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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민 Oct 30. 2022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인 것을 알기까지

#15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말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혀왔나.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희망을 주는 말이었을지언정 적어도 나에게는 괴롭힘이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면, 그렇다면 이 인생이 영화라는 건데,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는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누가 이런 주인공을 응원한단 말인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날마다 바뀌어갔다. 어떤 날에는 내가 동경하는 연예인이었고 어떤 날은 부러워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가끔 내가 주인공이기도 했는데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어린 마음에 누군가를 동경하기도 했고 물론 시기 질투했던 때도 있다. 반대로 누군가보다는 내가 낫다는 편협한 생각으로 상대를 바라보기도 했었다. 상대의 반짝이는 순간을 나의 일상과 비교하면서 나의 반짝이는 순간을 과시하고 싶어도 했었다. 진짜 나는 누구인지 모른 채로 남을 따라 하기도, 주류에 쉽게 휩쓸리기도 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렇게 나를 모른 채로 지내온 시간 덕에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고 응원하지 못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것을 확실히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알아가려는 과정이 부족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원초적인 고민들을 많이 하게 된다. 현실의 고민을 내려놓고 하루 동안 걸으면서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기 마련이다. 나의 컨디션은 어떤지 내일은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지금 쉬고 싶은지 아니면 더 가고 싶은지, 이런 근원적인 욕구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길에서는 내가 지금 왜 힘든지, 왜 행복한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내일의 기약이 없는 이 길에서 들었던 기분 좋은 말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내일 보자'는 말이었다. 이제는 '운명이면 만나겠지'라는 생각으로 건 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말을 듣자마자 안정감과 행복함을 느낀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나의 본질이구나 여기게 되었다. 나는 관계의 안정감을, 그리고 사람들과의 연대감을 행복 삼아 사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스스로 답답함을 계속해서 느끼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구나'하는 인정도 하며 나라는 사람을 조각해갔다.


 시에스타를 기다리면서 다 같이 하릴없이 가게 문이 다시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중 한 명이 걷다가 힘이 들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으로 침묵을 깼다. 걷다가 너무 더워서, 전 날 잠을 설쳐서, 아니면 정말 그냥 힘이 없을 때가 있다. 그 순간 나에게 힘을 다시 심어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여러 대답들이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커피나 음식의 열량만으로도 힘이 충전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음악이 힘이 되기도 하지만 음악이 힘을 빼앗아가기도 했다. 나는 음악이, 짧은 휴식이, 그리고 사람들과의 대화가, 새로운 사건들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생각보다 긴 휴식이, 느린 속도는 나에게 힘이 되지는 않았다. 이 값진 고민은 일상에서의 나에게도 힘을 보태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그렇게 눈에서 빛나던 빛이 그 사람 전체를 밝혀주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곳에서 나는 이따금씩 이런 순례자들을 본 적이 있다.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로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얘기할 때,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였다.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고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까지 아이 같은 눈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산티아고를 도착하기 며칠 남지 않았을 때였다. 100km가 적힌 비석을 발견한지는 한참 지났고 이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 마음이 뒤숭숭하던 찰나였다. 그때 당시에 나는 고장 난 유심을 산 덕에 노래를 듣지도 누군가와 잠시 연락할 수도 없는 채로 늦은 시간까지 혼자 길을 걸었다. 길에는 오로지 나만 있었다. 심심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즈음에 첫째 날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첫차를 타 생장으로 온 날부터 말이다. 모두가, 모든 것이 생생히 기억나고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내 인생에서의 이 한 달은 다른 누구보다 최고의 한 달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다들 각자의 까미노를 가지고 있고 모두 자신의 까미노를 즐기고 사랑하고 기억할 테다.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나도 내가 만든 나의 까미노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다른 사람의 까미노가 부럽거나 질투 나거나 비교하지 않았다. 서로의 것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공존하는 방법을 이제야 비로소, 미약하게나마 배운 것 같았다.


 나는 이곳에서 그 감정의 근원지를 찾아서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찾는 과정을 반복했다.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고 이 영화 속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알아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과정을 겪고 나서야 주인공인 나를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한다. 이 길을 걷는 모두가 순례길은 짧은 인생 같다는 말을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나 자신을 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로 하지만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이나 기회가 없지만 이 길에서는 많은 시간을 나에게 할애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경험들로부터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아가고 이런 거름 삼아 새로운 도전을 해가는 과정을 만끽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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