있다. 일상에서 무지개를 보기 쉬운 편은 아니었다. 일 년을 기준으로 한다 해도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돈데, 이곳에서는 이상하리만큼 무지개와 자주 마주쳤다. 이상하리만큼 신기한 타이밍에서 말이다.
이 길에서 처음으로 무지개와 마주친 날은 용서의 언덕을 넘어온 다음 날이었다. 혼자서 걷던 중에 쌍무지개를 봤다. 무지개가 아주 크고 선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에도 보기 힘든 쌍무지개는 모두에게 인상적이었는지 그날엔 모든 순례자들이 만나면 무지개를 보았냐는 질문을 안부인사처럼 묻곤 했다.
무지개를 만나기 전 날 나는 용서의 언덕을 넘었다. 아빠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했지만 용서를 받아줄 아빠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면서 내가 이곳에 아빠와 함께 온 것이 맞는지, 그런 '척'하고 있는 게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이런 마음이 싹트고 있을 때쯤 마주쳤던 무지개는 내가 아빠와 함께 걷고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는 긍정적인 대답으로, 나아가 이 길을 걷고 있는 나를 향한 응원으로 받아들였다. 무지개가 두 개나 뜬 건 쌍수 들고 동네방네 응원하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라고 받아들일 거라 그렇게 스스로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걷는 중에는 마음속에 꺼내지 말자고 다짐했던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터져버렸다.
그다음으로 무지개를 마주쳤을 땐 부르고스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40km나 되는 거리를 걷는 날이기도 했고 그늘 없는 뙤약볕을 계속해서 걷는 중이라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러던 중에 예상치 못하게 높은 언덕을 마주쳤는데 이번에도 쏜살같이 앞만 보고 열심히 걸어갔다. 거의 뛰다시피 걸어간 언덕의 꼭대기에는 투박하게 생긴 아주 큰 십자가가 아주 뜬금없이 있었다. 그냥 지나쳐 언덕을 내려가기에는 무시할 수 없는 위압감을 느껴 짧은 기도를 올렸다. 나는 냉담자가 된 지 오래되었지만 이 길에서 그리고 이 십자가 앞에서만큼은 염치없이 익숙한 하느님을 찾게 되었다.
내가 아직은 확실한 주님의 자식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될 거라는 약속은 이제 드리지 못하겠지만 사는 동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겠다는 약속을 드렸다. 그러고 나서 아빠가 영원한 안식의 품으로 떠나길 기도했고, 나에게는 이겨낼 수 있는 시련과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마지막 기도를 끝으로 돌을 하나 올리고 언덕을 내려왔다.
생각보다 더 후련했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나타난 지겹도록 지루하고 뜨거운 길을 하염없이 걷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생전 처음 보는 특이하게 생긴 무지개가 나타났다. 함께 걷고 있던 언니가 크리스천이었던 덕분에 무지개는 약속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 세계에 벌을 내리려고 대홍수를 내렸던 하느님이 이제는 홍수로서 인간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노아에게 무지개를 띄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의 기도를 듣고 긍정의 무지개를 띄워준 게 아빠인지 전지전능한 신인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누군가는 내 기도에 누군가가 대답해주었고 나는 무언의 약속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만큼 걸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마지막으로 무지개를 만났을 때는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으로 넘어야 하는 산 중턱에서였다. 철의 십자가를 지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철의 십자가를 내려오면서 혹시나 오늘도 무지개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면서 걸었다. 내려오는 길에 소나기가 들쭉날쭉 내렸어서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날엔 끝내 무지개가 뜨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하늘이 하루 종일 안개로 뒤덮여있어 무지개는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무지개에 대한 기대를 잊은 채로 피레네만큼 높은 고도의 산을 열심히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는 중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드디어 무지개와 마주쳤다. 무지개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도 선명하게 자기 자신을 빛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면 늦어도 다음 날에는 무지개를 띄워준 것에 비하면 조금 늦은 타이밍이었다. 조금 더 늦었으면 이 무지개가 나에게 하는 대답이 맞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 있었을 테지만 다행히 그만큼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저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아빠도 생각할 시간이 오래 필요했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날의 마지막 대답 이후로 나는 정말 조금 더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팀장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지금까지 아빠가 항상 집에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똑같을거라 생각하라고.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아빠는 고향에 항상 있어왔던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하셨다. 달라진 건 아빠는 이제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거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 당시에는 고마운 말씀이라 생각했지만 그뿐이었다. 머리로만 이해를 했고 마음으로 공감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무엇인지 알고 이해한다. 아빠는 더 자유로워졌고 나는 자유로운 아빠와 지금 함께 이 길을 걷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순례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스페인의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관광을 하고 나서야 2달간의 여정을 끝마쳤다. 모든 여정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창문을 보았을 때 무지개가 떠있었다. 마법 같은 순간으로 여겼던 순례길에서의 무지개가 다시 내 눈앞에 떠올랐다. 모든 여정을 아주 무사하고 건강하게 끝내고 돌아가는 나에게 인사하는 무지개였다.
아빠는 이렇게 나에게 무지개로 항상 대답해주었다. 비 온 뒤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몇 달간 온종일 비 내렸던 내 마음을 이제는 맑은 날씨로 바꾸려는 누군가의 바람이 담긴 무지개인 건지, 함께해서 즐거웠다는 의미의 손짓인지, 아니면 나를 여태껏 지켜주었던 누군가의 마지막 인사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혹은 이 모든 의미일 수도. 그렇지만 내가 아는 확실한 한 가지는 비가 한참 내린 뒤에 떠오르는 무지개는 희망이라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나의 마음속에서 비는 물론 다시 내리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가 나는 나에게 보여준 무지개를 떠올리며 살아나갈 것 같다. 언젠가 무지개가 다시 뜰 그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