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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민 Oct 29. 2022

아빠의 죽음의 의미를 찾습니다.

#14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가끔씩 불행은 한 번에 몰아서 온다. 지하철역까지 갔는데 지갑을 두고 왔다거나 다녀와서 지하철을 타고 내렸는데 비가 오고 있다거나, 우산을 샀는데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비가 그치질 않나, 괜히 찝찝해진 몸을 씻으려 보니 온수는 고장 나있고 기분전환으로 시킨 후라이드 치킨이 양념치킨으로 잘못 와버린 걸 아는 순간 폭발해버리는 그런 날이 있다. 하지만 스스로는 알고 있다. 이런 날은 특별한 하루라는 것을. 적어도 오늘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이 느껴지지만 내일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이년 전쯤 회사에 입사했다.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 내부 문제가 생겼는데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렀고 부서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6개월은 버텨야 한다, 1년은 버텨야 한다'는 주위 말에 휩쓸려 회사를 꿋꿋이 다녔다. 스트레스가 쌓여도 꾹 참았다. 내 몸의 적신호가 켜진지는 오래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간 무시하며 살다가 결국 이 시국에 결핵이라는 것에 걸려버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입원을 했고 고열에 시달리며 병원 안에서 조촐히 생일을 보냈다. 덕분에 퇴원하고 나서도 9개월 동안 독한 약을 복용해야 했지만 잃어버린 체력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거의 1년이 지나서야 건강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이었던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그렇게 이제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고 발을 막 디딜 때, 아빠가 돌아가셨다.

 노팅힐에서처럼 불행 대결을 하려고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내가 마지막 브라우니를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아빠의 죽음은 양념치킨 정도의 타격이 아니어서인지 나는 지금 이 순간만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가끔 불행이 한 번에 몰아서 오는 날이 있다지만 이렇게 천천히 단계적으로 나를 잠식시킬 줄은 몰랐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하며 보잘것없이 나약한 사람이었다.








 나는 좋게 말하면 계획적인 사람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생각해놓은 계획이나 일정이 바뀌면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렇구나'하며 넘기지 못하고 자기 연민으로 빠지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모든 변화에,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긍정적이지 않고 부정적인 변화라도 그런 변화들이 나의 인생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나를 성장시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밀어서 넘어지더라도 일어나면서 돌을 주울 수도 아니면 돈을 주울 수 있다는 것도, 아무것도 줍지 못했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비 온 뒤 땅이 굳듯이 힘든 일을 겪고 난 뒤에 더 강해진다는 것쯤은 흔히들 알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아빠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겪어내고 이겨내고 일어서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일어날 수 없었고 일어설 힘도 없었고 일어설 방법도 모른 채 넘어져있었다. 그래서 이곳에 왔다. 아빠의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마가렛이라는 미국인 아주머니와는 비를 피해 허기짐을 채우려 들어간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는 대화를 워낙 좋아했고 친절한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도착할 마을까지 계속해서 같이 걷게 되었다. 서로 이곳에 오기까지 우리의 역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마가렛은 결혼을 하고 10년이 지난 후에야 남편이 동성애자인 것을 알게 되어 이혼을 했고 올해 초(내가 걸었을 때는 6월이었다.)에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지막 브라우니를 차지하기 위한 불행 대결 같은 대화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녀가 덧붙인 마지막 한 마디였다. 이 모든 것들을 후회하진 않는다는 말이었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천사 같은 자식들을 만날 수 있었고 교통사고가 났기 때문에 지금 이 길에서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행운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사는 게 그런 거니, 그냥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Everything has a purpose, it is what it is, so Just keep going") 정확히 내가 살아오면서 놓쳐왔던 부분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좋지 않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왜 이 일이 생겨났나' 생각해보았다. 그 원인이 나에게 있었으면 원인을 해결하는 게 맞지만 상황이 정말 그냥,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라면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고 넘기면 되는 거였다. 눈물 날 정도로 서럽게 울었던 일이 다음 날에 생기는 좋은 일의 원인이 되기도 했으며 행복했던 기억으로 선택했던 일이 안 좋은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상황이 그렇게 되었을 뿐, 좋은 경험으로 여기고 나는 나대로 살아가면 되는 거였다. 인생이 예측대로만 흘러가지 않으니 우리는 그 흐름을 인정하고 내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였다. 안 좋은 상황을, 나빠진 건강을, 못된 선임들은 만난 건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지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는 이렇게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나는 이 길을 걷는 동안 안 좋은 일을 마주쳤을 때 '아빠가 다 생각이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대개로 그 일들은 어떻게든 잘 해결되었었다. 폭염 속에 너무 먼 길을 걸은 날 힘들어서 후회하고 있을 때 그 후회되는 걸음이 있었기에 내내 보고 싶었던 고마운 스페인 할아버지들을 만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었고 로그로뇨에서 고독 속에서 외로움을 느껴 울었지만 그 고독한 시간이 있었기에 앞으로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한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 이런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핸드폰 유심을 샀는데 알고 보니 직원이 이상한 유심으로 주어서 사용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옛날이었으면 되는 일이 없다며 자기 연민적이기도 한 생각을 했을 법도 했는데 '휴대폰이 아니라 사람들과 풍경을 더 보라는 아빠의 의미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걸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그 시간에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보다 같은 사람을 싫어하면 더 빨리 친해진다는 말이 맞았는지,  내 유심을 걱정해주고 알아봐 주고 함께 화를 내주는 사람들 덕에 금방 친해지고 더 웃을 수 있었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인생의 호흡은 이곳에서의 한 달에 비해 터무니없이 길다. 오늘 나의 날갯짓이 언제 태풍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 몇십 년을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한 달이라는 시간 이내에 순례가 끝나기 때문에 금방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의 인과관계를 바로바로 이해하고 그동안의 기간을 인내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모든 것들이 씨앗이 된다는 것을.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모든 일은 어떤 인과관계에서 원인이 되기도 결과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항상 힘들지만 않고 넘어져도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언젠간 일어날 거라는 믿음이 가지는 힘은 장담할 수 있다.


부모님이 좋아하던 나훈아의 노래가 떠오른다.

아~ 살다가 보면 세상을 원망도 하고

아~ 살다가 보면 세상을 고마워하지







 산티아고가 도착지점인 순례의 마지막 날, 한국인 부부와 함께 출발을 했다. 그분들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이곳을 찾으셨다고 말씀하셨다.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한 우리는 날이 밝아올 때까지 함께 랜턴으로 길을 찾아가야 했고 그 시간 동안 이번 순례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분께서는 이 길에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특히 모든 일에 하느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앞으로 마음을 놓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걸을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산티아고를 향해 마지막으로 걸을 때 비로소 나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아빠의 죽음의 의미를 찾으러 온 정말 이상하고 불효스럽기도 한 여정이다. 아빠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없어진 데는 갑작스러운 사고라는 이유이지만 이 사건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이제는 어렴풋이라도 알 것 같다. 아빠는 남은 삶 동안 나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게 정말 너무 많았지만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들을 내가 몸소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이 까미노를 선물로 주고 떠난 것이다. 첫 째날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도 이제야 찾을 수 있었다. 아빠의 죽음이 이곳에 부른 것이다. 많은 것을 가져가라고.

 내가 세상에 사랑하는 것을 내어주면 세상은 나에게 꼭 다시 사랑하는 것을 안겨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세상이 나에게서 사랑하는 아빠를 데려갔지만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아빠의 사랑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아빠와의 기억을 가슴에 묻을 수 있었고 아빠가 알려주고 싶은 삶의 태도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이 모든 걸 함께할 아빠는 더 이상 없지만 이곳에서 그래 왔던 것처럼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응원할 거라 믿는다. 


The Camino is like life, Keep on wal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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