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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민 Sep 29. 2022

순례길에서 붓다의 용서를

#6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어떤 이가 부처께 잘못을 했다 여겨 찾아가 용서를 빌었는데, 부처께서 이렇게 말하셨다한다.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닙니다. 생각도 어제와 다르고 잘 표시는 안 나겠지만 내 몸도 어제의 내가 아닙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기에 당신을 용서해 줄 자격이 없고 당신도 어제의 당신이 아니기에 나에게 용서를 청할 자격이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이 원죄를 용서받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 상대를 용서하고 원수의 죄도 용서하고 사랑까지 해야 한다.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성당을 다녔을 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늘 궁금했었다. 왜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용서하고 살아야 할까?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추측해본다. 내 마음을 짓눌러왔던 부정적인 감정의 부스러기를 용서로 털어버리고 내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면서 나를 온전한 상태로 두려는 노력이 아닐까. 죄를 지은 그 상대는, 그리고 그 죄는 사후세계에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해결해주시길 믿고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죄 용서로 나를 용서해줄 거라 믿는다면 타인을 용서하려는 그 과정이 조금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같은 맥락인 것 같다. 과거와 타인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의 나를 잘 돌보아야 하는 것.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는 상징적인 장소들이 여럿 있다. 초반에는 용서의 언덕, 후반으로 가서는 철의 십자가가 대표적이다. 한 순례자가 용서의 언덕을 오르는 중에 악마가 와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 빵과 물을 주겠다고 유혹을 하자 거절했지만 두 번째 제안에서는 유혹에 넘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언덕에 올라오고 나서 본인의 행동을 후회하며 참회 기도를 드리자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셨고 이곳이 용서의 언덕이 된 것이다. 용서의 언덕에서 내려가면 수없이 많은 자갈과 가파른 길이 우리를 맞이하는데 이 길을 걸으면서 미움과 같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이곳에서 누군가는 용서를 구하고자 하기도, 나를 상처 준 누군가를 용서하려고 마음을 먹기도 할 것이다.


 팜플로냐에서 행복한 이틀을 보낸 뒤 나는 다음 날에 넘어야 하는 용서의 언덕을 준비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까지 생각할 여력은 되지 않았고 이번 여정은 아빠와 나에 대해 생각하는 여정임을 상기하면서 아빠와의 관계를 생각해보았다. 단순히 아빠에게 잘못했던 일들에 용서를 구하고 동시에 아빠에게 받았던 상처들을 내가 용서하면서 언덕을 내려오리라, 호기롭게 다짐했다. 하지만 복잡한 마음 탓에 잠이 청해 지지 않았다. 머리로만 정리된 용서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러다 문득 예전에 철학 수업 시간에서 들었던 어느 동양 철학자의 일화가 생각이 났다. 누구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용은 대충 동생이 형에게 과거에 본인이 했던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자 했지만 형은 그 일을 이미 잊어버려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생을 용서해 줄 형은 이 세상에 없어져 이에 용서를 구하고자 했던 그 동생이 비탄해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 부분이었다. 형과 동생이 과거의 일에 대해 대화할 수 없는 것처럼, 나와 아빠는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 양방향의 소통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용서를 구한다고 해도 아빠의 답은 알 수 없다. 게다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선심 쓰듯 아빠의 과거 행동을 용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지금 아빠와 나의 관계에서, 용서라는 건 '그 시공간 속에서의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지 이제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빠를 향한 후회와 미안함의 감정에 휩싸인 지금의 내가 과거의 아빠를 용서한다면 과거의 아빠와 나도, 지금의 나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아빠에게도 모두에게 행복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스스로 결론을 냈다. 용서가 아닌 이해를 하겠다고. '용서'의 '용'은 '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서'는 '같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같은 마음을 담는다는 뜻을 가진다. 그때의 나, 상대와 같은 마음을 담아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아빠가 나에게 준 상처를 모두 용서할게'보다 '그때의 아빠와 그 상황을 이해해보려 노력할게'가 맞다는 결론이다. 아빠의 모든 점을 이해하려 노력할 거고 다양한 모습을 가졌던 아빠의 입체성을 그대로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근본적이면서도 새롭게 해 보는 용서의 형태였다.


 그리고 같은 마음을 항상 나에게도 가지기로 다짐했다.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이 나의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인지하면서 과거의 나의 선택을 후회로 남기지 말기를. 그리고 당연하지만 용서보다는 감사함을 가지자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용서의 언덕을 내려왔다. 




2022. 06. 02 용서의 언덕 가는 길에서



불교에서는 용서라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은 나는 잘했고 너는 잘못했다. 그러니 잘한 내가 잘못한 너를 용서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상대를 근본적으로 무시하고 하는 말입니다. 상대의 인격에 대한 큰 모욕입니다. -성철스님
상대는 가만히 있는데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고, 좋아하고, 사랑한다. 내 마음이 만든 차별과 구별은 내 마음만이 없앨 수 있다.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내가 내 마음의 차별과 구별을 없애는 것이다. 용서(容恕)란 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용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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